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박근혜퇴진행동 2017-12-05   1143

[보도자료] 12월5일 독일 베를린 <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시상식

12월5일 독일 베를린 <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시상식 

 

 촛불 시민대표로 세월호 생존학생 장애진씨 수상소감 발표

 “이런 자리에 설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자랑스럽다.” 

 독일 현지시간으로 12월 5일 저녁 7시 <2017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시상식> 이 진행되었다. 시상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쿠르트 벡 대표가 수여하고, 촛불시민대표인 세월호 생존학생 장애진 씨와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박석운 공동대표가 촛불 국민을 대신하여 수상하고, 촛불시민대표인 장애진 씨가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장애진 씨는 수상소감에서“대한민국 국민을 대표로 에버트 인권상을 받게 되어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은 이 헌법을 철저히 무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비롯한 잘못된 점들을 우리가 직접 바로 잡기 위해 10월29일 탄핵을 위한 촛불 집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라고 말문을 열고 자신을 이 자리에 나오게 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였다.“2014년 당시 그 정권이 저는 너무 밉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고, 이 정권은 국민들이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 정권이 미웠지만, 지금의 정부는 미워할 날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나라를 바꿔나가는 것은 정부만이 할 일이 아니라 우리 국민도 모두 같이 헤쳐나가야 합니다.”“대한민국은 성급하게 나갈 수도 있고, 삐끗하여 어쩌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천천히 바르게 나아가게, 넘어지지 않게끔 도와주면 됩니다. 돈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촛불을 든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세월호에 함께 탔던 친구 민정이와 민지에게 “이 상을 내가 대표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너희 덕분이야. 다시 봄이 돌아오면 너희가 아프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라는 인사를 전했다.

 장애진 씨는 수상식 이후 시상식장에 참석한 길옥윤 할머니를 포옹하고, 세월호 목걸이와 엄마가 손으로 만들어준 세월호 나비를 선물로 달아드렸다. 장애진 씨가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현장에 있는 한국 교민들뿐만 아니라 독일 참가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말로만 듣던 세월호 문제를 당신을 통해 듣고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사전 토론회의 한 패널은 “이 상을 수여할 수 있게 된 프리드리히 애버트 재단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사한다” 라고 발언했고, 에버트 재단 쿠르드 벡 대표는 시상식 개회사에서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존중을 표했다.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패널토론회에 참여한 박석운 공동대표는 촛불항쟁의 특징을 6가지로 정리하고 박근혜정권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의 공범 세력들에 대한 적폐청산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대개혁을 앞당기기 위한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에버트 인권상 시상식에 참가한 대표단은 시상식을 마친 다음날 12월6일 독일 현지를 출발하여 한국시간으로 12월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 붙임자료

1. 에버트 재단 인권상 수상 사진

2. 촛불시민대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씨 수상소감 

3. 시상식 사전 행사 패널토론회에 참여한 박석운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공동대표 토론문 

 

[에버트 재단 인권상 수상 사진]

<사진: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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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민대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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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촛불시민’이 받은 에버트 재단 인권상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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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촛불시민대표로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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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촛불시민을 대표해 에버트 재단 인권상을 수상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씨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박석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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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상식 전 사전행사 패널토론회에 참여한 박석운 공동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 촛불시민대표 장애진 씨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당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1반 이였던 지금은 대한민국 수원에 있는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과 2학년에 재학중인 장애진이라고 합니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로 에버트 인권상을 받게 되어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에버트 인권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대표로 상을 받으러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식을 듣고 이상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상의 취지에 대해 알게 된 후 이 제안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인권을 위해 한 일이 없는데 대표로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촛불집회를 많이 참여한 사람들이 계실텐데 제가 대표로 받아도 될지..

세월호가 일어 난지 1000일이 되던 날 광화문에서 제가 올라가서 발언을 했던 영향이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은 이 헌법을 철저히 무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비롯한 잘못된 점들을 우리가 직접 바로 잡기 위해 10월29일 탄핵을 위한 촛불 집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갔었던 촛불집회의 상황은 촛불집회가 열리게 되면 나라는 허가를 내주지 않으며 경찰들과의 마찰로 인하여 싸움이 일어나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민중총궐기 때는 공권력으로 인해 사람이 죽었지만,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번 촛불집회가 많은 나라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다는 점도 있지만 평화적인 시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상자도 없었고 연행이 된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모두 한마음 한 뜻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집회를 참여하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이 믿고 뽑은 대통령을 직접 우리 손으로 내리게 된다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슬프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저는 2014년 4월16일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항을 갔습니다. 모두 굉장히 들떠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안개가 많았고, 안개로 인하여 배가 뜰 수 없어 수학여행을 갈수 없을 수도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제발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출발을 하게 되었죠. 짐을 각자 방에 두고 저녁을 먹으며 쉬다가 로비에서는 간단한 게임을 하고 밤에는 불꽃놀이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씻고 다른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서로 사진도 찍으며 놀다가 아침밥을 먹는데 국물이 기운 것을 보게 되었고 배가 기운상태로 밥을 먹는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파도 때문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배에 물이 들어온지도 모른 채 친구들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방에서 쉬거나 매점을 가는 등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방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누워있던 저와 친구들은 기운 방향으로 슥 하고 내려가졌습니다. 저흰 당황하였지만 그 당시 심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같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한 친구가 인터넷을 보다가 우리가 뉴스 속보에 떴다고 말을 해주어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침착을 유지하려 하였고 배운대로 안내방송을 잘 따랐습니다.

안내방송으로 계속해서 구명조끼를 입고 방안에서 대기하라 움직이지 말라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우리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에게 “배가 기울어 졌어 컨테이너 박스가 떠다녀” 라고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갑판위로 나오라고 하고 하였지만 저는 정신이 없어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빠와의 통화가 끝나고 기울어진 배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내방송은 해경이 오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울어진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밖의 상황은 물이 차오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헬기가 오는 듯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 물이 점점 다시 차오르지 않고  배가 기울어진게 바로 잡아지는 듯 하였습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큰 배를 어떻게 다시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또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니 불은 꺼지고 배는 더 기울고 급기야 물이 창문을 통해 배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후 친구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캐비닛이 무너지기 시작햇했습니다.

제가 있던 방은 캐비닛이 무너져 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문이 머리위에 있어 나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도와가며 먼저 한명이 나가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자고 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친구들은 서로 도와주며 한명씩 나갔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마지막에 나갔지만 비상구 쪽에는 아직도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얼른 구명조끼를 입고 밖으로 나와라 갑판으로 나와라 바다로 뛰어 들어라 라는 말이 있었다면 친구들과 승객들은 모두 다 살 수 있었겠지요. 아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희에게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인데.. 그 사람이 심각성을 알고 해경을 향해 지시를 제대로 내린다면 살 수 있었겠지요.

“혹시나 사고가 나면 안내방송을 잘 듣고 어른들 말씀을 잘 들어라.” 라는, 항상 들었던 이 말 우리는 정말 잘 듣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을 때 누군가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못나온 것 같다” 라고 말했지만 우리가 정말 철이 없으면 더욱더 그 배안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왔을겁니다. 친구들이 모두 철이 없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다 살아 나왔을텐데 말이지요..

음 저는 세월호라는 사건이 일어 난지 4년이라는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그 배안에 있었고 이제는 내 옆에 친했던 친구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어쩌면 믿기 싫은 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있기 전 저에게 4월은 피고 지며 떨어지는 벚꽃잎이 아름다운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4월은 피고 지며 떨어지는 벚꽃잎이 쓸쓸하고 슬픈 달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봄이 지금의 저에게 똑같은 봄이 아니게 된 거지요. 만약 친구들이 살아있다면 지금의 저처럼 대학생활을 즐기며 친구들과 지낼텐데, 봄이 오면 꽃구경을 가고 여름이 오면 바닷가 구경을 하러가고 가을이오면 단풍구경을 겨울이 오면 눈을 맞이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텐데, 그저 다른 이들과 비슷한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쁜일이 있을 떄 가장 좋아하는, 가장 믿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대부분 친구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저도 항상 기쁜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면 친구에게 가장 먼저 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가장먼저 털어놓았던 그 친구가 이제는 제곁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날 때면 너무 가슴이 아파오고 그립습니다.

음 저는 항상 부모님에게, 그리고 주변사람들 에게 다른 친구들보다는 트라우마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은 약을 먹기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하고 트라우마로 인해 자살을 시도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저는 그 친구들과 다르게 약을 먹지도 않고 정신과 치료도 받지 않습니다. 자살을 시도한적도 없구요. 전 그래서 저에게 트라우마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친구들이 생각나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살아 있을 때 함께 걸었던 길이나, 그 친구 집 근처를 지나가는 날에는 너무 마음이 아파옵니다.

꿈을 꾸기도 합니다. 배가 침몰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친구들이 큰 배를 타고 와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생일날 제꿈에 나타나 아무 말 없이 저를 보고 저는 그 친구에게 어디 갔었냐고 물어보는 꿈들이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아 꿈이였군아 하는 허무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것도 다 트라우마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트라우마가 없다고 믿고 싶은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당시 어쩌다가 방안에 혼자 남겨졌던 그 상황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저 혼자 있었던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더. 그때 내가 친구들을 도와줬는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이었던 것인지, 무엇인지 몰라 무섭습니다.

그리고 제가 방에서 나와 복도가 아닌 벽을 바닥으로 두고 비상구를 향해 걸어 갔을때 머리 위에 있던 문을 열었다면, 뒤를 한번만 돌아보았다면, 친구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죄책감은 평생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죄책감은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2014년 당시 그 정권이 저는 너무 밉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고, 이 정권은 국민들이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 정권이 미웠지만, 지금의 정부는 미워할 날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바꿔나가는 것은 정부만이 할 일이 아니라 우리 국민도 모두 같이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집 가훈이 있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똑바로 나아가자” 이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지켜지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똑바로 나아갈 순 없습니다. 급하게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하고 삐끗하거나 넘어지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성급하게 나갈수도 있고, 삐끗하여 어쩌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천천히 바르게 나아가게, 넘어지지 않게끔 도와주면 됩니다. 돈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 길원옥 할머니가 계십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난민 여성 인권단체에 나비기금을 전달하기 위해 독일까지 오셨습니다. 위안부 문제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계 문제에 앞장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원옥 할머니의 용기가 세상을 바꿔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자랑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간 민정이와 민지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 상을 내가 대표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너희 덕분이야. 다시 봄이 돌아오면 너희가 아프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제 연설문이 두서가 없고 길어 지루 하셨을지도 모르지만,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이 상을 제가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로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석운 공동대표 토론문]

  전세계 평화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독일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이 민족분단체제를 극복한 독일의 유서깊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2017년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촛불항쟁에 참여한 전체 대한민국 국민이 수상하게 된 점이 특별히 의미깊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정권 퇴진촛불”은 정권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에 저항하여 작년(2016년) 10월29일부터 올해(2017년) 4월29일까지 전국 150여개의 시?군에서 타올랐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1번씩 모두 23차례에 걸쳐 진행된 촛불집회는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하였고, 그 중에서도 12월3일의 제6차 범국민촛불에서는 전국 각지역에서 모두 232만명(서울은 170만명)의 시민이 참여하였는데, 이는 한반도 역사상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이 거리저항에 나선 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 한국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6대주 30개국 74개 도시의 한국 교포들이 촛불집회를 진행하였고, 여기에는 현지 시민들이 동참하기도 하였습니다.  

   촛불항쟁 과정에서 박근혜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의결된 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확정되어 파면되었으며, 그리고 현재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1960년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을 퇴진시킨 이후 57년만에 시민항쟁을 통해 권력교체에 성공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번 촛불항쟁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여성, 청년학생 등 조직된 기층 대중들이 중심이 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도하여 촛불집회를 시작하였고 여기에 사회운동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대거 가세하였습니다. 최초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제3차 촛불집회는 같은 날 민중총궐기집회와 범국민촛불집회로 연이어 진행되면서 집회 성격이 민중총궐기투쟁에서 범국민적 항쟁으로 확대?발전되었습니다. 이후 정세의 변화?발전에 조응하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촛불파도타기, 소등과 점등 행사 등 다양한 양태의 촛불집회 방식이 감동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촛불운동이 폭발적으로 상승되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촛불 참가자들의 구성이 매우 다양화되었습니다. 촛불참여층을 분석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32.8%가 촛불집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그중 39% 정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진보적 성향이라고 밝힌 반면, 19.4%의 사람들이 중도층, 17.3%의 사람들이 스스로 보수층이라고 밝힐 정도로 중도층과 보수층도 꽤 많이 촛불집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둘째, 수많은 군중들이 대규모로 참가하여 촛불광장에서 집회하고 행진하였지만 시종일관 비폭력 평화집회로 진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해 전(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시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경찰 차벽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에 의해 고령의 농민이 살해당하고 또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던 상황과는 달라진 양상입니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의 경험과 학습효과 덕분에 시민과 경찰 양측이 모두 초기부터 자제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법원이 경찰의 위법한 행진금지 조치에 대해 제동을 걸면서 신중하게 조금씩 단계적으로 대통령관저인 청와대로의 행진경로를 열어주었던 것에서 작지않게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평화집회와 행진이 보장되니까 더욱 많은 시민들이 가족들과 손잡고 또는 소그룹 모임별로 촛불집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압도적 다수의 시민참여가 더욱더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선순환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집회문화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변화?발전이 생겼습니다. 절실한 분노에서 출발하였지만 촛불집회가 진행될수록 위로와 치유, 흥겨운 축제라는 측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광장문화가 진화?발전해 나갔던 것입니다. 종전에는 주로 사회단체에서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었는데, 이번 촛불 과정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스스로 깃발을 만들어 참여하였습니다. “홀로 온 사람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 등 실로 기발한 내용의 깃발이 나와 화제가 되면서, 다음 집회에서는 더욱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풍자성 깃발과 피켓이 등장하는 등 자연발생적인 집회시위문화의 선순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또 함께 부르기 쉽고 메시지가 분명한 노래가 다양하게 등장하여 집회분위기를 고양시켰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노래는 촛불참가자들에게 일체감과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넷째, 박근혜정권이 붕괴되고 촛불항쟁이 승리로 귀결된 것은 한편으로는 박근혜정권이 엽기적 수준이라고 평가될만한 양태를 노정하면서 자멸한 측면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세계화정책 일변도로 치달은 결과 누적된 대중적 불만이 폭발하게 되는 위기상황에서도, 매우 취약한 불통의 박근혜 리더쉽이 국민과 소통하고 쇄신하지 못한 채 자폐적 경향을 더욱 강화하였기 때문에, 국민대중의 분노가 더욱 크게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2014년4월16일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 당시 TV 생중계로 온 국민이 쳐다보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 한사람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하고 304명의 생명을 모두 수장시키게 되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발생하였는데, 박정권의 세월호참사 진상 은폐?조작에 항의하고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수많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정부는 무얼 했느냐?”며 함께 울부짖게 된 것이 이번 촛불항쟁의 결정적 배경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박정권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층의 민심이 쪼개지면서 상당수가 이반하였고, 결국 그토록 강고하였던 지배구조가 폭삭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박근혜정권이 언론을 장악한 후 왜곡?편파 보도를 반복하면서 국민을 기만해 왔는데, 정권초기에는 어느정도 성공하는 듯 하였으나 종국에는 대실패로 귀결되는 상황, 즉 국민을 속이다가 마침내는 권력 스스로도 속게 되는 역설적 상황전개가 진행된 것도 중요한 측면입니다. 

   다섯째, 촛불운동과정에서 미디어 지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류신문이나 주류방송들은 왜곡편파보도를 일삼은 반면, 주로 비주류 언론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팟캐스트 방송 등 대안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촛불상황과 진실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 국민의 91%에 달하고 있는 점도 이런 현상을 극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촛불항쟁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현재 공영방송사 2곳의 언론노동자들이 극심한 보도통제를 해 왔던 기존 어용?적폐 경영진을 몰아내고 공정방송을 만들기 위해 3달째 파업투쟁과 제작거부투쟁을 진행하고 있고, 곧 승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정방송 세우기 투쟁이 성공하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의 흐름은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이번 촛불항쟁이 정치의식이 고도화된 시민들의 집중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반면에, 한편으로는 촛불광장에서 제도권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광장의 무대에 서지 못하고 단지 한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제도정치권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작동하기도 했고 또는 촛불항쟁이 보수언론으로부터 정파적 행위로 매도당할 위험에 대한 방어논리 마련 필요성 등이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경향성은 다소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도 있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 대중들을 최대한 많은 규모로 한 자리에 모으는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촛불항쟁의 열기를 계승하여 “헬조선”을 사람이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촛불광장에서 모아진 과제를 정치적으로 현실화시키는데는 결정적인 한계 또는 제약요소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새로 쥐게 된 정치인?정당과 촛불대중들이 사실상 따로 움직이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촛불항쟁 1단계는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의미있는 변화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대중들의 삶은 아직 변화가 실감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정권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의 공범 세력들에 대한 적폐청산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대개혁은 더디기만 합니다. “헬조선”을 마감하고 민주주의와 평등, 민중생존권과 사회공공성 강화, 평화와 자주통일의 새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2단계 촛불항쟁”이 시작되어 촛불항쟁을 촛불혁명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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