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5-12-15   801

[416연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첫날에 대한 논평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첫날에 대한 논평

 

어제(12/14, 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주최한 제1차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 첫째날은 ‘세월호 침몰사고 신고접수 및 초동대응의 부적정성’ 및 ‘현장 구조 상황 및 지휘체계’를 주제로 하여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하여 12시간을 넘긴 오후 9시 40분경에 종료되었다. 그 동안 소위 해수부 문건의 발견, 여당 추천위원들의 사퇴의사 표명, 활동기한단축과 예산축소 등 특조위를 움츠러들게 하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져 이번 청문회의 성공은 고사하고 성사여부도 불투명했으나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다만 여당추천비상임위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청문회 일정이 남아 있는 만큼 첫날 불출석한 여당추천위원들도 청문회에 참여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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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증인들의 답변은 불성실했다. 출석한 증인들은 ‘모른다’ 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발언을 되풀이 했다. 해경에 고위직은 ‘별도의 지시 없이도 현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다른 사람이 잘 할 줄 알았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증인들에게서 다른 재판이나 감사원 조사에서 했던 증언과 배치되는 발언이나, 위증으로 의심되는 증언들도 있었다. 증인들은 청문회 시작에 했던 선서에 따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증언을 해야 할 것이다.

 

성과도 있었다. 청문회에서는 눈여겨봐야 할 새로운 쟁점들도 여럿 나왔다. 이 쟁점들에 대해 보다 면밀히 조사되고 밝혀졌으면 좋았겠지만 이전에 논의가 되지 않던 의혹들이 새로이 부각되며 진상규명에 한 발짝 다가가는 동시에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다시 환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청문회 첫째 날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대략 아래와 같다.

 

첫째, 참사 당시 사용된 공용무선망의 녹취록이 한 가지 버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경은 참사 당시 사용된 공용무선망의 녹취록을 각기 다른 버전으로 작성하여 검찰과 감사원에 제출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버전은 작성형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상이하다. 특히 해경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이 삭제된 경우도 있었다. 상이한 녹취록의 존재, 각 녹취록의 불완전성은 이 녹취록들에 의존했을 감사원의 감사나 검찰수사의 결과가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 녹취록들이 어떤 경위에서,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조작이 있다면 누가 어떤 의도로 조작하였는지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감사원의 감사결과나 검찰의 수사결과도 재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김경일 123정장의 인터뷰가 해경 지휘라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준비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김경일 123정장은 참사 이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은 퇴선명령을 수차례 방송하였다고 하였고, 이에 기반하여 국회 국정조사 등이 진행되었었다. 참사 초기 해경에 쏟아질 수 있었던 비난을 최소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김경일 123정장의 기자회견이었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 이 기자회견이 허위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누군가(김경일 123정장은 ‘위의 지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가 조직적으로 준비하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 기자회견을 조직적으로 준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김경일 123정장은 청문회에서 스스로의 입으로 ‘김문홍’(참사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이라는 이름을 내 놓았다. 물론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나 검찰수사결과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 윗분의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이다. 앞으로 해경 지휘라인의 어디까지 이 거짓 기자회견에 관여해 진상을 은폐하려 했는지 추가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123정이 참사 초기 세월호의 승객이 아닌 선장과 선원만 먼저 구해냈을 때 123정의 해경들은 이들이 선장과 선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 여러 정황 등을 통해 합리적이며 공적으로 문제제기되었다. 구조된 15명의 선원 중 9명이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 9명의 선원이 해경에게 자신이 세월호 선원이라고 밝혔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점, 참사 당일 오전 10시 6분 세월호 창문을 깨고 구조작업을 하는데 해경과 함께 구조된 선원들이 참여했다는 점, 선원들이 123정의 조타실에 출입을 했었다고 검찰수사 당시 진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원들 중 한 명은 자신이 김경일 123정장에게 세월호로 다시 돌아 가보자고 했다고 진술한 점, 123정이 구조한 승객 약 52명 중 47명을 인도하고 5명이 남았는데 이 5명이 모두 선원이었다는 점 등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봤을 때 123정의 해경들이 자신이 구조한 사람들이 선원들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정황들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김경일 123정장 등은 끝까지 자신들이 최초 구조한 사람들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김경일 123정장 등이 선장과 선원임을 알고도 승객보다 우선하여 이들을 구조하였다면 이는 승객들에 대한 구조실패가 아니라 구조방기임이 보다 명확해지는 것이며, 이들이 이렇게 선원들을 우선 구조한 이유까지 밝혀진다면 우리는 단순한 사고에 그칠 수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참사로 변화된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CN235 등 고정익기 2대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공적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참사 당시 구조 헬기 3대 이외에 고정익기 2대가 현장에 있었다. 이들은 구명벌을 싣고 있는 등 구조작업에 투입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공에서 관찰한 세월호의 상황 등을 다른 구조세력에 자세히 알리지도 않았다. 이 고정익기가 구조활동에는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목적으로, 누구의 지시를 받으며, 어떤 정보를 확인하여, 누구에게 전달했는지에 대해 보다 소상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지휘라인이 구조에 신경을 썼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없다. 특조위의 활동 역시 지속적인 방해를 받고 있다. 청문회의 정상적 개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많은 질문이 증인들의 방어에 막혀 무력했고, 청문위원들의 질문은 간혹 이전에 확인된 내용을 다시 언급하는 것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치러진 것을 감안하면 진상규명활동에 진전이 있었다. 우리가 진상규명을 포기하지 않고, 특조위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자그마한 답이 었다고 본다. 이후 남아 있는 청문회 일정 내내 특조위의 분발을 요청한다. 다시 한번 여당추천위원의 참여와 증인들의 성실한 답변을 촉구한다. 

 

151215_논평_세월호 특조위의 청문회 첫째날에 대한 논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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