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무휴일제에서 경제민주화를

 

의무휴일제에서 경제민주화를

 양창영 변호사

 하루가 멀다 하고 유사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판결은 승패가 있으니 그 결과에 웃음을 흘리는 측과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갈린다. 대형마트들은 승리의 환호를 지르고 싶어 하는 듯 소송을 확대해가고 중소상인들은 그나마 믿었던 보호막이 하나둘 무너지는 것에 절망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에 관한 판결에서 법원이 대형마트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나타나고 있는 최근 모습이다. 지난 6월22일 서울행정법원을 시작으로 7월 중순까지 수원, 창원, 춘천, 부산, 청주, 전주로 이어진 판결 이후 유통재벌들은 일요일 영업을 속속 재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서 대형마트들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 지정의 근거가 마련됐다. 기초자치단체들은 이 법에 따라 조례를 만들고 기초단체장들은 속속 대형마트들에 대해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쉬도록 했다. 대형마트와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어선 기업형 슈퍼마켓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중무휴 영업을 하면서, 주변 전통시장 상인을 포함한 중소상인들이 고사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유통재벌들은 곧바로 법의 힘을 빌려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처음으로 유통재벌들의 손을 들어줬던 서울행정법원은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도 자체가 위법하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처분을 내리면서 사전통지를 생략해서 절차에 문제가 있었고, 기초단체장의 재량권을 부여하지 않은 조례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을 뿐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를 신속히 개정하고, 새로운 조례를 바탕으로 절차를 지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를 지켜가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상인단체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는 최근 제도의 확대를 내용으로 한 유통법 개정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준)’도 이 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야당들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소상공인 진흥원이 지난 4월 중순부터 조사한 내용을 보면, 대형마트 의무휴일에는 전통시장을 포함한 중소상인들의 매출과 고객 수가 10%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가 중소상인의 생존권 보호에 그나마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더라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가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이거나 과도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일요일과 휴일에는 원칙적으로 휴업하도록 하고 있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과 비교해 보면 현행 제도는 중소상인 생존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한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의 상황은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가 시행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다. 지금에 와서 법원의 판결에 아쉬움을 표시하거나 조례를 성급하게 만들었다고, 지방자치단체를 탓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법원에서도 인정했다시피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와 조례와 법령의 관계 문제 때문에 생긴 혼란이므로 지방자치단체들은 신속히 조례를 개정해서 절차를 밟아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가 제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국회도 중소상인 보호제도를 확대하기 위해 지금의 제도 개선을 공론화하고 노동자들의 기본법인 근로기준법과 같이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기본법도 마련했으면 한다. 불평등과 불공정한 관계를 경제적 면에서 평등하고 공정하게 바꾸는 것이 경제민주화임을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으니,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제를 개선하고 확대하는 일은 바로 헌법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글은 7월23일자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바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43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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