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5-28   8555

“안락사”논의를 둘러싼 배경과 전망

미국의 “죽음의 의사” 커보키안(Jack Kevorkian, 1928- )에 대한 살인죄 판결과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로 미국과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안락사를 둘러싼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안락사는 그 자체로 매우 예민한 문제이거니와, 논의를 할 때 그 개념 및 정의에 대해서부터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안락사의 정의와 그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생명의료윤리학에서 정의하는 안락사(euthanasia)는 ‘어떤 사람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위 또는 무위(無爲)에 의해, 그 사람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야기하는 행위’로서, 대체로 현재의 의학수준으로는 치유불가능한 질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 환자를 보다 일찍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무위에 의한 것을 안락사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으며, 대한의사협회는 그것을 안락사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있다.).

즉 정의상 안락사는 우선 그 행위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죽임을 당하는 당사자의 이익이 아니라 예컨대 가족이나 사회의 이익을 위해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는 위의 정의에 따르면 이미 안락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살인행위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안락사의 정의는 명료하고도 엄격한 것으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정의를 매우 소중히 내세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락사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대의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듯이,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있다. 생명을 당사자조차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는, 신(神)이 주신 절대적이고도 불가침한 것이라고 여기는 종교인들의 주장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설사 매우 고통스런 삶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죽음이 과연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 있을 수 있다.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그러한 원론적인 논의 외에, 안락사 금지론자들이 내세우는 핵심적인 반대 근거는 가족이나 사회 등 환자 이외의 이익이 마치 환자의 이익인 것처럼 가장되거나 착각되는 경우가 없(적)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 억울한 죽음이 초래(양산)되리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허용론자들은 그것은 안락사로 위장한 살인행위이므로 기왕의 살인죄로 다루면 되는 것이지, 안락사를 둘러싼 찬반 논의에 원천적으로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억울한 죽음이 (얼마만큼) 생겨날지를 예측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것은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안락사의 정의를 벗어나는 죽음의 유무나 정도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오는 사실을 보아서도 그렇다.

우리는 여기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될 경우, 억울한 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라는 장애인들로 구성된 미국의 한 단체는 안락사 합법화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이들이 안락사 허용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도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터에,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 단체의 회원으로 3살 때부터 심한 소아마비 장애자인 앨리너 스미스는 ‘정상인이 자살을 원한다면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취급받겠지만, 심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좋은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여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잭 켐프는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병원이나 보험회사에서는 치료비가 많이 드는 영세민이나 난치병 환자, 그리고 중증 장애인들을 안락사라는 미명 아래 무더기로 죽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즉 장애인이나 영세민들에게는 안락사가 본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음으로 양으로 강요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날지 여부를 떠나 합법화 자체가 적어도 심리적으로 대단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계급·계층적 불평등과 억울함 이외에 안락사와 관련하여 또다른 문제가 상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자기자신의 이익보다 가족의 “공동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주의적 경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명목적인 “환자의 최선의 이익” 아래 환자의 실제적인 이익과 의사(意思)가 파묻힐 가능성이 없지 않을 수 있다. 대체로 명분과 현실, 정의(定義)와 운용 사이에는 괴리가 없지 않은바, 안락사 논의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처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동안 특수한 경우에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인정하여 왔다. 즉 국가 형벌권으로서의 사형(死刑)제도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그러한 견해의 바탕에는 생명의 존엄성과 더불어 생명의 일회성, 비가역성에 대한 인식이 함께 하고 있을 터이다. 언뜻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이 높아지면서 안락사 허용의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필자에게는 생명보다 더욱 우선하는 무엇이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견해의 반영으로 읽힌다.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생명경시가 아니라 남의 생명을 포함하여 타인에 대한 존중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논리적 귀결로 안락사 인정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러나 안락사를 사회제도화, 합법화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면서도 차원이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현재의 의학으로서는 치유불능한 상태, 제어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환자의 독립적인 자기결정, 다른 대안의 부재 등 엄격한 규정과 정의를 둔다 할지라도 그 규정이나 정의와 달리 오남용의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또 그러한 오남용의 결과는 고귀한 인간 생명의 희생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은 결코 진공이나 무균 상태가 아닌 것이다.또한 특히 간과해서 안될 점은, 안락사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국민들 사이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안락사가 원리적으로 인간의 자율성 확대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포함하여 존엄성 신장을 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구성원의 인식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갈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안락사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피해서도 안 되고, 피할 수도 없는 문제가 되었다. 더욱 활발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수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 : 대한의사협회가 제정(2001년 4월 19일)하여 공포(2001년 11월 15일)한 <의사윤리지침> 중 안락사 및 죽음에 관련된 조항

제57조(말기환자에 대한 역할)

① 의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② 의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③ 의사가 호스피스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제58조(안락사 금지)

① “안락사”라 함은 환자가 감내할 수 없고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환자 본인 이외의 사람이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할 물질을 투여하는 등의 인위적·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연적인 사망 시기보다 앞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② 의사는 “안락사”에 관여하여서는 아니된다.

제59조(의사조력자살 금지)

① “의사조력자살”이라 함은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 데 필요한 수단이나 그것에 관한 정보를 의사가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죽음을 촉진하는 것을 말한다.

② 의사는 “의사조력자살”에 관여하여서는 아니된다.

제60조(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치료)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

황상익 |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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