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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연대    행복한 참여 따뜻한 연대

  • 간행물<시민과학>
  • 2003.02.11
  • 347
1.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과학기술 혹은 과학기술과 사회와 관련한 쟁점 중에서 시민들이 주목할 만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생명윤리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법안 마련은 어디까지나 외부로부터의 규제입니다. 외부로부터 지나친 규제나 간섭을 받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규제하는 일입니다. 법안을 마련하여 족쇄가 채워지는 것보다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스스로 시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습니다. 또 그럴 수 있도록 시민들도 과학기술인들을 믿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다행히 한국분자생물학회는 그 동안 생물학자들은 물론 사회의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안을 거의 완성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저도 참여했습니다만 한림대 송상용 교수님의 주도로 이제 막 "과학기술자 헌장"을 마련하여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계속 이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지요.

'이공계 위기'란 단순한 현상일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초과학의 육성입니다. 국가의 운명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달려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기초과학을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

아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국가 과제입니다. 선진국들이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수준에 맞춰 우리도 그 정도의 비율로 국민총생산의 일부를 투자하는 전략을 계속하면 운이

좋을 경우 지금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는 점점 더 격차가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파격적인 수준의 투자가 기초과학에 주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늘 암울할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시민들이 인식하여 정부를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또 하나 과학기술인들이 남북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경제력의 차이가 너무 심하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국가경제적 또는 사회적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겁니다. 통일독일이 겪은 가장 어려웠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고 푼돈 몇 푼 집어주는 대북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지요. 남북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균형이 이뤄져야 경제 균형도 그만큼 더 빨리 이뤄질 것입니다. 남과 북의 과학기술인들이 마주 앉아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교류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2. 과학기술 분야와 관련해서,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위에서 대충 한 얘기입니다만 지난 정부들처럼 너무 서둘러 기술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에서 탈피하여 장기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정책을 펴길 바랍니다.

3. 최근 몇 년간을 돌이켜 볼 때, 한국의 여러 대학/대학원들이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여러 가지 사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대학들이 그 기치에 걸맞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 능력 강화를 위해 각 대학들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종류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너무나 거창한 질문이라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논

문의 수나 세는 업적평가 체제에서는 창의적인 연구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미국의 일개 개인회사가 만들어낸 SCI라는 기준에 무지몽매하게 목을 매는 일일랑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소위 임팩트팩터(impact factor)라는 것은 논문이 많이 나오는 분야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아도 기초 중의 기초 분야를 하는 학자들에게는 이중으로 불리한 체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일 SCI 등재여부와 임팩트팩터를 반드시 고집해야 한다면 분야마다 상대적인 기준을 마련할 것을 제안합니다. 예로 들면 제 분야에서 가장 논문을 내기 어려운 학술지의 임팩트팩터가 생물학의 다른 분야의 학술지들 중 거의 최하위 수준과 맞먹는 상황인데 그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자기 분야의 학술지들의 임팩트팩터의 평균을 산출한 다음 그것에 비춰 자신의 논문을 비교평가하는 것입니다. 현재 저는 외국의 제 동료들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연구 업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분자생물학 분야에 있으면서 하위권에 머무는 이들로부터 '논문도 쓰지 않으면서'라는 식의 비난을 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시정돼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들이 조율되고 나면 상당 부분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4. 최근 국내에서는 선생님의 저서들을 비롯해서 많은 종류의 과학서나 과학 대중화와 관련된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 분야의 출판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중에서도 미진하다거나 좀더 소개될 필요가 있는 분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요? 아울러 과학 대중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요구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과학대중화를 위해서는 제가 여러 기회에 수없이 강조한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릴 수밖에 없군요. 과학기술인들이 과학대중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또 실제로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한두 번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자신의 업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그 때문에 연구 업적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가능하면 연구실에 숨으려 합니다. 저는 여러 차례 '당당한 멍석을 깔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름하여 "과학문화 석좌교수" 또는 "과학홍보 국가교수" 제도를 만들어 과학대중화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할 용의가 있고 그런 재주가 있는 과학자들에게 다른 동료들이 봐도 당당하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과학대중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거의 모든 과학기술인들이 인정합니다. 다만 그런 일을 희생적으로 하고 있는 동료들을 그리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당당한 멍석을 펴주면 연구실에 숨어 있던 과학기술인들 중에 상당수가 뛰어나올 것이고 그들의 노력을 과학기술계가 모두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최재천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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