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3-15   589

[05호] [회원글밭] 일상 속의 과학기술

휴대전화 1천만명 시대의 단상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선 지도 벌써 오래다. 휴대전화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富)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지만, 어느덧 현대의 필수품 목록에 버젓이 오르게 되었다. 그 수가 많아지다보니 한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의 소음과 "난데… 가는 중이야"로 일관하는 이른바 '난데족'의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 하는 고통에 대한 호소가 쏟아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십대의 소비문화와 교묘하게 결합한 휴대전화의 유행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이나 그 기술을 이용한 응용품, 즉 기술품이 처음 시장에 등장해서 점차 확산되는 과정은 단지 물건의 확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구성원들의 생활양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나아가 삶의 방식이나 관점에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변화는 처음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우가 많다. 탄광에서 물을 퍼올리는 용도로 처음 개발되었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기차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여행의 의미까지 바꾸어 놓았다.

얼마 전 "아빠, 여기를 누르면 오빠 집이구요…" "전화기 속에 온 가족이 모였구나"하는 광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비슷한 류의 광고는 가족 사이의 유대와 정을 강조하면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디서든 생각나면 가족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편리하다. 그렇지만 이 편리함은 실은 직접 가족을 찾아보고 만나는 과정을 대체시키고 얻어진 것이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대체물인 셈이다.

여러 가지 사회활동 중 하나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만남은 몇 마디의 대화 메시지로 환원시킬 수 없는 훨씬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친한 친구와의 일상적인 만남에서도 우리는 서로 나누는 대화 이상의 많은 것을 감지한다. 몸짓, 분위기, 얼굴 표정, 옷매무새, 심리적인 상태… 사실 우리가 나누는 대면(face-to-face) 대화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한데 합쳐진 '무엇'이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은 만남의 개별화의 확산이다. 기술적으로는 다중 통화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화 통신은 1:1 통신의 특성을 갖는다. 나아가 개인통신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는 휴대전화는 만남의 사유화로까지 나아간다. 다시 말해서 만남이 가지고 있는 공공적, 공동체적 성격의 대체물인 것이다. 가족들과의 만남은 가족 구성원 개인들과의 개별적인 통화로 환원시킬 수 없다.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모임은 친구 개인들과의 1:1 통신보다 훨씬 풍부하다.

사유화는 오늘날의 기술 발전이 그리는 궤적 중 하나이다. 그것은 극소전자혁명이라 불리는 기술적 진전으로 가능해졌지만, 소니사(社)가 워크맨을 내놓아 전세계적인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데에는 단지 기술적인 측면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여튼 워크맨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음악회든 안방이든 모여서 함께 듣는 것으로만 알았던 음악 감상을 사유(私有)할 수 있개 해 주었고, 오늘날 이어폰을 꽂은 젊은이들의 모습은 대학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의 정신적 풍경(mental landscape)의 투영인지도 모른다. 워크맨에서 개인이동통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관계들을 기술품으로 대체시키고, 그 기술품을 소유하고자 애쓴다. 마치 그 기술품을 소유하면 그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무엇이 그런 것들을 대체시킨 것일까? 효율성일까? 명절과 휴일을 반납하고 바쁘게 일을 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편리한 휴대전화 한 통으로 대체시키고,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일까? 수백년 전에 기차가 등장하면서 여행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차창에 스키는 풍경으로 대체되고 빠른 속도와 목적지만 남게 되었듯이, 역사 속에서 기술품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익숙했던 많은 것들을 새로운 것들로 바꾸어 왔다. 그러나 사회가 모든 새로움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술사회학의 무수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선택에 효율성이라는 요인만이 작용한 것도 아니다. 물론 한편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거대 자본의 논리와 엄청난 광고 홍수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에 스며든 숱한 대체물들은 또다른 대체물을 선택한다. 어느새 기술품들은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신체, 사고방식, 정체성(正體性)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휴대전화가 필수품 목록에 오르면서 내 가방은 더 무거워졌다. 이러다간 우리의 존재라는 가방 속에 대체품들만 우글거리게 되는 게 아닐까?

* 이 글은 방송대학보 1080호(1999.2.8)에 실린 것을 옮겼습니다.

김동광 (출판 및 시민교육 사업팀, 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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