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2-11   643

인터넷 미디어 공간에서의 과학기술

어느 생명과학 논쟁의 기록

새천년의 한구석에서 두려움, 희망, 경악을 나르는 이상한 행렬이 다가오고 있다. 이 행렬에는 특허 돼지, 임신한 남자, 귀머거리 부모의 요청으로 귀머거리로 태어난 아이, 형제자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복제된 아이, 원숭이 심장을 단 사람, 인간의 장기를 길러내는 농장, 인공적 피부와 뼈를 가진 교통사고환자, 유전분석가에 의해 예상수명을 선고받은 사람들, 디자인된 자녀를 위해 영재학교를 요구하는 부모들을 포함하고 있다.

≪가디언 Guardian≫, 1999년 7월 31일)

생명공학은 생명체를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기술로서, 우리주변의 모든 분야를 변혁시킬 미래의 유망기술 중 하나이다. 그 파급효과는 보건의료, 농업, 환경, 에너지, 전자정보, 화학소재, 기계 등 종래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생명공학은 우리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필요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하고 개선시킬 수 있다.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의 수정방안 연구』, 2001, 과학기술부)

들어가는 말

생명공학이라는 용어가 이제 과학자의 실험실과 논문에서 벗어나 센세이셔널한 기사가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대중은 유전자, GM 식품, 복제 배아세포, 줄기세포 이런 생명공학의 용어에 상당히 익숙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익숙해지는 데에는 돌리, 영롱이와 같은,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을 지워진 것도 한몫 한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이 대중에 알리는 것은 사회적 책임 또는 의무라고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유도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권장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입법질서에서 구현되는 대중의 생명공학에 대한 인식수준을 높임으로서 연구의 제약을 완화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과학자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또한, 생명공학 연구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역시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겠다. 대중들이 생명공학에 대한 이해 수준을 점차 높여가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이유에 대한 이해의 수준도 이에 발맞추어야 할 것이다.

미디어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유력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 중 인터넷 미디어는 대안언론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상호작용성, 개방성, 수평적 민주적 구조 등으로 인하여 대안적 공론장이 되었다. 특히, 기존의 미디어가 갖는 글쓰기의 특성 즉,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필요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 소통의 신속성 등으로 인해 다양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수렴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는 라는 제목의 생물학 관련 연재물이 실리고 있다. 이 연재물에 “위험 없는 성공은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2002년 12월에 게시되었다. 이 기사에 대해 필자는 해당 기사의 필자와 e-mail 논쟁을 벌였으며 이 결과를 프레시안에 게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인터넷 미디어 공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다루어진 쟁점들은 과학기술자들이 생명과학 문제에 대해 갖는 다양한 관점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전개

「위험 없는 성공은 없다」의 주 요지는 “줄기세포를 치료목적으로 이용하여 생명을 연장하거나 불치병을 치료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체세포 복제 기술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개발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도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반론과 저자의 재반론이 수 회 진행되었는데 개별사안에 대한 반론 등을 배제하고 논쟁의 주요논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반론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이 국가 내에서 빈부격차에 의해 반영됨과 동시에 국가 간에도 갈등과 격차를 가져오게 된다. 체세포 복제 기술의 발전이 치료목적으로 사용되도록 발전된다 할지라도 결국은 많은 비용을 지불 할 수 있는 극소수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금단의 열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돌리, 영롱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험관 복제가 수행되었는지, 성공적으로 착상된 배아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배아에서 기형이 발견되었는지 또 성공적으로 복제된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기형을 볼 때 핵치환 기술은 불안정성이 크다.

○체세포 복제는 생명의 탄생, 종의 유지, 진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을 혼란시켜 인간 존재의 기반을 훼손시킨다. 인간의 숙명론적 생명론은 이제 복제자의 복제 이유로 대체될 것이며 소위 서로 생식 불가능한 새로운 인간종의 출현까지 예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반론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과 자기 통제는 인정되나 과학자의 연구결과가 사회구조에 반영되어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기술의 개발이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 자체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며 불평등은 과학자 혹은 기술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자체의 구조적 계급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체세포 핵치환 기술의 연구에 대한 찬성이며 인간복제에는 반대한다. 체세포 복제 연구의 성과는 불치병의 치료 등에 이용되므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방법이며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의 진화에서 인간이 태어났고, 인간은 우연찮게도 자연의 힘 뿐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획득했으므로 인간의 기술개발의 결과는 그것이 좋건 나쁘건 간에 역시 자연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은 “사회의 배분적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서 연구 결과의 활용에 대한 이해의 상충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은 연구 결과가 직접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계급적 충돌이며, 부분적으로는 생명공학 연구자와 필자가 속해 있는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의 이해상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나머지 두 논지에는 인간 복제에 대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체세포 복제가 결과적으로 인간복제를 위한 기술을 확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즉, 체세포 복제 기술의 개발은 최근 “클로네이드”의 인간복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복제로 나아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소위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the slippery slope argument)”과 관련되는데 재반론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재반론의 첫 번째 논지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리적, 가치중립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과학기술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으로 소위 과학 또는 연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인식론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두 번째 논지는 체세포 복제와 인간복제를 분리하도록 하며 체세포 복제의 편익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분리’가 최근의 생명과학에 대한 찬성측의 담론이 갖는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간활동과 과학기술의 개발을 진화의 일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변형된 일종의 유전자 결정론적 관점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맺는글

생명공학을 둘러싼 논쟁은 바이체커(Weizs cker, 1995)가 정의한 바와 같이 “새로운 기회-오래된 리스크”(The New Chances-Old Risks) 진영과 “새로운 리스크-오래된 기회”(The New Risks-Old Chances) 진영의 다툼이다. 이 글에서 보인 한 다툼은 “새로운 기회-오래된 리스크” 진영의 주장이 ‘과학의 가치중립성’, ‘인간복제의 분리’, ‘결정론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두 진영간의 투쟁은 대중을 향한 정당화 투쟁이며 대중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획득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새로운 리스크-오래된 기회” 진영은 우리나라에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터넷 미디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우철웅 | 서울대 농공학과 박사후과정, 신구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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