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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행물<시민과학>
  • 2000.04.15
  • 337


작년 9월 18일 원자핵공학과 한 실험실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는 서울대 역사상 전례없는 사고였다. 특히 대학원에서 필수적인 연구 과정 중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였다. 안팎으로 실험실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그 결과로 보통의 경우에는 보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소한' 사고들도 속속 보도되었다. 서울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공언했다. 실제로 서울대 공과대학에서는 지난 2월 '공과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규정'(이하 안전 규정)을 만들어 실험실 안전 지침을 제공하는 한편, 학교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이 외부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학교측에서 대책 마련 진행 과정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만들어진 '실험실 폭발사고 대응과 대학원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이후 실험실 안전 대책위)가 학교측과 가진 여러 차례의 면담에서 학교는 여타의 자료에 대해 "열람할 수는 있으나 복사 등 유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일체의 입장 발표를 거부한 바 있다. 게다가 마련된 대책들도 한결같이 개별 실험자의 책임과 안전의식을 강조하는 것뿐이었다. 소중한 생명이 셋씩이나 사라진 사고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도 그냥 지나쳐갈 수 없는 부분이다.

실험실 안전,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교 실험실 안전관리에서 이번 사고로 드러난 문제점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로 실험실 안전과 관련한 안전체계가 전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위험한 이공계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 중에서도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독립 부서를 보유한 대학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안전관리를 개별 실험실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고, 학교에서 책임지고 있는 부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이를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수습하는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개별 실험자, 실험실의 책임일 따름이다. 관리를 담당할 전문 인력과 부서, 예산을 보유한 곳은 KAIST 정도가 전부였다.

둘째는 안전교육이나 장비가 너무나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모든 관리와 책임이 개별적인 차원으로 전가되고 있는 만큼 실험자에 대한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겉치레 정도의 안전교육만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서울대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생은 단지 이틀의 안전교육만을 받을 수 있었고, 교육이 모두 강의 위주여서 실제 실험실 상황을 반영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실험실 안전 대책위에서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실험실 안전 교육을 동기나 선배에게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마찬가지로 안전 장비도 미흡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곳도 드물었다. 때문에 상당수의 안전 장비가 고장난 채로 방치되고 있었고, 그나마도 소화기나 환풍기 등 기본적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사고가 일어난 경우를 대비한 보상체계가 미흡했다. 서울대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경우에 속하는데, 서울대 차원에서 보험에 가입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는 실험실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보상 체계가 아닐뿐더러 다른 대학의 경우에는 보험금의 액수가 너무 적어 충분한 보상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 보상체계가 반드시 사고 후 처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 모든 실험실이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게 되어 있고, 그 결과로 실험실의 안전 관리 실태를 보험사에서 수시로 감시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보상 체계가 사고를 방지하는 억지책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기능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보상을 받는 절차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최소한의 보상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험실 안전에 관한 동상이몽들

실험실 안전 문제와 관련하여 대학의 입장은 이것이 철저하게 개별 실험실의 문제이며 교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이번에 만든 안전 규정을 보면 '안전관리 위원회'를 만든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 위원회는 각 실험실의 안전 관리 상황을 감시하고 안전 규정을 어기는 실험실의 경우에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위원회는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어 그 기준이 모호하게 되어 있다. 또한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감시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위원회의 자의적인 판단에 안전을 맡기고 있다. 그리고 위원회가 서울대의 교수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이제까지의 실험실 위험이 교수들의 묵인 아래 존재해 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서울대 실험실 안전 대책위와의 면담에서 서울대 공과대학 부학장인 김형준 교수는 안전관리 위원회가 실험 중 사고를 책임지는 곳이 아니라고 밝혔다. 각 실험실 운영은 담당 교수의 권한이므로 자율성에 맡길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고의 책임도 교수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 경우에 있어서 학교에서 어떤 강제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실험실 안전을 교수의 양심에 맡겨버리고 있는 형편이다.

교수들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실험실에서의 안전 사고는 실험을 하는 사람의 주의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위험한 실험을 하는 실험실에서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나는 예전에 이보다 더 위험한 실험을 했지만 멀쩡했다. 너희도 조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모든 위험을 실험자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교수 중에는 자신의 실험실 관리에 대한 외부의 안전관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험실의 자신의 관리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지적을 자신의 실험실 운영 방식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무관심한 학교측의 대응과 잘 맞아떨어져 실험실을 안전의 사각지대로 만들어 버린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많은 수가 자신이 하는 실험의 위험성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을 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위험해서 못하겠다고 하기에는 교수와 선배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학원에서 담당 교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교수나 학교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실제로 많은 대학원생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하고 있고,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부분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전 문제가 자신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자신의 실험을 방해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그것은 자신의 논문과 졸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논문 압력이 강한 박사과정에서 이러한 타협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학원생의 경우에 자주 접하게 되는 태도 중 또 하나는 "어차피 몇 년 후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런 방관자적인 입장은 실험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실험실 안전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학교에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혹은 전문가이든 아니든 실험실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 문제는 곧 돈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다. 돈이 부족하기에 안전 장비를 살 수 없고, 건물도 짓지 못해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따진다면 대학 중에서도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는 서울대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났다는 점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국립대 재정의 3

분의 2를 거두어가는 서울대는 대학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대학이어야만 할 것이다.

돈이 부족하다는 학교나 교수의 주장은 현재 우리나라 실험실의 상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안전을 제쳐둔 채 실적만을 따지는 우리나라에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안전 장비를 구입하거나 관리에 투자하는 것은 항상 뒷전이다. 안전에 투자되어야 할 돈은 실은 또다른 연구를 위해 바쳐진다. 그래야만 더 많은 실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대에서의 사고 이후 서울대 동창회 신문에는 "안전 사고에 대한 지나친 부각은 연구 의욕을 떨어뜨린다"라는 요지의 글이 실린 적이 있는데, 이는 실험의 결과와 안전에 대한 학교와 교수의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돈이 많은 대학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 위험한 실험을 더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돈의 액수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용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또다른 잘못된 인식은 실험은 원래 위험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실험의 특성상 위험한 물질을 다루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원래 실험이란 미지의 결과를 예상하고 하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위험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동차가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고 하여 사고에 대한 대비책마저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실험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욱 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원래 실험의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강조는 학교와 교수들이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위험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조심하는 실험을 하는 사람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며 안전 책임을 대학원생에게 전가해 버리는 것이다.

비슷한 입장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대학원 실험실의 안전을 어떻게 일반적인 체계를 통해서 보장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실험의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위험의 종류도 다양하고, 일반적인 관리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방기하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기본적인 소방시설마저도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양한 위험을 핑계로 할 수 있는가. 지금 요구되는 것은 기본적인 안전 시설의 확충과 실질적인 교육, 보상체계 마련, 관리 인원 충원 등 가장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다.

안전?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실험실 안전의 문제는 비단 대학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유독물질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언제든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90년대 초에도 서울대 실험실에서 흘려보내는 각종 폐액 등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실험실 폐기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폐액이 별도의 전문적인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제점은 많다. 실험실 안전 대책위의 조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서울대는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독 가스를 정화장치 없이 그대로 배출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발암물질 등 서울대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교직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아마도 다른 대학의 사정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몇 차례의 심각한 안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의 대책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앞서 언급했던 서울대의 안전 규정은 거의 대부분이 실험자가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정리한 수준이고, 그나마도 유독 물질이나 폭발성 가스 등 제한적인 내용만을 다루고 있어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마련된 안전대책을 살펴보아도 전문적인 관리 인원을 확충한다든가,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등과 같은 제도적인 대책 마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있던 안전 교육을 확충하고, 교수들로 구성된 안전관리 위원회를 만든 것 정도이다. 교수들이 얼마나 자주 공대 실험실을 점검한다는 말인가. 그런 면에서 서울대의 대책은 기존의 체제와 구성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헛된 공약과도 같은 것이다. 언제까지 안전의 문제를 개인의 성실성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일까.

노윤호(우리모임 회원, 서울대 실험실안전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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