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8-01   1457

‘안전하다고 확인될 때까지는 위험하다’

위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사전예방원칙

간단한 질문 하나. 다음의 두 명제 중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1) 위험하다고 확인되기 전까지는 안전하다. 2) 안전하다고 확인될 때까지는 위험하다. 자신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 몹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이 일종의 심리테스트로 보일런지 모르겠다. 1번을 선택을 하는 사람은 대단히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이고, 2번을 택한 사람은 대단히 비관적이거나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성격을 알아보고자 하는 개인적 취향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한 사회, 공동체, 국가 혹은 지구적 시민사회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심각한 어떤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할 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다.

최근 들어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적용·도입됨에 따라서 유발되는 위험은 한 사회, 공동체, 국가 혹은 지구적 시민사회 자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우려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만들어진 유전자조작 생물체가 지역적 혹은 지구적 생태계를 비가역적으로 교란시키고 파괴할 것이며, 또한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와 이를 보여주는 각종 연구 결과가 그것이다. 사례는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몇 십년 동안에 화학기업들이 생산해낸 수많은 화학물질들은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축적되며, 결국 인간의 몸에까지 영향을 미쳐 각종 암 등으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과 그 폐기물에 의해서 야기된 위험들, 고압 송전탑 혹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 등에서 유발되는 전자기파의 위험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첨단기술의 발전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 의해서 수반된 환경과 건강에 미친 영향들도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막대한 화석연료 사용 등에 따른 지구온난화 현상, 각종 유해물질의 유입 혹은 투기에 따른 해양생태계의 파괴 등이 그런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발전·도입·적용에 따라서 기술사회의 위험들이 중대하고 비가역적이지만, 그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불확실성에 존재할 때, 개인을 비롯하여, 지역사회, 공동체, 국가 및 지구적 시민사회가 취해야 하는 태도와 정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 대답 중에 하나가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미국의 보건·환경에 관한 NGO 활동가 및 과학자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만들어진 사전예방원칙에 관한 선언(윙스프리드 성명 the Wingspread statement, 1998)을 살펴보면, ‘어떤 활동이 환경 혹은 인간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경우, 비록 일부 원인/효과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을지라도 사전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는 것’라고 정의되어 있다. 굳이

말하자면 앞서의 질문의 두 번째 대답의 입장인 셈이다. 이제 사전예방원칙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전예방원칙”의 역사와 현황

사전예방원칙의 개념은 1970년대 초에 독일에서 가장 먼저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에 독일에서 울창한 산림들이 특별한 이유없이 말라 들어갔는데, 그 원인이 산성비와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정부는 화력발전소의 배출가스를 감축하도록 조치하였다. 이때에 독일 정부가 내세운 개념이 예견(Vorsorge)이며, 그후 이 개념은 독일 환경법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와 같은 사전예방원칙의 개념이 국제적 차원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다. 첫 번째는 해양오염에 관한 국제회의 및 협약에서 나타났는데, 1984년에 북해보호를위한국제회의에서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1990년에 유럽차원에서 채택된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베르겐선언에서 이 개념이 수용되었다. 그리고 범세계적인 차원에 이 원칙이 도입된 것은 1992년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이었는데, 사전예방원칙은 당초 해양오염분야 이외에 대기오염, 유해폐기물,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분야 등으로 확대되어 갔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표 참조).

또한 1994년에는 EU 설립에 관한 마스트리히트조약에도 환경분야 조항에 사전예방원칙이 천명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생명공학안전성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사전예방원칙을 채택하였다(2000년).

한편 2000년 2월에는 유럽공동체 위원회는 위험관리 정책에 사전예방원칙을 통합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사전예방원칙에 관한 통신문(Communication from the Commission on the recautionary Principle)’을 공개하고, 유럽차원의 논의를 진전시켰다.사전예방원칙이 국제협약 수준에서 먼저 채택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개별 국가들이 사전예방원칙이 도입하고 실행하는 수준은 미약하다고 평가된다. 다만 유럽연합 국가들은 환경정책의 일반원칙으로 사전예방원칙을 받아들이고 이행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덴마크 환경청은 1998년에 사전예방원칙의 이행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전국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영국과 스웨덴 정부도 비슷한 절차를 밝고 있다. 또한 유럽환경청은 사전예방원칙을 적용되는 몇가지 사례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했으며, 이행을 위한 권고 사항도 제시하였다.

미국의 경우, 일부 미국 환경법과 재판부의 판결,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운영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통령 위원회는 사전예방원칙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전예방원칙에 대해서 부정적이며, 무역과 경제와 관련된 부처인 상무성, 무역대표부 등은 이 원칙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1990년대 말부터 성장호르몬이 들어있는 고기와 우유, 유전자조작 식품 등을 둘러싸고 유럽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무역분쟁이 유럽 측의 사전예방원칙 적용때문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캐나다 정부도 2001년 9월에 위험관리 정책에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담은 토론자료(A Canadian Perspective on the Precautionary Approach/Principle)를 발표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환경과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는 NGO 측에서도 사전예방원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 원칙의 도입 및 적절한 이행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환경보건네트워크(Science and

Environmental Health Network/SEHN)는 1998년에 미국 위스컨신의 윙스프리드에서 미국, 캐나다 및 유럽에서 온 과학자, 철학자, 법률가, 환경운동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전예방원칙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여기에서 NGO 측의 시각을 담은 사전예

방원칙에 관한 “윙스프리드 성명”을 작성하였다. 또한 생명공학감시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제3세계네트워크 (Third World

Network/TWN)도 생명공학안정성 의정서 채택 논의에 맞추어서 각국에서 제정해야 할 생명공학안전성 관련 법률의 모델을 제시하면서, 사전예방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내용을 제시하였다.

사전예방원칙과 과학적 불확실성

사전예방원칙는 중대하고 비가역적인 위험이 존재하는데, 그에 대한 과학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할 경우에 사전예방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전예방원칙이 위험에 대해서 대처하는 기존의 방식 ― 위험평가(risk assessment)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위험의 과학적 불확실성에 직면할 경우다. 전통적인 방식의 위험평가는 위험의 성격과 그 원인에 대한 인과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정량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여 있다. 가령, 다리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교통량이 예상되며 그에 따라서 다리는 일정 정도의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 및 시공하여 안전을 보장한다는 식이다. 즉 다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알려진 위험 요소에 대해서 그를 정량화하여 이해하고 그 위험요소를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수준까지 낮추도록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예방원칙은 위험과 그 원인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예컨대 몇 년 전부터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국가들을 공포로 내몰았던 광우병의 경우, 그 병을 유발시키는 구체적인 원인과 메카니즘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광우병 유발물질이라는 프라이온(prions)의 존재는 아직도 입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전통적인 접근은 위험요소 및 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험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관리 범위의 밖에 있는 것으로 무시될 수 있다.

반대로 사전예방원칙은 위험과 그 원인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 특히, 정량화된 과학적 이해가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현재의 지식 수준에서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덴마크 정부는 PVC로 만들어진 장난감에 프탈레인(phthalein)이라는 물질이 어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정량적으로 계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세 이하의 어린아이를 위해서 제작된 장난감에서 프탈레인 사용을 금지하였는데, 사전예방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정부의 반응은 전형적인 위험평가 접근 방식을 따랐는데, 정량적인 위험평가를 먼저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위험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발표되었다(그럼에도 미국정부는 위험평가에 남겨진 불확실성 때문에 프탈레인의 사용을 자발적으로 중지하도록 생산업체에 요청했다).

그렇다면 위험관리 영역에서 사전예방원칙을 새롭게 도입할 필요하도록 만든 과학적 불확실성이란 어떤 것인가? 우선 기존의 위험평가나 관행적인 과학적 조사법에서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즉 이것은 불완전한 데이터, 애매모호한 결론 또는 실험 체계의 가변성에 의해서 비롯되며, “매개변수(parameter) 불확실성” 등으로 불린다. 이와 같은 종류의 불확실성은 종종 추가적인 조사에 의해서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사전예방의 방법 중에 하나로 위험요인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방법론적 혹은 모델 불확실성”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은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선택된 방법 혹은 모델이 실제의 상황을 정확히 재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신뢰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앞서의 “매개변수 불확실성”은 정확한 방법론에 의해서 평가한 데이터의 불완전성을 문제삼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평가 모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에 특정한 형태의 위험 자체가 완전히 무시될 수 있다. 이나 벼룩을 잡겠다고 DDT를 사람 몸에 퍼부을 당시, 그 화학물질의 독성에 의한 위험 자체를 인지 못한 것과 같은 불확실성일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인식은 “인식론적 불확실성”에서 나타난다. 이 종류의 불확실성은 생물학적, 생태학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시스템의 복합의 복잡성, 그리고 실험 연구에서 다루는 폐쇄 환경과 연구가 다루는 개방적이고 불확정적인 환경 사이의 격차에서 나타난다. 즉 이것은 우리의 예측 능력의 한계, 따라서 “무지의 장벽”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불확실성”도 존재하는데, 이는 관련 정부 당국이 특정한 위험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도록 한다거나 적절한 대안책을 개발하지 않도록 하는 의도적인 결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정부나 기업의 책임을 은폐하려는 목적에 의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위험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의 원인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다양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을 문제삼아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예방적 조치를 회피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하며 비합리적인 태도가 되는 것이다.

최근 10여년 전부터 위험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과 사전예방원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토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신기술들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유발된 위험 인지의 어려움과 그 실패에 따른 심대한 피해에 의해서 새삼스럽게 인지하게 된 탓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인간활동이 위험을 낳고 있으며 또 낳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무지를 인식하지 못한 무지를 뒤늦게 깨닫게 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사전예방원칙의 실행 및 그 방법

윙스프리드 성명은 사전예방원칙을 크게 4가지의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예방적 행동. 둘째, 잠재적인 위해성 활동의 유발자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셋째, 금지를 포함한 잠재적으로 위해한 활동에 대한 충분한 대안의 검토. 넷째,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여기서 첫 번째 구성요소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전예방원칙의 정의에 해당하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험 유발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것은 사전예방적 행동을 실행하도록 강제하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화학기업에게 자신들이 생산하는 특정한 물질이 인간 건강과 생태계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하는 책임을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에는 제시된 기술이나 행위에 대한 잠재적인 영향을 조사하고 위해성이 더 적은 다른 대안책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하거나 이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책임을 포함한다. 또한 조사 과정이나 결과를 제3자에게 독립적으로 검토하도록 허용하며 그와 관련된 사실을 대중에게 공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이를 강제하기 위한 경제적 방안으로 보증금 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사전예방원칙은 어느 정도의 위험이 수용가능한가에 대해서 묻기보다는 위험을 제거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데 또다른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전예방원칙의 구성요소의 하나로 “대안의 모색과 평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대안이 지향해야 할 목표의 설정도 중요하다.

유전자조작 식품의 예를 들면, 사전예방원칙은 유전자조작 식품의 “수용가능한 위험”에 대해서 질문하는 대신 “생태적·경제적·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어서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안을 조사하고 평가하도록 하는데, 이를 “대안평가(Alternative Assessm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기술이나 행위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도 사전예방원칙을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가 된다. 위험에 관한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경우에,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시되는 기술이나 행위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 및 그 이외의 다른 증거를 평가하여 가중치를 주거나 하는 등의 전통적인 의사결정과는 다른 방식을 필요로 하는데, 의사결정 과정에 관행적으로 이해되는 과학적 지식이외에도 일반인들의 경험적 지식이나 전통적인 지식, 또한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가치관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합의회의, 시민자문위원회같은 시민참여형 기술평가제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했을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사전예방의 방안은 특정한 생산물 혹은 행위에 대한 금지하도록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험가능성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와 같은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수준과 형태를 띤다. 위험의 확인 및 성격 분석, 해당 위험의 과학적 지식 및 불확실성의 확인, 대안 평가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 아래에 언급하게 될 다양한 사전예방 방법 중의 일부를 선택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다음은 과학과환경보건네트워크(SHEN)이 제안하고 있는 사전예방의 방법이다.

사전예방의 방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금지 및 단계적 철폐”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한 독성물질 혹은 위해성 행위로부터 부상이나 질병 등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없을 경우에, 그것을 금지하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80개의 국가가 독성이 대단히 큰 몇 개의 물질에 대해서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한다.

한편, 사전예방원칙이 규제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건설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방법도 있다. “청정 생산 및 오염 예방”의 방법이 그것이다. 청정 생산은 생산 과정이나 제품 개발 단계에서 원천적으로 오염을 줄이도록 생산 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제품 자체의 위험성을 다루면서, 지속가능한 제품 설계, 생명 친화적인 기술, 제품 생산에 소비는 천연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제품 자체의 필요까지도 대한 근본적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이런 방법은 사전예방원칙의 적용이 기술혁신을 저해하리라는 근거없는 비판을 불식시킨다. 애초에 사전예방 원칙에 대한 독일의 구상자들이 기업 등에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하겠다고 생각하였기보다는 환경기술 분

야가 성장함에 따라서 혁신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안 평가”의 방법은 그 자체가 사전예방원칙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면서도, 이미 수용된 위험예방 수단이다. 예컨대 미국의 국가환경정책법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인된 정부의 활동(혹은 정부가 투자 활동)에 대해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까지를 포함하여 대안을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도 비슷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미 MIT의 한 학자 ― 니콜라스 애쉬포드 Nicholas Ashford ― 는 “대안 평가” 방법의 차원에서 화학물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계획(Technology Options Assessment)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화학기업이 대안적인 최선의 방지기술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를 진행하며 더 안전한 대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의사결정에 대해서 정당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사전예방원칙에 입각한 위험방지의 방법들은 이외에도 많이 존재한다. 미국의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최저치에 기반하여 개발한 작업장의 위험요소 노출 한계의 목록이라든가, 화학물질과 그것의 영향에 관한 정보를 조사·정리한 “유해 화학물질 목록작성” 등이 그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그 계열 중에서 가장 독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 미국 식의약품법은 모든 새로운 약품은 시장 출하 전에 안정성과 효과성을 조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전예방의 방법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유기농업”과 같은 것은 그 자체로 사전예방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비료 및 농약 등을 사용하여 재배하는 관행적인 농업 방식이 야기하는 식품과 환경상의 오염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서, 현행 방식의 농업 관행을 버리는 “유기농업”은 “대안 평가”의 방법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생물다양성과 같은 분야는 복잡성과 지리적 범위의 광대함 때문에 과학적 불확실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야 할 분야일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전예방원칙의 개념과 그의 실행 방법 및 과정은 아직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즉 이 글에서 소개한 사전예방원칙의 구성요소와 실행 방법은 다분히 보건과 환경의 안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NGO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역적·국가적 차원의 관련 정부기구가 제시하고 있는 입장들과는 여러 측면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유럽공동체 위원회와 캐나다 정부의 사전예방원칙에 관한 지침들은 사전예방원칙이 무역거래에서의 “보호주의”의 한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거래의 자유를 앞세운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사전예방원칙의 정신을 위협하며, 이 둘 사이에 끊임없는 긴장을 유발시킬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이견은 여럿 있다.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이 사전예방원칙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동의하면서도, 위험평가 및 그 방지 방법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과학의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 승인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위험평가 및 관리에 있어서의 시민참여 등의 민주적 가치를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일정한 위험은 불가피하고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의 위험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관점에서 위험을 관리하려는 경향과 위험을 제거하거나 축소하려는 NGO의 규범적인 주장 사이의 갈등이 사전예방원칙이 가진 급진성의 실현 정도를 가름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전예방원칙이 법률이나 법원의 판례, 또 환경 및 기술혁신 정책 등에 온전하게 통합되어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사후관리 및 통제 중심에서 사전예방과 자율적 환경관리로 정책기조를 전환한다는 입법취지를 가진 환경정책기본법에서 “사전예방”이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엄격한 사전예방원칙의 개념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그에 따른 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법과 정책에 청정기술개발 혹은 대체에너지기술 개발 등에 관한 내용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예방원칙이 관련 정책에 일부 통합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사전예방원칙의 일관된 시각과 절차에 따라서 그런 정책들이 종합되고 확대되도록 하는데 있다. 기술영향평가제도의 구체적인 도입과 운영에 대한 논의가 올해 하반기에 본격화될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의 운영 원칙으로서 사전예방원칙은 적극적으로 고려해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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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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