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5-04-10   694

[세월호 1년 진단 – 무엇이 바뀌었나](1) 국민을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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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훈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 통치자의 안전만 생각
책임지지 않는 통치국가
시민은 대화 대상조차 안돼
최소한의 국가 그렇게 어렵나

 

며칠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길바닥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하소연하는 동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서 군복을 입은 험악한 남성들이 베트남에서 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베트콩’이라 부르며 다시 한번 겁박하고 있었다. 이들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를 틀면서 학살 피해자들 때문에 월남참전 용사들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베트남의 유가족을 초청한 사람들에게까지 ‘종북’ 공세를 퍼부었다. 모두 ‘각이 선’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 군과 국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자리였다.

 

이들에게 핵심은 명예였던 듯하다. 그 명예의 이름으로 가짜 ‘군인’들은 대형 확성기로 저열한 언어와 고성의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위풍당당하게 베트남판 위안부 할머니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도망자로 만들었다. 이에 비해 국가의 실종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공권력의 모욕을 받으며 정부청사 앞에서 ‘닭장차’에 실려 강제로 이송되곤 한다. 안보를 상징하는 ‘군인’들의 명예와 그 비슷한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이런 처우는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분노스럽다.

 

지난 2월부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는 활동예산안과 시행령안을 정부에 제출했으나, 집권당의 “세금 도둑”이라는 공격적 발언 이후 미뤄지고 미뤄지면서 역공을 당했다. 그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의 공무원은 세월호특위 내부 문건을 유출시키기까지 했다. 유가족들이 절실하게 요청해온 세월호 인양은 대통령의 ‘인양 검토’ 발언까지 이끌어냈으나 바로 직후 해수부의 인양 비용 발표로 다시 일종의 심리·여론작전에 밀려버렸다.

 

해수부가 뚜렷한 근거 없이 세월호 인양 비용을 높게 발표했을 때 그 의도나 효과가 자명한데도 밀어붙었다. 역시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여론의 정글을 헤치며 국가 이익을 향해 전진하는 작전에서 민간인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 월남참전 군인들은 그들의 명예상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군사작전만 있었지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불순세력에 의한 조작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알려지자 국가권력의 중심은 스스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선포했고, 또 문제는 유가족들 주위에서 불순세력들이 선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이 쓸쓸하게 머무는 광화문 앞 길바닥에 이들의 깊은 얘기를 듣고자 하는 국가의 모습은 없다. 자식의 죽음을 떠나보낼 수 없는 시민은 경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화 요청은 공권력의 힘으로 차단되고 추방된다. 가족들의 마음과 몸에 쌓이는 상처는 어떤 공공기관의 책임과 관심도 아니다. 참사의 책임 기관이 돈과 숫자의 힘을 이용해서 다시 시민과 여론을 조작의 대상으로 삼아 일종의 작전을 펼친다. 국가의 기본 기능과 관련된 핵심 피해자 시민들이 왜 이런 저열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군복과 군모를 걸친 ‘민간군인’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다른 시민의 목숨을 협박하고 가스통과 같은 불법적인 살해도구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공권력도 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정상적인 시민들은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아예 소통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업자인지 군지휘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군인들에 의해서 수조원대의 자금이 무기도입에 낭비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국가의 안보기구에 투입되는 데 비해,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특위 활동, 또는 아동 급식에 소요되는 약간의 비용은 여론 조작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시민 안전과 국가 안전을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비시민’ 국가, 그리고 그 국가는 시민의 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안전, 즉 국가 통치자의 안전과 국가기관의 안위는 예산이나 방법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성역으로 존재한다. 반면, 시민 안전의 문제는 편의적으로 적절히 대응하면 되는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 세월호 구조에 투입된 예산과 방법의 수준을 천문학적 가격의 외국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과 대비하면 두 사안에 대해서 국가기관과 국가 대표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 국가는 최소한의 경청의 책임, 참사의 현장에 존재해야 할 책임, 그리고 그 책임 방기를 사과할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

 

여기서 국가는 통치하지 않고 조작한다. 책임을 지지 않기에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운영되지 않고 지휘된다.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서열화의 대상이 된다. 특정 서열의 ‘순수한’ 국민만 대화할 수 있고 위풍당당할 수 있다. 대부분 하위 서열의 시민들은 주권자는커녕 대화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한 국가에서 이른바 ‘국민’은 통제의 대상, 조작의 대상, 심리전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시민의 죽음과 안전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 마치 안보기관이 비밀작전하듯 하고, 피해자들을 불가촉천민 카스트처럼 취급한다. 세월호 마지막 순간의 ‘가만히 있어라’라는 명령 권력은 바로 이 국가에서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다.

 

국가와 헌법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만 기울인다면, 이는 국가 존립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이다. 참사 직후 “이런 게 국가냐”라는 탄식들은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끌어안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가다운 국가를 검토해야 한다.

 

* 이글은 2015년 4월 10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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