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2-08-26   1550

UN인권이사회에 한총련 이적단체규정 제소

“세계 모든 양심에 호소합니다. 한총련을 자유케하라!”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합법적 활동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상임대표 강만길, 오종렬, 홍근수 외 5인, 이하 대책위)가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총련과 공동으로 한총련의 이적단체규정 문제 해결을 위해 UN인권이사회에 제소,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이들은 23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가 규정하는 ‘개인통보제도’를 활용하여 한총련 이적단체규정의 부당성을 국제적으로 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인통보제도란, 국제인권규약상의 권리를 침해당한 개인이 인권이사회에 직접 통보하여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 한총련 이적규정에 대한 UN인권이사회 제소 기자회견 모습

이번 UN인권위 제소는 9기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에 의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현재 수감중인 이정은(건국대 부총학생회장)씨가 인권 침해 피해자로서 제기하는 것이며 민변 소속의 김승교, 이석태 변호사가 대리인으로서 추진하였다. 이날 오전 이들은 스위스 제네바의 UN인권이사회에 제소문을 발송했다. 대책위는 이를 계기로 UN이 정하는 구제절차를 통해 국내의 잘못된 사법적 판단을 시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한총련 이적단체규정을 철회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홍근수 목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안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게 되어 기성세대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안에서 곪아터져온 문제를 국제사회의 중심에 알리게 된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고 해결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냈다.

이들은 한총련 구성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정부로부터 받아온 감시와 협박 등 반인권적 행위들이 UN이 보장하는 ‘국제인권규약(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명백히 위배되는 조치라고 지적하고 있다. 규약에는 제 18조 (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 19조(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 22조 제 1항(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 26조(정치적 의견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을 평등의 권리) 등이 명시되어있다.

제소문을 통해 대책위는 △국제인권규약상의 위 권리가 대한민국에 의해 침해되었음을 UN인권이사회가 선언해줄 것 △국가보안법 제 7조 제 1항, 제 3항(이적단체 가입 및 구성죄)의 폐지를 명하고, 폐지 때까지 이 조항의 적용을 유예하도록 권고해 줄 것 △재심을 통한 무죄선고와 피해에 대한 배상을 권고해 줄 것 등을 밝혔다.

대책위는 제소문을 통해 이정은 씨가 인권을 침해당한 규정으로서 위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제소문에는 한총련의 구성, 운영 및 활동, 한총련에 대한 과거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결과 국보법의 문제점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한총련의 힘겨운 싸움

1993년 4월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 및 학원의 자주화 등을 목표로 전국적인 대학생 단체로서 결성된 한총련은 매 1년을 단위로 집행부를 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제 10기 한총련의 경우 187개 대학이 가입한 상태이며 대의원 수는 1,000여 명에 달한다.

한총련은 1997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1997년 새롭게 집행부가 구성된 제 5기 한총련의 강령과 활동 등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고 북한의 남한 적화 통일에 도움을 준다는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었다. 이후 한국정부는 한총련 대의원들을 이적단체 가입 혐의로 구속하고 처벌해 왔다.

이적규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총련은 애를 써왔다. 특히 제 9기 한총련은 ‘6·15남북공동선언을 한총련이 지향하는 통일강령으로 한다’는 등 강령을 개정함으로써 과거와 다른 활동이념을 지닌 제 9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법원은 여전히 이적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의 규정

제 18조 제 1항 내지 3항(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

①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②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아니한다.

③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

변호인단은 제소자 이정은 씨가 자신의 자유로운 양심과 판단 및 의사에 따라 한총련의 대의원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정은 씨의 한총련 활동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이적단체 규정을 받은 한총련의 이적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로 그를 처벌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조치가 위 조항의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 19조(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①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구두, 서면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스스로 선택하는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법원이 한총련의 문서자료를 토대로 북한과의 사상적 경향의 유사성을 문제삼아 이정은 씨를 이적단체 가입죄로 처벌한 것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위 규정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한총련은 대학생 조직으로서 모든 의견이나 의사표현에 있어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지의 여부를 일일이 판단하여 표명 여부를 결정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제 22조 제 1항(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역시 당연직 대의원(총학생 회장, 단과대 회장, 동아리연합 회장 등)으로서 한총련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이정은 씨가 결사의 자유권을 침해당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제 26조(정치적 의견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을 평등의 권리)도 대의원으로서 소속하고 있는 단체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이정은 씨가 차별,처벌받은 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UN인권이사회의 계속된 권고에도 불구

한국은 1990년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이래 국제인권규약 상의 의무조항에 따라 정기적으로 규정준수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지 여부에 대한 정부보고서를 제출해왔다. UN인권이사회는 1992년 한국정부의 최초 보고서를 검토한 후 “국가보안법이 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완전히 실현시키는 데 있어 주요한 걸림돌이라 보고,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궁극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1999년 11월 ‘한국정부 인권 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에서도 UN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야 함을 다시금 권고한다.(중략) 국제인권규약은 단지 사상의 포현이 적성단체의 주장과 일치하거나 그 실체에 대해 동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이유만으로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제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 오종렬 대책위 상임대표가 “세계의 양심을 모으자”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UN인권이사회는 제소문을 접수한 후 우선적으로 적격성 여부를 판단하는 심리를 거쳐 한국정부에 통보사실을 알리고 반박문을 요청하게 된다. 이후에는 본안심리를 통해 UN인권이사회의 최후 결정이 나오는 절차를 밟게 된다. 선례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은 4년에서 5년 정도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한다.

국내 문제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돼 결정이 난 사례는 1993년 9월 김근태 의원의 전민련 활동과 관련한 국보법 위반사건, 94년 8월 재미한국청년연합 활동과 관련된 박태훈 씨의 국보법 위반 사건 등 모두 4건이며, 유엔인권이사회는 4건 중 3건에 대해 우리 정부에 시정권고를 내린 바 있다. 역시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권고를 이행할 강제조항은 현재로서는 없다. 하지만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이미 규약에 가입한 국가는 자국의 인권보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인데 권고조치를 무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난해 인권위에서 탈락한 미국의 선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구속된 10기 한총련 의장 김형주 씨의 공동변호인단의 이상갑 변호사는 “한총련 학생들은 현재 본인의 의사와 함께 학생들의 지지로 직접선거에 의해 당선되고 있는데 법논리로 보면 이들을 선출한 학생들 역시 공동정범 내지 방조자가 되는 것”이라며 당국의 법적용의 모순을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학생들의 구체적 활동과는 상관없이 이적단체 소속을 이유로 지명수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한총련은 현재 강령규약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발전적인 해체를 재탄생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한총련은 어떻게 하면 이적단체규정을 벗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인권국가임을 내세우는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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