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8-15   766

[09호] 과학과 사회의 새로운 계약 : 유네스코 세계과학회의를 다녀와서

과학과 사회의 새로운 계약 :

유네스코 세계과학회의를 다녀와서

김환석(우리 모임 대표)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와 국제과학협회(ICSU)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세계과학회의가 "21세기를 위한 과학: 새로운 헌신"을 주제로 열렸다. 20년 전 비엔나에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을 주제로 비슷한 회의가 유엔 주최로 열린 적이 있지만, 사실상 과학 자체에 초점을 맞춘 세계적 규모의 첫 회의라고도 볼 수 있는 이번 회의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과학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새로이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세계가 합의하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자리였다. 전세계 197개국의 대표단과 아울러 여러 유엔 산하기구, 정부간 기구(IGO), 비정부기구(NGO), 기타 민간단체와 학술단체의 대표들 및 개인참가자 등 총 2천여명이 참석하였는데, 여기에는 과학자(사회과학자 포함)뿐 아니라 정치가와 정책결정자, 언론, 교육자, 기업가, 시민대표, 학생 등 다양한 층이 포함되었다.

이 회의가 열리게 된 역사적 배경은 금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과학 자체가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진보들을 성취해내어 복잡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축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또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산학협동 등으로 인해 과학지식의 생산 및 공유의 조건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무역 및 기업활동의 세계화, 초국적기업의 역할 증대, 정부의 경제적 영향력 감소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냉전의 종말이 일부 국가에서 과학기술투자의 상당한 재조정을 야기하였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불평등이 국가간/국가내에서 증대하여 세계에 새로운 긴장과 갈등들을 야기하고 있으며, 환경문제의 악화가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지난 수년간 생명공학 등의 급속한 발전으로 윤리적 결과에 대한 고려가 과학의 미래방향을 논함에 있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었으며 이는 과학공동체와 사회일반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다 커뮤니케이션매체, 시민운동, 다양한 비정부기구 등의 성장으로 민주적 정책결정에 대한 참여의 요구가 과학부문에서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되면서 과학기술에의 여성참여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을 분만 아니라, 기타 장애인과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집단의 의견도 과학기술에 반영돼야 한다는 요구가 드높아졌다.

회의 첫날인 6월 26일에는 주최기관들과 주최국 대표의 연설에 이어 네 분의 기조발제를 통해 전체 회의를 관통하는 시각과 문제제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 먼저 제 3 세계 과학아카데미(TWAS) 회장을 맡고 있는 브라질의 호세 바르가스는 "21세기를 위한 과학", 녹색혁명의 주도자중 하나인 인도의 스와미나탄은 "인간의 기본필요에 부응하는 과학", 미국 대통령 과학자문역인 닐 레인은 "세계시민으로서의 과학자", 그리고 반핵평화운동으로 유명한 푸그와시(Pugwash) 회의의 창설자이자 9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핵물리학자 로트블라트경은 "과학과 인간가치"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제를 하였다. 특히 마지막의 로트블라트경은 2000년이 유엔이 지정한 '평화문화의 해'임을 상기시키면서, 금세기 전반은 물리학혁명으로 인한 핵의 위험이 그리고 후반은 생물학혁명으로 인한 인간복제와 생명상품화의 위험이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였는데, 이러한 위험을 없애려면 과학자가 보다 윤리적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과학자를 위한 윤리강령이 일종의 '히포크라테스선서' 형태로 마련되어 시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큰 주목을 끌었다.

6월 27일과 28일에는 각각 <과학: 성취, 단점, 도전들> 그리고 <과학과 사회>라는 두 개의 큰 포럼이 개최되었는데, 오전에는 총회장에서 6개씩의 대표적인 주제발표를 듣고 오후에는 시내 세 군데 장소별로 흩어져 참가자들이 관심있는 소주제별 모임에 자유롭게 참석하여 발표를 듣고 토론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7일의 <포럼I>에서는 오전에 "과학의 성격"(폴 호이닝겐-훤), "기초과학의 보편적 가치"(미구엘 비라소로), "복잡계에 대한 과학적 접근"(로버트 메이), "과학에서의 국제협력"(줄리아 마르통-르페브르), "과학교육"(귀 오우리쏭), "과학분야들의 개혁"(히로유키 요시카와)이 주제발표였고, 오후에는 모두 13개의 소주제별 모임이 열렸는데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과학의 성격, 2) 기초과학의 보편적 가치, 3) 인간의 기본필요에 부응하는 과학, 4) 복잡계에 대한 과학적 접근, 5) 국경을 넘는 과학, 6) 과학적 지식의 공유, 7) 과학교육, 8) 과학과 환경, 9) 생물학혁명과 그 의료적 함의, 10) 과학, 농업 및 식량안보, 11) 과학, 윤리 및 사회적 책임, 12) 과학과 에너지, 13) 과학과 신소재. 28일의 <포럼II>에서는 역시 오전의 주제발표로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용과 거부의 사이에서"(존 듀란트), "과학과 발전"(™… 완디가), "새로운 사회경제적 맥락에서의 우선순위 설정"(파르타 다스굽타), "과학: 젠더의 문제"(리디아 마쿠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제인 루브첸코),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루 용시앙)가 있었고, 오후의 12개 소주제별 모임은 다음과 같았다: 1)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2) 발전을 위한 과학, 3) 새로운 사회경제적 맥락에서의 우선순위 설정, 4) 과학기술과 젠더, 5) 과학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 6) 과학, 산업 그리고 공공재로서의 지식, 7) 과학자금조달의 새로운 메카니즘, 8) 과학적 전문성과 공공정책결정, 9)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협력, 10) 과학과 민주주의, 11) 과학의 커뮤니케이션과 대중화, 12) 과학과 기타 지식체계들.

이어서 6월 29일과 30일에는 다시 총회장에 모두 모여 이번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과 각 주요 단체 대표들의 연설을 차례로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인 7월 1일 오후에 이번 회의의 공식적인 최종 결과물로서 두 가지의 문건을 참가자 모두가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폐막되었는데, 그것은 <과학과 과학지식 이용에 관한 선언> 그리고 <과학의제-행동지침>이다. 이중 <선언>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과학에 대한 사회의 지원은 과학자가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의 원칙을 천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동지침> 은 바로 이러한 원칙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행위의 지침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예컨대 과학자를 위한 윤리강령 혹은 윤리교육의 확산, 개도국의 과학연구 지원을 위한 외채삭감, 여성의 과학기술 참여 촉진, 사회적 약자집단을 위한 과학기술 혜택의 증대, 전통적 지식체계들의 존중과 과학에의 기여 인정, 그리고 과학정책에 대한 대중의 참여증대와 과학커뮤니케이션 발전을 위한 기구 설치 등이 포함되었다. 이 두 문건은 금년 가을에 열릴 유네스코의 총회와 국제과학협회의 총회에 각각 상정되어 통과될 예정이며, 그렇게 되면 이 두 기구의 회원 국가들과 단체들은 앞으로 여기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과학연구 및 관련 사업들을 수행하도록 촉구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엔 산하의 여타 기구들도 과학문제에 관한 한 이 문건들을 존중해서 앞으로 사업을 수행할 것이며, 유네스코와 국제과학협회는 우선 2001년까지 사후조치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회원국과 회원단체에 배포할 예정이다.

나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이제 세계의 과학계가 새롭고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환골탈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신선한 느낌에 감명을 받았다. 이제 과학은 사회 위에 서 있거나 사회와는 분리된 고고한 '상아탑 속의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과학이 가져온 여러 결과들을 고민하고 책임을 지면서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학'으로서 새로 탄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국내 과학계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외람된 표현이지만 아직 경제성장을 위한 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저으기 염려스럽다. 다행히 우리나라 대표의 기조연설에서 우리도 이제 '삶의 질을 위한 과학'으로 방향선회를 하겠다고 분명히 천명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계과학회의의 결과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방향선회에 구체적인 지침을 주며 그럼으로써 다음 세기에 우리가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데 좋은 이정표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전: {교수신문} 1999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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