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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참사대응
  • 2015.04.17
  •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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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실행위원, 변호사

 

▲ 참사 직후 귀기울이는 듯했지만
낡은 음모론으로 비판 자체 봉쇄
표현의 자유 막는 법 개정 시급
국민 잡아들인들 말길이 막힐까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다. 속절없이 한 해가 흘렀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삼보일배를 하고, 머리를 깎고, 곡기를 끊어도 남겨진 자들의 목소리는 무기력하게 튕겨나온다. 여길 봐달라고,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 <괴물>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강두(송강호)는 딸이 아직 살아있다며 말한다. "내 말도 말인데… 왜 내 말은 안 들어줘." "제발 말 좀 할 수 있게 해줘.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참사 직후, 당황한 정부는 잠시나마 국민과 유가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바꾸고 '유가족들의 뒤에 불순한 자들이 있다'는 낡은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유가족들의 거듭된 면담 요청을 "'순수한' 유가족은 만나겠다"라는 말로 비켜갔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에는 '순수한' 유가족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했고, 새누리당 대변인은 유가족들에게 "순수성을 잃지 마시라"고 훈계했다. 순수한 시민, 순수한 유가족, 순수한 추모, 순수한 시위…. '순수'에 대한 불순한 집착,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되풀이됐다.

 

국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혹 제기와 비판을 틀어막고 추모 분위기를 잠재우는 데 나섰다. '학교에 노란 리본을 달고 오지 못하게 하라'는 공문이 시·도교육청에 전달되는가 하면, 길을 지나던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통행을 제지받고 불심검문을 당했다.

 

정부의 허술한 구조작업을 비판하는 전문가를 출연시킨 어느 방송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압력이 행사된 정황도 드러났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푸념 한마디에 검찰은 발빠르게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설치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아우성이 넘쳐났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대부분의 논란에서 정부가 들고나오는 구실은 '유언비어 차단'이다. 혼란을 틈타 유포되는 허위사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왜 돌아다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발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가 그 자체로 신뢰할 만하다면, 유언비어가 확산될 이유가 있을까?

 

유언비어에 관한 연구에서는 종종 R=i×a라는 공식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R는 유언비어의 크기(rumor), i는 이야기 주제의 중요성(importance), a는 그 화제와 관련된 증거의 애매성(ambiguity)을 뜻한다. a가 클수록, 즉 문제와 관련된 증거나 설명이 명확지 않을수록 유언비어가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일부 유포된 것도 당시의 정부 발표에 대한 불신이 컸기 때문이다. 유언비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면, 정부는 신속히 상황을 설명하고, 의혹과 불신이 커지지 않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했어야 했다. 문제는 참사 직후 정부의 대응이, 그보다는 의혹 제기와 비판 자체를 봉쇄하는 데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식의 대응이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혹 제기와 비판을 차단하고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권력 그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권력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이 적어도 지금처럼 손쉽게 이루어질 수 없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우선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형사처벌의 범위를 상당한 정도로 축소해야 한다.

 

우리 형법은 허위가 아닌 진실한 사실을 언급하는 경우도 명예훼손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알아서' 수사에 나설 수 있다.

 

모욕죄 역시 구체적인 기준 없이 '공연히 타인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고 하고 있어, 다소 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까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이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미 2011년 일반논평 34호에서 "모든 가입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하며 형법은 가장 심대한 사안에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고,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당장 해당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표현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 국가기관을 명예훼손의 피해자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국가기관이 기관의 업무처리 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입막음 소송'은 대부분 국가의 패배로 결론났지만,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오랜 기간 당사자는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 법 개정을 통해, 국가기관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사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는 도심 곳곳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이 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 정치가 어지럽고 의견을 전달할 언로(言路)가 차단되었을 때 길거리에 붙었다는 벽서(壁書)를 떠올리게 한다. 경찰은 대통령 비판 전단을 제작한 사람들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e메일과 휴대전화까지 압수했다.

 

그런다고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까.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전에 군사정부 시절에나 뿌려졌던 전단이 왜 다시 등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스스로의 균열을 감내하지 못한다.

 

* 이글은 2015년 4월 17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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