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 넙치의 유전자로 딸기를 만들면?

입덧을 시작한 아내를 둔 사내 앞에 두고, 장난기 발동한 다른 사내가 떠들어댄다. “야, 우리 마누라가 입덧이 얼마나 심했냐? 글세, 한 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어! 그걸 구한다고 말이지…” 하지만 걱정 서린 얼굴의 사내들은 이제 더 이상 없게 될 것이다.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지 마라. 비닐하우스 딸기야 지금이라도 언제라도 구할 수 있는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런 낙후된 기술을 말하는게 아니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추운 바다에서도 끄떡없는 넙치의 유전자를 뽑아서 딸기에다 넣어주면 추위에 강한 품종을 만들 수 있다. 생물 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 놀라운 기술에 의하면, 물고기와 식물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로서 한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석유 태우지 않고도 딸기를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필시 한 겨울에 딸기를 찾는 임신한 아내를 두었던 과학기술자의 노력임에 틀림이 없다. 오호 이런 훌륭한 일이 있나.

그리스신화에나 나올 법한, 반인반수(半人半獸), 잡종 생물들의 이야기들은 현대의 유전공학을 통해서 현실화되고 있다. 생명공학 초국적기업의 연구실에서는 이종(異種)간에 유전자를 뒤섞어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내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953년에 영국의 과학자인 크릭과 왓슨이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이래,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의 모든 유전자를 맘 내키는 대로 섞어가면서 새로운 ‘칵테일’이라도 만들어낼 태세이다.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있는 칵테일들에는 놀랄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영국석유회사는 기후변화협약의 체결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규제되자, 에너지절약 기술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높은 나무를 유전공학적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몬산토라는 초국적기업은 자신들이 만들어오던 농약에 저항성을 갖는 콩을 개발하여, 농약과 콩 종자 패키지를 팔아먹는 약삭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전공학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기술은 군사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정한 인종, 민족만을 공격할 수 있는 생물학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히틀러 식으로 하면 유태인에게만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사고방식이기에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 대단한 칵테일에는 갖가지 명분이 붙어 있다. 그 중에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는 식량증산과 불치병의 치료이다. 식량 분배의 사회경제적인 왜곡이나 의료자원 분배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생명공학 초국적기업과 과학자들은, 오로지 생명공학을 통해서만 인류를 기아와 병마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백보 양보를 해서 식량자원과 불치병의 해결이 생명공학기술을 통해서 가능할 지라도,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생각해보자. 35억 진화의 산물인 각 생물체의 유전자를, 자연상태에서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종간의 벽을 허물고 뒤섞을 때 과연 그 결과에 대해서 예측을 할 수 있을까? 유전자 조작된 면화 재배지에서 익충인 나비의 애벌레가 정상보다 많이 죽었다는 관찰은 이런 우려의 현실성에 대한 한 예일 뿐이다. 유전자조작 식품은 어떨까?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인류의 오랜 진화과정과 역사 속에서 고르고 가려낸 것이다. 음식과 우리 신체가 상호 적응한 것이다. 그러나 넙치의 유전자가 들어간 딸기는 어떨까? 이렇게 유전공학에 의한 급격한 ‘진화’의 결과에 대해서 의심을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에게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딱히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가해자라 생각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를 설명하도록 요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막막함. 특히 문제가 전문적이고 상대편이 전문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생명공학의 문제도 비슷하다. 상식적으로 뭔가 미심쩍고 불안한 문제인데, 기업과 과학자들은 위험한 증거를 내놓으란다.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위험이라면 그 가능성만으로도 잠시 중지하고 점검해봐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 앞에서도 겸손할 줄 모른다. 오히려 무지하다고 나무라기 일쑤다.

기업과 과학자들의 오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창조성이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한다. 35억 년의 모든 진화의 결과보다는 유전자 칵테일을 만드는 자신의 창조성이 더 뛰어난 것이란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생물체에 대한 특허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35 억년의 진화의 결과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인류 공동의 자산이며 그 일차적인 권리는 각 지역의 공동체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다.

웃을 일이 아니다. 생명체에 특허를 부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가늠하고 있는 것보다 그 결과는 더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것은 또한 희극적인 것인가? 암환자가 병원에 방문했다. 그는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병원에 갔고, 성공적으로 그 암을 떼어냈다. 그러나 그가 떼어낸 것이 암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야기는 더러워졌다. 그 환자가 떼어낸 암세포의 의학적 유용성을 내세운 병원이 특허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암세포는 더러운 돈이 되었고, 병원과 환자는 더러운 법정투쟁을 벌였다. 1990년 중반,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유방암을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성분에 대해서 한 기업이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전세계 모든 여성이 유방암을 진단할 때마다 그 회사에 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런 당황스러운 특허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휴먼게놈프로젝트가 끝난다면? 어쩌면 인간의 모든 유전자마다 기업의 이름을 새겨 넣어야 할는지 모른다.

멋진 신세계. 두 눈 감고 현대 과학의 찬양자들이 일러주는 멋진 꿈만 꿀 것을 괜히 눈을 떴다 싶다. 내일 같이 퍼부어 대는 TV 광고 속, 신세계로 뛰어들어 살고 싶다. 그러나 이제 나는 글을 끝내고 나가야 한다. 시속 200Km를 자랑하는 차를 타고 12시간을 걸려 고향으로 가야한다. 지루하지 않게 군것질할 오징어 맛 바나나는 언제 나올까?

한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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