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5-28   748

수돗물불소화의 사회적·정치적 접근에 대한 약평

우리사회에 수돗물불소화가 시행된지 어언 20년이 흘러가고 있다. 초기의 시행주체는 정부였고 이 시기에는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반대니 찬성이니 하는 논의는 없었다. 설령 반대주장이 있었다해도 치과의사들 사이에서 치과인력도 늘어나는데 “수돗물불소화가 전국적으로 진행되면 어떻게 되나”는 수입적 요소에 대한 일단의 우려 정도였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보건정책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과 시행이 반복되는 군부독재시절의 정책이기에 시민들의 의사나 의견개진을 통한 정책이라는 것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정책 사업에 대한 평가와 시행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시기가 지나면서 수돗물불소화사업은 이제 시민적 담론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이런 과정은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숙이 기반이 되었다. 사회각계에서 시민적 요구를 제기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치과계 내에서도 공공의료의 확충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단의 치과의사들의 그룹이 형성되면서 정부에 공식적으로 수돗물불소화를 확대하여 충치를 예방하자는 주장을 하게 되고 많은 시민단체의 동의를 구하면서 국회청원을 통하여 수돗물불소화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소수의 수돗물불소화 반대론자들이 형성되는데 초기에는 주로 외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장되는 것을 옮겨와서 반대론을 펼친다. 수돗물불소화 반대론자들은 외국의 논문을 들어 인체에 해롭다는 주장을 하였다가, 환경운동연합 주재로 만들어진 중립적 검토위원회에서 반대론자들이 근거로 내건 논문은 저자의 주장과 상반되거나, 정반대의 내용이거나, 논문으로서 가치를 인정하기 힘든 것들이라고 결론난바 있다. 이후 찬·반 양자의 논쟁에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 중의 하나가 과학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수돗물 불소화의 여러 가지 논쟁들 중에서 수돗물 불소화에 담긴 사회, 정치적 의미에 대해 간략히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과학과 사회적 영향에 대해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한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과학은 사회,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과학자체가 스스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사회, 정치적 영향력에 종속되어 있고, 이로 인해 과학의 객관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극단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모든 과학적 사실을 단지 사회·정치적 현상으로만 보는 환원론적 사고에 기인하는데, 이런 관점으로는 과학의 상대적 객관성의 실체에 접근하기 힘들다. 제주지사의 성폭력 사건의 예를 들어보자. 실체적 진실이란 것은 [랴쇼몽]에서처럼 단지 관점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면 지사실에서의 그 사건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폭력도, 어버이 같은 따뜻한 걱정도, 단체장 선거를 둘러 싼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 모두가 실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판단하려 한다면 우선, 제주지사실을 [羅生門]을 통해 들어가야할지, 아니면 이성의 문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구성주의적 입장은 자신의 제한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근대과학의 폐해에 못지 않은 위험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염소소독의 유해성과 안전성에 대한 판단이 과학적 사실과 무관하다면, 수명이 죽어간 예방접종의 안전성과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검토가 사회·정치적이라면 인간이 이성으로서 판단하고 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과학에 대한 접근에서 모든 것이 그 시대 주류의 사회, 정치적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전기는 과학적 성과에 입각하여 발명된 것으로,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반면에, 핵무기나 핵발전소를 만드는 원천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비행기는 인류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단축시킨 반면에 인마살상을 위한 무기를 이동하는 근원이 된다. 인공위성은 위급에 처한 사람을 찾아내어 살리는 기술을 가진 반면에 미사일공격의 타켓을 찾는 것에 사용된다. 유전공학은 생물학자들에 의해 멸종하는 생물의 종을 보존하는 기술로 이용되는 반면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인간의 상품화에 이용된다. 즉, 한가지 과학적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의 이용에는 다양한 방법과 과정이 있으며, 여기에는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려는 시도와 국가와 자본에 종속시키려는 시도 등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돗물불소화도 단순한 과학적 사실이지만 다양한 정치, 사회적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사회·정치적 주장을 보면, 최초의 반대는 미국

반대론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매카시적 선동으로 “불소를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는 빨갱이들의 술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후 외국에서는 일련의 반대론적 이론이 진화하였고 초기 한

국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일부 반대론자들에 의해 과학자 집단의 독단에 의해 과학적으로 위장된 허위 사실을 가지고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즉 인체에 해로운 과학적 사실이 권위적

인 전문가에 의해 위장되어 유입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중립적 검토위원회를 통하여 반대론자들이 제시한 자료는 논문의 내용과 상반되거나, 저자의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된 바 있다.

그 다음은 급진적 생태주의적 견해인데,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연을 위해 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도 위험하게 하기 때문에 수돗물불소화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반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성론의 입장에서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보면 초기에는 정부에서 수돗물불소화의 타당성을 예방학자들에게 의뢰하여 강제적으로 시행하면서 충치예방을 국가관리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지방에서만 시행하는 것으로 그치고 전면적 확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후 예방 치과계를 중심으로 공중보건사업이라는 가치적 목표를 위하여 확대를 요구하였으나 일부에만 그치고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의하여 좌절되어왔다. 그러다가 건강권이라는 시민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일단의 치과의사와 의사집단이 형성되고, 이들을 통하여 보건의료의 공공성강화를 통

한 국민의 건강권확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수돗물불소화는 시민사회에 의제로 제기되게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른 과학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수돗물불소화 역시 하나의 과학적 의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방법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돗물불소화를 사회·정치적으로 평가하면서 “과학적 사실”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지듯이 수돗물 불소화의 과학적 평가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로 인해 수돗물불소화 자체의 보건학자들의 평가를 못 믿겠다는 것은 단순한 사고의 오류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은 다양한 관점과 가치가 접근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짐과 동시에 이러한 가치들은 과학적 사실의 기본적 테두리를 공유하려는 변증법적 과정을 가지게 된다.

반대론자들이 과학적 사실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수돗물불소화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수돗물 불소화의 논쟁에 있어서도 사회·정치적 함의는 여러 가지 접근방법이 있고, 여기에는 찬성·반대 모두 다양한 사회·정치적 함의를 내포함을 인지하여야 한다. <시민과학> 4월호에 실린 그로스 3세의 글은 이런 면을 간과하고 있다. 그로스 3세는 불소화 자체를 찬성하는 집단의 정치·사회적 고려에 입각한 판단일 뿐이며 과학적 논쟁에 참여하지 않으려한다고 비판하며 마치 불소화반대야말로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마치 아폴로의 달착륙이 허구였다는 주장처럼 우선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 논쟁에서 상대로서 인정해 달라는 강변일 뿐이다. 그 정도의 논쟁구도가 인정될 정도로 불소화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판단이 불안하다면 지금이라도 찬성측은 당장 중단에 누구보다 먼저 우선 동의할 것이다.

이 글은 불소화에 대한 시각에 있어 과학적 차원의 비판과 과학에 대한 구성적 차원으로서의 비판을 넘나드는데, 문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상호관계들과 대상의 포괄성에서 자의적 판단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찬성측이 반대측에 대해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대응을 하였다고 하지만, 불소화가 공산주의자들의 모략이다(미국의 경우), 원자탄 음모의 일부이다(우리나라의 경우)라는 식의 초기의 주장들에 대해 과학적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찬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짜집기하여 반대의 주장의 근거로 하는 주장들 역시 한번의 논박이면 족하지 과학적 논쟁의 주재가 될 수는 없다. 찬성에 대해 사회-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반대 주장들에 대한 정치-사회적 성격인 메카시즘집단, KKK단, 사이비의료자본,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사회-정치적 반대란 측면은 간과된다면 올바른 논쟁이 될 수 없다.

과학이라는 것은 고유의 상대적 객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상대적 객관성을 어떤 관점이나 가치에 의해 그 객관성을 활용하게되는 것이며, 이는 과학의 상대적 객관성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그 사회의 담론으로 형성해 간다. 따라서 시민사회에서 바라보는 과학적 관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가치를 대중의 복리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의 모색을 통하여 이에 반하는 개발주의, 자

본적 논리 등과 저항하는 새로운 과학운동이 필요하다.

수돗물불소화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이 자본적 동기에 의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의학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것은 더 큰 폐해를 가

져올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의학의 일반적 흐름에 맞서는 일단의 의학자와 과학자들의 존재에 시민사회는 더 큰 의의를 두어야 한다. 예방의료과 대중중심의 의료체계를 추구하는 많은 보건학자들은 이윤의 극대화라는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반하여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가에 더 많은 공공성과 더 많은 사회보장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있는 보건학자들의 커다란 성과중의 하나가 수돗물불소화이며, 이는 자본적 흐름에 맞서는 국민 건강권 확보과정이기도 하다.

안재현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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