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5-04-16   1104

[세월호 1년 진단 – 무엇이 바뀌었나](3) 무분별한 규제 완화, 또 다른 ‘세월호 참사’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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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근 |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변호사

 

▲ MB정부 선박 규제 푼 게 참사 원인
1년 지났어도 정책 바뀌지 않아
경제 빌미 ‘재벌 규제’ 완화 지속 땐
국가 침몰 불러…‘영향평가제’ 실시를

 

세월호 참사 1년. 어린 고등학생을 비롯한 수백명의 인명이 무참히 스러져 가는 것을 생생히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가 정말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는가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성찰해볼 수 있는 기간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선박회사들의 민원에 화답하여 20년이던 선령 규제를 30년으로 완화하고, 엔진 가동 7000시간마다 하던 여객선 엔진 검사를 9000시간마다 하는 것으로 완화했다. 이러한 규제 완화 조치에 힘입어 일본에서 퇴역의 운명에 있던 선박이 한국에서 ‘세월호’로 새로이 출발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내항화물선 2083척의 37%인 773척이 25년 이상의 노후 선박이다. 규제 완화 결과 많은 선박들이 해난 인명사고의 위험을 지닌 채, 여전히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반드시 갑판의 화물을 고박장치로 단단히 묶도록 한 것을 사각밧줄로 묶을 수 있도록 완화하고, 컨테이너 부착판에 부착하지 않은 컨테이너를 적재하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던 처벌 규정을 소액 과태료로 완화한 것도 이때였다. 그 결과 컨테이너가 고박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한쪽으로 쏠리고, 무분별한 설계 변경으로 복원력이 약화된 세월호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많이 달라졌는가?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근원적인 행정개혁과 국정 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이제는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침체되었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구호가 “규제 기요틴(단두대)”의 정치적 선동으로 바뀌었을 뿐 “규제 완화가 곧 경제활성화다”라는 도그마에 맞추어 밀어붙이기식 규제 완화 행정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8개 학교가 모인 학교정화구역 안의 규제를 풀어 관광호텔을 건축하겠다고 한다. 그곳은 경복궁 바로 옆인데 세계적으로 역사적 유물 가치가 큰 고궁 옆에 고층 호텔을 짓는 예는 없다. 신의료기술과 의료기기에 대한 인체 영향평가 등의 의료규제를 풀고 영리병원을 산업진흥적 측면에서 육성하겠다고 한다. 수직 증축 리모델링은 20여년 전 ‘세월호’와 같은 대형 인명 참사였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안전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이명박 정부에서도 두 차례나 시도하다 포기한 것인데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 수단으로 추진되고 있다. 경제활성화만 있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뒷전이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 유통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시행된 대형마트의 야간영업시간 규제와 의무휴업일제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추진된 많은 과제들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혁파되어야 할 규제 목록으로 거론되고 있다.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풀리고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로 증가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규제비용 총량제’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현재의 규제를 최적인 것으로 보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전의 규제 하나를 비례하여 폐지하도록 해 총량적인 규제 관리를 한다는 것인데, 정부 의도대로 추진된다면 위와 같은 중소상공인 보호나 ‘을 살리기’ 불공정거래 근절, 전·월세난 해결을 위한 갱신청구와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등 현안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과제들은 새로운 규제비용으로 몰려 좌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밀어붙이기식 규제 완화의 많은 폐해를 목격해왔다. 노동규제 완화는 상시적인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대량의 비정규직 고용,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심화로 이어졌다. 4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빈곤층(Working Poor)으로, 정규직 노동자에서 밀려나 자영업 시장에 내몰린 중산층들은 자영업의 위기로 신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대기업의 중소상공인 적합업종 진출과 대형마트의 진출에 관한 규제가 풀리면서 중소기업, 전통시장, 골목상권까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정부가 이같이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의 부작용을 주로 빚을 지원해주는 정책으로 해결하다보니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이렇게 부채를 통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를 늘리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장기적인 내수침체를 불러오고 있다.

 

규제 완화를 검토할 때는 재벌·대기업의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제적 효과만이 아니라 규제 완화로 소실될 국민의 건강과 안전, 경제적 약자의 보호, 환경과 국토계획 등 공익적 가치도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한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만 시행하고 있는 ‘규제 영향평가제’를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할 때도 공평하게 적용해 ‘규제 완화 영향평가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저축은행 사태, 대형마트 사태, 신용카드 대란, 세월호 참사 등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초래되는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문제 해결 방법은 ‘해경 해체’나 ‘국민안전처 신설’이 아니다. 국정운영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의 이익 증대만을 보고 국민의 생명·안전이나 근로자, 중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 보호와 같은 규제의 공익적 측면을 보지 않는 국정운영 구조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이글은 2015년 4월 16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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