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위기’는 돈 쫓는 대학의 위기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회원참여토론회

지난 4월 13일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는 시민과학센터 주최로 ‘이공계 위기론’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기존의 <월례토론회>가 <회원참여토론회>로 그 이름을 달리하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열렸다. 토론회에는 시민과학센터 회원이외에도 학부생, 대학원생, 교사, 연구원, 기자 등 약 40여명이 참석하여 최근 급증된 관심을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토로

▲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
주제발표에 나선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선진국은 이미 다 겪은 현상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음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는데, 과학기술자의 신분보장과 사기진작,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사회제도 구축, 대국민 홍보전략 수립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최재천 교수는 기초과학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기초학문분야를 어설픈 시장원리로 재편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을 갖고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여인철 박사(한국선급 기술연구소)는 현 상황을 진단함에 있어 이제 ‘이공계 기피’를 넘어 ‘이공계로부터의 엑소더스’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자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진단되었다. 문과계통 출신들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빈약하고, 고위직 관료일수록 이과 출신들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한마디로 과학기술인들은 자신들의 국가 공헌도에 비해 현재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토로했다.

▲ 한국과학기술인 연합 소속 한국 선급기술연구소 여인철 박사
여인철 박사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자각하여 명예회복과 위상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함을 강조하였고, 과학기술분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공계의 위기’란 존재하는가?

이어서 토론자로 나선 시민과학센터의 이영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는 이제까지의 논의와는 다르게 ‘이공계의 위기가 현재 존재하는가?’ 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영희 교수는 현재 이공계의 미달사태는 입시제도상의 변화로 예기치 않게 나타난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현상일 뿐이고, 보다 정확한 진단은 오히려 ‘이공계 기피’라기보다는 소위 ‘돈되는’ 분야(경영대, 의대, 약대, 한의대)로 집중되는 경박한 시장숭배적 행태로 보아야 할 것이고 나아가 학문과 교육의 시장화와 그로 인한 기초학문의 붕괴가 심각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대책과 관련해서도 과학기술자가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국가적 공헌도가 높고, 현재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학기술자의 사기진작 대책에 쉽게 동의할 수 없음을 밝혔다. 오히려 시장주의적 학문풍토에서 소외받고 있는 기초학문분야에 대한 균형감각있는 사기진작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주장했다.

또한 과학기술에 대한 대국민 홍보전략에 대해서는 현재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팽배한 가운데 전문가가 대중을 일방적으로 ‘계몽’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려 했던 전략을 버리고, 과학기술 이슈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진 전체토론에서는 각계의 분위기를 담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자라고 해도 비명문대 출신들, 비유학파들, 여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훨씬 더 심각하고, 이러한 소외된 과학기술자 계층들에게 신념과 긍지를 심어줘야 하며, 또한 과학자들 스스로가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학원생이라고 밝히신 한 분은 이미 대학 내에는 돈되는 학문분야만을 쫒아가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이 바로 ‘위기론’의 본질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학생들은 하루 12시간이 넘게 연구실에 매달려 있음에도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시민과학센터의 회원중 한 분은 과학기술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란 것이 평균적으로 문과출신들에 대한 이과출신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문과 엘리트들에 대한 이과 엘리트들의 불만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대학의 위기, 학문의 위기

이번 토론회를 통해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의 일방적 주장만이 아니라 소위 ‘이공계 위기론’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분의 지적처럼 현재의 ‘이공계의 위기’란 것이 본질적으로는 바로 대학의 위기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본에 종속된 과학기술이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지 모를 미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시민과학센터 자원활동가 배태섭

시민과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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