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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연대    행복한 참여 따뜻한 연대

  • 간행물<시민과학>
  • 1999.10.15
  • 570


1. 합의회의의 의의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세기가 될 것이고, 생명복제기술을 비롯한 생명공학기술을 육성, 발전시키는 것은 다음 세기 국가 경쟁력의 초석이 될 것이다. 복제기술을 통해 멸종 위기에 있는 동식물들을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의료적 혜택은 기존의 의학 개념을 뒤바꾸어 놓을만한 것이다. 생명복제기술 육성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이다.

생명복제기술은 현재의 종교적, 윤리적, 법적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할 위험성을 가진 기술이며, 기술 자체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유전자 조작기술과 결합될 경우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하게 교란시킬 수도 있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흔들리게 되면, 자유와 인권, 가족 등 인류가 소중하게 가꾸어 온 가치들이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다 인간적이고, 평등의 원리에 부합하며, 생태계의 질서와 조화되는 다른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생명복제기술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이번 합의회의는 이런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것이 시민들에 의해서 판단되는 장이었다. 합의회의의 첫 번째 의의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충돌하고 상호작용함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결과(또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바로 합의회의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이다.

그 동안,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상호작용하고 논쟁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이 상호학습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산출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실천적 계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첫번째 사례라는 것이 합의회의의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합의회의의 목표

합의회의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적 논쟁의 촉발'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위 목표는 참가하는 시민패널과 전문가패널들의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학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상호학습과정에 관한 평가는 과정/절차 평가 부분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사회적 논쟁의 촉발' 부분으로만 한정하도록 한다.

그런데, 사회적 논쟁의 촉발에 관해서는 합의회의 자체만으로는 평가하기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논쟁이라는 것은 해당 사회의 정치·문화적 특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양한 제도·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현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합의회의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는 사회적 논쟁의 촉발을 잣대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곧바로 합의회의 모델의 유의미성을 재단하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고려하여 현실적인 평가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논쟁의 촉발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 합의회의의 경우 작년에 비해 언론(특히, 신문사)에서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주요일간지들에서 합의회의 결과를 그 다음날 곧 바로 기사화한데서도 그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만이 합의회의의 의의와 생명복제기술에 관한 기간의 논쟁, 그것이 가지는 복잡성과 중요성을 자세하게 기사화하고 있을 뿐,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은 단순 기사로 처리하고 있어서 '사회적 논쟁의 촉발'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감이 있다. 더군다나 조선일보의 경우는 기사 제목을 '생명복제 무조건 반대'라고 뽑는 등 합의회의의 의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무시, 왜곡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면, 합의회의 예비모임에서부터 취재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생명공학과 관련된 기획 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 논쟁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고, 합의회의 이후에는 그 결과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사화하고 있다. 여기서 합의회의와 언론이 상호 협조하면서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는 긍정적 과정을 볼 수 있다.

합의회의의 주체

합의회의의 주체는 시민패널, 전문가패널 그리고 주최 단체와 진행팀이다. 여기서 특히, 시민과 전문가패널이 중요한데, 먼저 전문가패널에 있어서는 생명복제기술에 관한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고르게 참가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복제기술의 이점과 문제점, 그와 연관된 제도, 교육, 종교적 문제를 포괄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가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와 찬성의 견해로 구분해서 볼 때, 찬성하는 전문가는 과학자, 의사, 변리사 등 구체적으로 복제기술의 세밀한 부분을 다루는 전문가들이었던 반면,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철학자, 사회학자, 종교학자 등 인문학의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한가지 아쉬운 점으로 지적 될 수 있다. 생명복제기술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성의 경우, 과학자들이 가장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답변을 찬성측 과학자들로부터 제대로 듣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시민패널들이 전문가 패널들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점을 지적했는데, 전문가 패널 구성상의 문제점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라 생각된다. 물론 전문가패널 구성상의 문제점은 주최측의 미숙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사회 전문가들의 실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민패널에 대해서 본다면, 그 대표성을 검토하기 전에, 일반시민들이 과학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다양한 자신들의 가치와 견해를 가지고 참여한다는 것 자체의 중요성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른 정책 영역도 그러하지만 과학기술정책의 경우는 특히 해당 분야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만이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정책 제언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기존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합의회의는 그러한 상식을 뒤엎는 과정이었는데, 오히려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야말로, 전문가적 편협성을 건전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다음으로 시민패널이 과연 일반 시민들의 견해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것은 합의회의의 정당성과 관련된 부분으로, 더군다나 지금처럼 정부나 의회가 주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회의 결과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단체나 집단이 합의회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면 불거질 수 있는 가장 큰 논쟁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패널의 대표성 문제가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의 문제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16명의 시민으로 인구통계학적인 대표성을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합의회의의 취지에 비추어서도 통계적 대표성이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일반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대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곧, 시민패널들간의 논쟁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논쟁점들이 포괄되고 심도 있게 검토되었는가 하는 점에서 대표성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합의회의에서는 합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합의에 이르는 과정, 합의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주체에 대한 평가는 다시 절차 및 과정에 대한 평가와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체 문제에서 각 나라의 정치·제도·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로 합의회의 주최기관이다. 덴마크의 경우 의회 산하의 기술영향평가국에서 합의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정부기관과 시민단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합의회의를 주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시민사회의 성숙 정도나 정부 기관의 공정성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당장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합의회의를 그 취지에 걸맞게 진행하기에 적절한 주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합의회의가 자체 과정뿐 아니라,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장기적으로는 의회, 정부 등 국가기관 또는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후원하는 단체에서 합의회의를 주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합의회의의 과정/절차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은 한편으로는 형식적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다른 한편에서는 절차보다는 실질적 내용에 대한 강조로 대별되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지방자치제의 실시 등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 민주주의가 올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의 확산 등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그래서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긴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인데, 합의회의 과정은 이러한 긴장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기든스가 말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민주화시키는 것으로서 심의민주주의이라 할만한 것인데, 대의제 민주주의를 인정하되, 사회적으로 성찰적인 논쟁을 통해 형식적 절차가 의미와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민주화시킨다는 것이다. 합의회의의 과정에 대한 평가에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관점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절차에 관한 평가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최측의 공정성이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주최측은 해당 주제에 관해 특정한 견해를 주장하지 않고 특히, 시민패널들로 하여금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깊이 있게 주제에 접근하고 의제와 견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조력하여야 한다. 합의회의가 끝난 후, 한 시민패널이 지적했듯이 프로젝트 책임자인 김환석 교수의 말 한마디는 그 자체로 시민패널들에게는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갔던 것이 사실이고, 만일 주최측의 특정한 의도가 합의회의 결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 확인 또는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합의회의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제3자로서 참여하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합의회의 전과정에 걸쳐 주최측 및 진행팀의 객관성, 공정성 유지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예비모임은 물론이고 본회의 전과정에서 주최측과 진행팀은 자신들의 특정한 견해가 시민패널들의 토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사회자 선정에 조언을 한 것, 의제 선정에서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에 집중해 줄 것을 부탁한 것 등은 정당한 개입이었다고 보여지며, 결과적으로 매끄러운 진행에 도움을 주었다.

다만, 본회의 첫날 연우무대의 연극이 명백하게 생명공학기술의 암울한 미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패널들 일부는 주최측의 견해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점이 옥의 티였다고 지적할 수 있다. 클로나이드 사에서 합의회의가 모두 끝난 후 이에 대해 진행팀에 문제제기를 한 것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자 선정 문제에서도 보다 세밀하고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했다고 보여지는데, 시민패널들이 평가 과정에서 이 부분에 많은 문제제기를 한데서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김환석 교수의 의도를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런 의도를 미리 이야기하고 그것을 이해한 시민패널들이 스스로 사회자를 선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전문가패널과 시민패널들의 상호학습과정에 대한 부분이다.

먼저 전문가패널들의 상호학습과정에 대해서는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3박4일의 합숙과정을 거친 시민패널들과는 다르게, 전문가들의 경우 합의회의 첫날에는 개별적인 발표만 하였을 뿐이고, 둘째 날에도 시민패널들의 질의에 개별 전문가 별로 응답하였을 뿐 전문가간의 의견 교환이나 논쟁은 거의 없었다. 간접적으로 서로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한 학습과정이라든가, 합의회의 전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견해에 대한 존중,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가치로서의 접근을 인정하는 등 새로운 (합의회의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기도 하지만,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시민패널들의 경우, 합의회의에 참가함에 따른 학습과정은 실질적, 과정적, 성찰적 측면 모두에서 지대한 것이었다. 실질적 측면(지식, 견해)에서의 학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참가하기 전에 생명복제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이나 불안감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토론을 진행하는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견해의 변화 과정은 보다 극적인 것이었는데,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견해가 서로 교차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6명의 시민패널들 가운데, 견해 변화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7명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비민주성, 일회적 공청회의 한계 등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시민패널들을 대상으로 합의회의 전, 중간, 후에 설문조사를 하게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합의회의 전의 견해 1~5와 합의회의 후의 견해 1~5가 내용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곧, 합의회의 전에는 막연한 불안감이나 기대로 찬성 또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면, 합의회의 후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다른 견해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찬성과 반대를 표한다는 것이다. 또한 의제 자체도 토론 과정을 통해 형성, 발전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생명복제 자체를, 나중에는 동물복제와 인간복제를 나누고, 다시 인간 배아복제와 개체복제, 수정후 14일 이전과 이후, 의료적 목적과 식량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의제가 시민들 자신의 의제로 형성되는 것은 본회의 전문가 패널들과의 토론 이후였다.

한편, 시민패널들의 과정적 (합의회의 과정에 대한 태도, 시민참여에 대한 태도) 변화와 성찰적 (자신의 역할에 대한 실천적 의미부여) 변화도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과 시민참여에 관한 태도 변화가 두드러진데, 처음에는 대체로 과학기술 발전 경로의 객관성, 불가피성을 전제하는 태도에서, 본회의를 거치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과학기술 발전 경로 자체가 사회적으로 토론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며, 그러한 과정에 시민들의 견해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러한 과정에 다양한 가치와 자원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규범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합의회의는 그 자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두환(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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