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8-01   797

서해교전과 불온통신

서해교전이 일어나고 한달이 지났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날 발발한 이번 교전으로 우리는 엄존하는 분단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전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주목을 끌었던 것은 교전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여러가지” 해석이다. 사건 초기 군의 발표나 수구언론의 확전불사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주장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남북 해상 경계선 문제를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북한 경비정이 남하했을 당시 서해에서 한-미 해군이 연합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연평 총각”이란 아이디를 쓰는 현지 어민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월선 조업 책임론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부 책임론, 남쪽 책임론 등 갖가지 이적논리를 개발해 유포한 자들을 색출해 엄벌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막말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적논리”들은 끊임없이 등장했고 그중 일부는 언론이 취재하고 군이 인정하면서 상당히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논쟁 양상은 확실히 지난 99년에 발발했던 서해교전 때와는 다른 것이다.

1999년 6월 15일, PC통신 나우누리 찬우물 동호회에는 ‘어설프다 김대중’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당시 한일어업협정·집시법 개악·의료보험 통합·옷로비 사건·조폐창 파업유도 등으로 수세에 몰린 김대중 정부와 언론이 “한물 건너간 북풍공작”으로 서해교전을 이용한다며 민중 생존권 투쟁이 후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글은 올라간지 일주일도 못돼 삭제되었다. 정보통신부 장관이 친히 “불온”하다며 삭제하고 해당 이용자의 이용권을 1개월간 박탈할 것을 나우누리 측에 “명령”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해교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가 글이 삭제되고 이용권을 박탈당한 이용자는 그밖에도 여럿 있었다.

‘어설프다 김대중’ 글의 작성자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사회단체에서는 그해 8월 “불온통신” 조항, 즉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관련 시행령에 대하여 위헌소송을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삼년 만에야 발표되었다. 서해교전 논쟁에 적용된 “불온통신” 조항은 위헌. 그리고 또다른 서해교전이 그 이틀 후에 발발했다. 전보다 더 소란했던 올해 논란에 불온통신이

라는 “태클”이 걸리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을 금하고 이러한 전기통신에 대하여 정보통신부장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불온통신의 개념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며 ‘어떠한 표현행위가 과연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

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성(性), 혼인, 가족제도에 관한 표현들(예컨대 혼전동거, 동성애 등에 관한 표현)이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규제되고, 예민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한 표현들(예컨대 징집반대, 양심상의 집총거부, 통일문제 등에 관한 표현)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하는 것으로 규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국가가 “불온하다”는 기준으로 인터넷을 규제하는 것은 국가 검열이며, 국가가 공익을 위해 피치못한 이유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자의적이지 않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최소

한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이 결정을 내리는데 왜 이토록 오래 걸렸을까. 위헌소송이 진행되고 통신환경이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변한 삼년 동안 “불온통신”은 너무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왔다.

특히 “불온통신을 단속하기 위해” 설립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자퇴청소년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 미술교사의 사이버아트 개인홈페이지, 동성애사이트 이반시티, 군대반대사이트 등을 “불온하

다”며 폐쇄시켰다. 가장 큰 위력은 사람들의 마음에 발휘되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같은 국가검열기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특정한 글 한두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기계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미국 의회 산하 “어린이온라인보

호위원회”는 일년간의 연구 끝에 “인터넷에 대한 두려움”이 인터넷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법과 기술을 도입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자녀의 인터넷 이용을 통제

할 자신을 잃은 학부모 세대는 정부가 자신을 대신하여 인터넷을 통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과거 서적이나 비디오에 대한 태도와는 다른 것이다. 물론 인간은 과학기술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 통제 요구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다. “통제된 정보”와 “통제된 논쟁”의 시대는 가버린 것 같다. 아니, 가버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우리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청소년의 자살, 청소년의 성과 같은 민감한 청소년 문제도 폐쇄와 삭제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것은 인터넷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 기계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그 발상과 방향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욕망이, 그리고 시장의 야욕이 자행하고 있는 검열과 감시, 그리고 지적재산권으로 공정한 정보 이용이 금지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나날이 비대해지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존속시키기로 결심한 것 같다. 불온통신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확인했지만, 산넘어 산이다.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della@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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