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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
  • 2002.05.07
  • 677
필자는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종종 친지들로부터 형사사건에 관하여 도움을 요청받거나 그들의 하소연을 듣곤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첫 마디는 대부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서...'라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면 당연히 당황하고 허둥지둥하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로부터 사건의 경위를 전해 듣고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은 통지 등의 의미와 이후 예상되는 절차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면, 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사기관이 사건을 자꾸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몰고 가려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눈에는 혹시 자기가 수사기관에 아는 사람이 없거나 배경이 없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가득하다.

수사기관이 모든 사건에서, 모든 당사자들에게 불공한 대우를 하지는 않을텐데, 형사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위와 같은 반응은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누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위와 같은 의식은 과거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가 비일비재하고 일부 특수계층의 배경과 금권 등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시대의 잔영이 반영된 것일 뿐이고, 이제는 수사기관이 많이 공정해지고 투명해졌다는 반론도 나올 법하다. 시대가 바뀐다고 마음이 쉬이 바뀌겠는가. 하지만 그게 우리가 어차피 짊어진 짐이라면 그것을 빨리 덜어버리도록 더 애를 써야 할텐데, 불행히도 근래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한 불기소처분 취소 결정은 가장 애를 써야 할 수사기관의 노력이 아직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헌법소원을 한 청구인의 고소내용의 요지는, 생활정보지에서 차량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는 광고를 보고 피청구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게 되었는데, 피청구인이 돈을 빌려주면서 받은 서류 등을 이용하여 청구인 명의의 자동차매매계약서 및 할부금융신청서를 위조하여 할부금융대출을 받아 이를 사취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청구인은 청구인이 돈을 빌려가면서 할부금융대출을 받아 승용차를 구입한 후, 이를 되팔아 자기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기로 약정하였고(이른바 차 깡), 그 약정에 따라 할부금융을 받고 대출금도 회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청구인은 수사기관에 피청구인을 고소하였는바, 이에 대하여 검찰은 피청구인을 무혐의처리하면서 나아가 청구인을 무고로 기소하였고, 청구인은 무고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위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의 작성경위 및 기재내용이 통상의 거래관념에 반하거나 우리의 경험칙상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피청구인의 진술이 모순되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무지 또는 경솔을 악용하여 사전 치밀한 계획하에 사건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불충분하였다는 여러 근거를 제시하였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논란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자. 헌법재판소는 직접 수사를 담당한 기관이 아니고 기록에 의하여 사건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 판단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수사기관이 내린 결정을 뒤집는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수사가 불충분하였음을 조목조목 상세히 설명하였다. 검찰이 다시 정밀한 수사를 하여 그 실체적 진실을 찾아야 할 일이지만, 만일 헌법재판소의 '떨쳐버릴 수 없는 의심'대로 불충분한 수사로 인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더구나 이 사건의 경우 법원이 청구인에 대하여 무고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였다. 만일 헌법재판소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이 비극적인 사건에 법원도 한 몫을 한 것이다.

물론 인간이 모든 인간사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거나, 또는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 경찰, 검찰, 검찰 내에서의 항고와 재항고, 법원의 삼심제 그리고 헌법소원 등의 많은 절차와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다단계의 절차가 각 단계에서의 최선의 노력을 방기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위 여러 절차는 각각의 절차 자체로 그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성실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헌법소원은 여러 절차 중 최후의 비상적인 권리구제수단이다. 수사기관은,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여부를 떠나 위 사건을 헌법재판소가 상세히 지적한 수사의 불충분함에 대한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법원 역시 인권수호의 보루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수사기관의 많은 사람들은 인력의 부족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근래에는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청탁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불공정한 수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수사기관의 많은 사람들은 위 사건과 같이 수사의 불충분함이 제기될 때 그 어려움을 호소하며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짊어진 역할의 중요성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의 중대함을 생각해 보라. 위 사건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 수사기관이 나에게 불리하게 사건을 진행시키고 있어. 상대방이 무슨 연줄을 동원했는지도 몰라.' 수사기관의 과중한 업무와 과거에 비교하여 훨씬 향상된 수사의 공정성에도 불구하고, 위 사건은 수사기관에 대한 이런 의심이 아직은 억울하지 않은 누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병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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