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7-06-11   3420

“이제 그만 놔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제정에 즈음하여 –

<성명> 양심을 획일화하고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폐지하라!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올해 초 법률의 지위로 옷을 갈아입더니, 이제는 ‘국기에 대한 맹세’마저 법률의 지위로 격상돼 강제될 위험에 놓여 있다. 정부는 맹세문의 구절을 약간 손질함으로써 존치 쪽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문구 몇 자를 손질한다고 해서 ‘국기에 대한 맹세’의 본질적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행정자치부는 올해 1월 신규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법’(2007.7.27 시행)의 시행령을 지난 4월 23일 입법예고한 바 있다. 그런데 시행령 안에는, 그동안 법률이 아닌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1984 공포)으로 시행되고 있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버젓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국기에 대한 맹세’ 존폐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라 각각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행정자치위가 각 법안을 병합 심의했던 과정에서 비롯됐다. 국회는 ‘맹세’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입법부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채, 정부에게 법률에서는 빼되 신중한 과정을 거쳐 시행령에 넣을지 여부를 결정하라며 법안을 떠 넘겼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이 권고를 묵살하고, 국기법 본법에서 사라진 ‘국기에 대한 맹세’를 되살려 시행령 통과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본법 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행정자치부는 각계의 비판에 부딪치자 신중한 여론 수렴의 과정 없이, 단지 몇 개의 ‘맹세문’ 수정안을 내놓은 채 여론몰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시행령에 포함된다면 지금까지 규정에 불과하던 ‘맹세’가 오히려 법령의 지위로 격상된다. 이는 썩은 이 하나를 뽑으려다 나머지 이빨까지 모두 썩게 만드는 꼴로서, 애초의 입법 취지와도 크게 벗어난다.

정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통해, 국가가 개인에게 ‘애국’을 강제하는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애국심은 자신의 국가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그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어떻게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오직 ‘충성’만으로 맺어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중국과 일본 정부가 배타적 민족주의에 힘입어 치열한 군비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조국과 민족에 대하여 충성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연대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아울러 갈수록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에서 어떻게 배타적인 ‘민족’ 개념으로 국민을 규정할 수 있겠는가?

특히 애국을 강제하는 형식이 여전히 교육 현장에 함부로 끼어들어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은 위험하다. 박정희 유신체제와 함께 전 국민의 일상으로 파고든 맹세는 국가에 대한 굴종을 강요해온 주문이었다. 일제시대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황국신민서사’와도 다를 바 없다. 국가의 명령을 통해 양심을 획일화하고 애국을 강요하는 교육은, 애국심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청소년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의 범죄를 정당화해줄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극단으로 당겨진 애국의 활시위는 역설적으로 방향을 틀어 청소년들에게 토론 없는 진리와 대립 없는 주체성에 호명하게 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개인 스스로 정립해야 할 양심과 도덕을 거부하게 만든다.

1890년 메이지(明治) 천황이 반포한 「교육칙어」의 끔찍함은 천황 또는 국가에 의해 선(善)이 정의되고 교육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절대선 앞에 누구도 비판의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없었기에, 천황의 명령 한 마디면 도(道)는 시퍼렇게 날이 선 도(刀)로, 의(義)는 주군의 명령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목숨마저 서슴지 않고 바치는 ‘기리’(義理)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쟁은 곧 아시아의 평화였고, 충성은 곧 무자비한 학살이 될 수 있었다.

국가가 청소년에게 애국을 가르치겠다며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한 일본 극우파는 국가주의 교육의 부활이라는 비판에 늘 볼 멘 소리로 “한국을 보라.”고 말해왔다. 한국이 하면 순수한 나라사랑이지만, 일본이 하면 뒤틀린 내셔널리즘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말이다.

“<기립하세요. 노래하세요.>라는 방식은 교육행위가 아니다. 전쟁 기간 교육의 재현이다. 교사로서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이상하게 된다.” 도쿄도의 한 중학교 교사 네쓰 기미코가 2006년 학교 졸업식장에서 ‘국가제창’이란 방송이 나오자 일어서지 앉고 천천히 제자리에 앉으며 던진 이 말을, 이제 우리 사회와 교육계도 진지하게 곱씹고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기미가요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교사가 수백 명씩 중징계를 받아왔는데, 이 땅의 학교에서는 용기와 양심을 실천하는 교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작 솎아냈어야 할 일제와 유신의 잔재이자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미래지향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쌍두마차의 다른 한편에 자리잡은 국기에 대한 경례 역시 이참에 폐기처분해야 한다. 국기에 대한 경의나 애국은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고 훈육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인권과 평화와 국제연대의 시대에 역행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폐지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며, 끊임없이 토론과 논쟁의 자리를 만들 것이다.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는 떳떳하고 사랑스러운 땅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 형식적 여론조사로 기본권 침해 명문 삼을 수 없다. 기본권 침해 시도 즉각 중단하라.

– 수정이 아니라 폐지다.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안」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조항을 삭제하라!

-「대한민국 국기법」에 포함된 ‘국기에 대한 경례’ 조항 삭제를 위해 법 개정에 나서라!

2007년 6월 11일

경계를넘어/ 고려대 사범대학학생회/ 관악동작 학교운영위원회 발전협의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교육공동체 나다/ 구속노동자후원회/ 나와우리/ 노동자의 힘/ 다산인권센터/ 다함께/ 대안교육연대/ 대학생사람연대/ 대항지구화행동/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민주노동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중학부모회(추)/ 부산인권센터/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빈곤사회연대/ 서울지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사회진보연대/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선의외침/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에스페란토 평화연대 카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리생각원정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교육을위한교사모임/ 인권운동사랑방/ 인터넷신문 대자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교육권연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공부방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전국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전국노동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전국학생행진/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민주노동당청소년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개인들)/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페다고지/ 평화바닥/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피자매연대/ 학교급식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 학생행동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사회당/ 한국사회당 학생위원회/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공공의약센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 국기법 및 국기법 시행령 관련 경과

□ 일제시대 – 애국조회 때 황국신민서사(아동용) 낭송 강요.

: “1.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께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 1949년 10월 – 국기제작법 공포

□ 1950년 – 국무총리 통첩, 문교부 국기에 대한 예절에 관한 지시를 통해 국기경례 강제

□ 1953년 9월 18일 – 형법 제105, 106, 109조(법률 제293호)에서 국기·국장을 손상·제거·오욕하는 행위에 대한 벌칙규정 도입

□ 1968년 3월 – 충남도교육위, 국기에 대한 맹세 최초 시행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 1971년 3월 – 영화관에 애국가 필름 돌기 시작. 박정희 정권 국기 사랑하기 운동 전개

□ 1971년 – 전남도교육위도 국기에 대한 맹세 시행

: “나는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나는 나라와 겨레를 지킨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 1972년 8월 – 문교부, 전국 학교에 ‘국기에 대한 맹세’ 암송 교육안 지시(문교부 장학 1011-688). 맹세문의 내용 일부 수정.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1972년 7월 – 전남 광양 진월중앙초등학교 국기 경례 거부 사건으로 주일학교 교사 양영례씨 구속. 국기·국장을 비방한 죄(형법 106조 위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6개월 선고

□ 1972년 12월 – 유신헌법 제정

□ 1973년 4월 – 전남 해남 신죽교회 이아무개 전도사 국기 모독 혐의로 구속

□ 1973년 9월 – 경남 김해여고 6명 국기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적

□ 1973년 충북 제천 지역 학교에서도 무더기 제적 사태. 제천 남천교회 백영침 목사와 강태호 주일학교 반사 국기 경례 거부 이유로 구속. 1974년 청주지방법원 “피고인이 국기를 비기할 고의나 국기를 모욕할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백 목사와 강씨에게 무죄 선고

□ 1976년 – 대법원 김해여고 사건 관련, “(학생은) 학교의 학칙을 준수하고 교내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을진대… 원고들의 종교의 자유 역시 그들이 재학하는 학교의 학칙과 교내 질서를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며 학교 쪽 손을 들어줌. “이 사건 징계처분은 …우상을 숭배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그 처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그 경례를 거부한 원고들의 행위자체를 처분의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놓음

□ 1982년 10월 – 국기에 대한 경례 때 맹세 병행 실시하도록 “국기에 대한 의례 및 애국가제창에 관한 지침” 발표(국무총리 지시 제23호)

□ 1984년 2월 – 국기에 대한 맹세가 포함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정ㆍ공포

□ 1996년 3월 – 82년 국무총리지시 23호 폐지하고, 국기게양, 관리 및 국민 의례에 대한 지침(국무총리지시 제1996-5호 : ‘96.3.12) 발표. 각급 행정기관 및 산하단체 등에서 각종 의식(행사)을 거행할 때 정식절차를 따를 것, 각급 학교와 각급 교육훈련기관 등에서 국기에 대한 예절교육 강화와 국민의례 실시할 것을 규정.

□ 2003년 12월 – 경기도 의정부 영석고, 박준규(17) 씨 고입 면접 전형서에 “종교적 신념상 국기 경례를 하지 않으니 양해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입학 거부. ‘국가·사회·학교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특수종교를 가진 학생은 불합격 처리할 수 있다’는 학칙을 이유로 거부한 것. ⇒2004년 1월 경기도교육청, 민원회신 결과에서 “학교장의 학생 선발권의 행사”라며 학교측 손 들어줌.

□ 2004년 9월 – 국기에 대한 맹세를 삭제한 ‘대한민국 국기법안’ 발의(홍미영 의원 등 25명 발의). 이후 국회에서 맹세가 포함된 국기법안(이상배 의원 대표 발의)과 병합 심의

□ 2006년 8월 – 부천 상동고 이용석 교사,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등을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 처분

□ 2006년 11월 7일 – 국회 행정자치위 ‘대한민국 국기법’ 관련 공청회 실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법에 규정할 것인지, 시행령에 규정할 것이지, 아예 폐지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

□ 2006년 11월 30일 – 대한민국국기법안 국회 행정자치위 법안심사소위 통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에 규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하고,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사전 공청회 실시 등을 거쳐 신중하게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과 방법을 처리하기로 정리.

□ 2006년 12월 22일 – 맹세문 없는 대한민국국기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국기법 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 2007년 1월 26일 – 대한민국국기법 제정

□ 2007년 4월 23일 – 행정자치부,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안과 시행규칙 입법예고. 국기선양활동이란 명목으로 초중등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함.

□ 2007년 5월 31일 – 행정자치부, 맹세문 수정안을 예시하고 의견 수렴하겠다고 발표

<수정안>(예시)

①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②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③“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 2007년 7월 국기법 시행령 국무회의 통과 예정

***** 국기법과 법 시행령안의 문제점

1. 대한민국국기법과 시행령(안)에 의한 맹세ㆍ경례 법적 의무화

□ 대한민국국기법

– 2007년 1월 ‘대한민국 국기법’(아래 국기법)이 제정돼 2007.7.27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기법은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국기법 5조는 모든 국민에게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국기의 존엄성 유지를 위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어 6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법을 규정하고, 자세한 방법과 절차 등은 시행령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볼 때, 국민의 국기 존중과 애호 의무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따라야 할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는 법 해석이 가능합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국기의 존엄성 유지 의무를 이유로 교육현장이나 국기가 사용되는 각종 시민의 생활현장에 개입할 수 있게 됩니다.

□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안

– 2007년 4월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국기법 시행령안은 7월 국무회의 상정을 목표로 행자부에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국기법 시행령안 2조는 행정자치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국기에 대한 선양사업(교육, 홍보)을 하도록 규정하고, 각급학교에서의 국기 선양 교육의 경우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그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이어 3조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의 자세한 방법을, 4조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 규정을 두어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주악하지 않는 경우에는 맹세문을 낭송”할 것을 규정하고 맹세문의 내용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 결국 국기법 시행령안까지 통과될 경우, 모든 국민은 ‘국기에 대한 존중과 애호 의무’ 아래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에 따라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2. 국기에 대한 맹세ㆍ경례 법적 의무화로 인한 인권침해 증폭 우려

– 국기법 제정으로 법제화되기 이전, 국기에 경례와 맹세는 대통령령이나 국무총리 지침에 의거, 각급학교와 공공기관 등에서 강요되어 왔습니다. 1970년대에는 애국주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당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이유로 반국가적 인물로 낙인찍혀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사례(2003년 박준규 씨 사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교사가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사례(2006년 부천 상동고 이용석 교사 사례) 등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표면화되지 않더라도, 각급 학교 현장에서는 지금도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마지못해 애국조회와 국민의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존재합니다.

– 이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법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령(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나 국무총리 지시(23호→1996-5호로 개정)만으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렇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가 법제화되기 이전에도 무수한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는데, 국기법 시행과 시행령 통과로 법적으로 의무화되기에 이르면 강제 효과는 더욱 커져 그 피해는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물론, 현 국기법과 국기법 시행령(안)에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하였을 경우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형법, 국가공무원법 등 다른 법과 연계시켜 처벌하거나 학교 재량권을 명분으로 퇴학ㆍ불합격 처분 등 제재조치가 가해진 사례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1999년 제정된 국기ㆍ국가법 자체에는 처벌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교육기본법 개정 △도쿄 도교육위원회의 경우 ‘통달’(2003.10.23)을 통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거부하는 교사들을 무더기 징계하는 조치 등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고 군국주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국기에 대한 경례ㆍ맹세의 법적 의무화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3. 국기에 대한 경례ㆍ맹세 강요와 인권의 충돌

□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 침해

1) 시민 일반의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 침해

– 신사참배와 함께 강요되었던 황국신민서사와 다름없는 일제 잔재라는 판단, 개인의 내심을 국가가 획일적인 방식으로 외부로 표현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사상ㆍ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단, 애국심을 강제나 훈육을 통해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교육적 양심,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종교적 계율에 위배된다는 종교적 신념 등 다양한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거부 행동은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기법과 법 시행령이 국기에 대한 존중과 애호를 의무화하면서, 그 구체적 내용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강제하는 것은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시민ㆍ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 대한민국 헌법 19조(양심의 자유)와 20조(종교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기법과 법 시행령에 따르면 각종 공공기관과 각급학교의 구성원은 물론 행사 참석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강요받게 됩니다.

2) 어린이ㆍ청소년의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 침해

– 특히 각급학교에서 국기 선양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애국조회, 입학식과 졸업식 등 각종 행사를 통해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강제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어린이ㆍ청소년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어린이ㆍ청소년도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 상징의식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와 자신의 종교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동의를 받지도 않은 채 공식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14조(아동의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 표현의 자유 침해

– 시민ㆍ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대한민국 헌법 등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한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에 따르면,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나 신념으로 인해 어떠한 강제, 불이익이나 제재를 받아서는 아니”되고(원칙 5), “국가 내지 국가의 상징을 비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아니한다”(원칙 7)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2003년 박준규 씨에 대한 의정부 영석고의 불합격 처분과 이를 인정한 경기도교육청의 판단, 2006년 부천 상동고 이용석 교사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 경기도교육청 징계위원회의 판단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국제기준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비판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유도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 교육권 침해

– 경제ㆍ사회ㆍ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3조(교육에 대한 권리), 아동의 권리에 대한 협약 28조(교육권)와 29조(교육목표), 교육기본법 4조(교육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와 12조(학습자의 기본적 인권 존중)에서는 교육에 대한 권리와 함께 교육과정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 교육권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학습권, 학습자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학교규율에 대한 권리, 인권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교육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유엔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13(6)에 따르면, 학습권은 1)이용가능성availability(양적으로 충분한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야 함), 2)접근성accessibility(차별없이 누구나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비차별ㆍ물리적 접근성ㆍ경제적 접근성 보장), 3)수용가능성acceptability(교육의 형식과 내용이 학습자에게 수용될 수 있어야 함), 4)유연성adaptability(변화하는 사회와 공동체의 필요, 학습자의 욕구에 부합)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 이에 비추어볼 때, 각급학교와 교육훈련기관에서 강요되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학습자의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와 충돌을 불러와 ‘수용 불가능한 교육’ 여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경례와 맹세를 거부했을 경우 학교당국과 교육기관으로부터 징계나 낙인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그 결과 마지못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거나(광양 오사리사건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김현호 씨 사례), 제적(김해여고 사례)과 불합격 처분(의정부 영석고 박준규 씨 사례) 등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교육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내심의 고백을 특정한 방향으로 강제함으로써 그 자체로 반인권성을 가진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가 ‘교육’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교육의 목표도 인권적일 것을 요구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반하는 것입니다.

□ 인종적ㆍ민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 특히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맹세 내용은 교육현장에서 함께 학습하고 있는 인종적ㆍ민족적 소수자들에게는 더더욱 적대적인 환경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이주노동자 자녀와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 재학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도 많고 다른 인종적ㆍ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자국 국기와 자신이 속한 민족이 아닌 타국의 국기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국제화의 흐름과 한국사회 구성원의 다원화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는 국제인권조약들이 공통적으로 규정한 비차별 의무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기자회견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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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인권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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