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11-13   944

한국 과학기술인의 현주소

들어가며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지난 2월말 발족한 이래 3차에 걸쳐,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과학기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인터넷 모임으로, 6천여 회원 대부분이 현직 과학기술인이거나 이공계 대학원생 또는 대학생이다. 학력이나 출신교, 지역이나 업종의 편중이 없기 때문에, 설문조사 결과는 평균적인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의 대답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

다. 이 글에선 지난 세 번의 설문조사 결과를 총괄하여 그중에서 현재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상황과 위치, 그들이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인지등에 대한 의미있는 결과들을 모아 정리해 보았다. 가급적 필자의 분석보다는 설문조사 결과 그대로를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1. 경제적 상황

“자신이 투자한 노력에 비해 현재 합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81%가 “노력의 결과로 부족하다”고 답했다.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응답도 11%가 나왔다. 과학기술인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서 자신의 벌이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인들은 비교열위적 상대적 박탈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위 전문직이라고 하는 일부 직종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하여 결국 고소득을 보장받는 것을 지켜보며, 과거 “나는 돈보다는 연구가 좋다”며 과학기술인을 택한 자신이 은근히 책망스러워지는지도 모른다. 11%의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적 보상보다는 자신의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

고 있는 모양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적 원인과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인의 처우와 불투명한 미래 문제”가 87%로 기타 답변을 압도했다. “산업사회 발전단계와 수요

공급문제”라고 답한 사람은 4%에 지나지 않았고, 교차지원이나 가치관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도 소수에 그쳤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매우 복합적인 현상으로, 경제-산업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이 공존한다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처우에 대한 불만이 결국 후속 세대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불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의 과학기술인의 “별 볼 일 없음”을 간파한 학부모 세대가 8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논리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자녀에게 이공계 진학을 권유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는 5%만이 권유한다고 답했고, 30%가 만류한다고 답했다. 본인의 뜻에 맡긴다는 대답이 63%로 과반을 차지했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비해서는 권유한다는 비율은 현저히 낮고, 관여하지 않겠다는 비율은 매우 높았다.(인터넷한겨레 2002년 1월 라이브폴 결과 : 밀어주겠다 37%, 말리겠다 38%, 관여않겠다 22%, 모르겠다 2%) 흥미로운 결과라고 보이는데,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연구개발의 보람과 즐거움은 높이 평가하나 지금과 같은 처우로는 자식에게 권할만 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모 사는 모습을 보고도 이공계 갈테면 가고, 말리진 않겠다.”?

처우 개선을 위한 조치로는 역시 경제적 처우 개선(42%)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많았고, 사회, 문화적 인식 개선(18%), 중년 이후의 직업 안정성(18%), 이공계 출신 고위공직자 확충(21%)등이 뒤를 이었다. 고위직을 인문계 출신들이 독차지함으로써, 결국 “文高理低” 라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억하심정이 쌓였다고나 할까.

2. 탈한국 탈이공계 – 떠나자!

한국에서 학교를 나와 직장을 다니는 사람중 외국으로 이민 가서 “개인의 능력을 인정 받아 일하던 분야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분명한 것은 과학기술인은 거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인력의 국제적 이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고, 능력있는 과학기술자라면 국내에서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선진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실제로 90년대 이후 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중 많은 수가,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잡아 외국 회사나 연구소, 학교를 위해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 원하는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 것이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연구여건이나 급여,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 주거 여건과 자녀 교육 환경등 여러 가지 호조선을 떨쳐버리고 귀국하는 발걸음이 무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유학 후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면 귀국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귀국하겠다는 응답은 6%에 그쳤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을 때 귀국한다”는 응답이 63%로 가장 많았고, 해외에 정착한다는 응답도 31%나 되었다. 90%가 넘는 응

답자가 바로 귀국하지 않겠다는 답을 한 셈이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자국민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겪은지 오래 되어, 외국인 과학기술인력을 붙잡아 놓기 위해 각종 선심과 편의를 베풀고 있는 실정이다. 우수한 인력이 귀국하여 국내 기업을 위해 일하고 후학을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남의 나라를 위해 일하러 보내 놓은 꼴이 되었으니 암담한 지경이다.

“연구인력의 해외 유출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무려 96%의 응답자가 “한국내 과학기술인 처우 및 불분명한 미래가 초래한 결과”라고 답해 이들이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드러났다. 국내에 남아있는 과학기술인의 경우에도, 언제나 “탈이공계”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이공계로의 편입/재입학이나 고시를 생각/시도해 본 적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만 해 본 적 있다”가 56%, “시도해 본 적 있다”가 14%로, 이공계를 탈출하여 법학, 인문사회계나 의약계열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72%에 이렀다. “이만큼 어려운 공부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도 미래가 밝지 않다니, 지금 하는

만큼만 하면 무언들 성공 못하랴” 하는 마음이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을 고시로, 의약계열 편입으로, 변리사 회계사등 각종 자격증으로 내몰고 있다.

3. 과학기술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래는?

“한국이 현상태로 가면 5년 뒤 중국등에 추월당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이 계속 우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8%,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대답이 82%로, 산업,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위협을 매우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공계 기피와 연구원 사기 저하, 탈한국 탈이공계 현상등에 의해 연구개발 경쟁력이 급속히 하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한창 경제개

발을 실시하며 청소년 장래 희망 1위가 과학자이며, 국가 최고위급에 이공계 출신 인사들이 즐비한 점 등 과학기술인 입장에서는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상황이다.

이공계 대학 지원자 감소에 대해선 70%가 “미래 과학기술자들의 자질 하락 우려”를, 20%가 “인력수급조절의 시장원리에 따른 현상이므로 환영”이라고 답했다. 혹자는 지금부터 이공계 배출인원이 줄어들면 10년쯤 후엔 과학기술인력 품귀, 질 저하 현상으로 기존 과학기술인들의 처우가 향상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내어 놓기도 한다. 정부의 이공계 대책은 값싼 인력을 양산하여 기업에 계속 헐값에 공급하려는 술책이니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이공계 대학 정원 감축을 위해 투쟁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회원들은 과학기술인력 개개인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국가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을 더 걱정하는 것 같다. 물론 국가경쟁력 저하에 의해 수출에 타격을 입고 주요 제조업이 붕괴되면 이공계 인력을 데려다 쓸 기업도 없을터이니, 지금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마냥 강건너 불구경하듯 즐길 입장이 아닌 것이다.

맺으며

설문 결과에 의해 드러난 한국 과학기술인의 상황과 의식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노력에 비해 경제적 처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현실적으로도 고소득이나 소위 “잘 나가는” 직종이라고는 전혀 부를 수 없고, 따라서 어린 시절의 꿈이 산산히 깨어져 나가고 있다. 맹목적 애국심은 잘 관찰되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뿐이지만, 공익적이지 못한 밥그릇싸움이나 개개인의 입신양명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사람들이다. 그들

은 “부귀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다. 큰 걱정 없이 원하는 연구를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과학기술인도 인간인지라, 최소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당한 처우개선과 노년생활의 보장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스스로 뼈저리게 깨닫고

있으며, 과학기술 없이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에 차 있다.

아울러, 이번 설문 결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공계 위기가 고비를 넘긴다면, 앞으로는 과학기술인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껏 대중과의 사이에 놓인 과학기술의 간극과 시각차이를 좁히고,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과학기술인의 전문적 식견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결정에 현장의 과학기술인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위기의 과학기술인도 살리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길이라 하겠다.

이 글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문항 및 답변 결과등 자세한 설문결과는 한국과학기술인연합 홈페이지(www.scieng.net)의 자료실과 게

시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상욱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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