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시민권리 2002-07-09   905

“감옥 대신 대체복무 기회를 달라”

평화운동가 유호근 비종교인 최초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

스물 일곱 살의 청년이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이유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현재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유호근 씨는 9일 인권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사를 밝혔다.

불교신자 오태양 씨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후 두번째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게 된 유호근 씨에겐 종교가 없다. 비종교인으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 평화운동가 유호근 씨
유호근 씨는 이날 “동족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병역의무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되었으며, 결국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병역 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국가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무조건 감옥으로 보낼 것만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1995년 대학교에 입학해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깨닫게 되었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신과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병역기피자’에 대한 낙인으로 받게 될 고통 때문에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4주간 총을 들 수밖에 없는 군사훈련 역시 26개월의 군복무와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을 내려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 땅의 모든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이 어떠한 ‘특혜’ 받기 위해 이 선언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 더 많은 복무기간과 어려운 조건이 벌어질 지라도 양심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명료히 밝혔다. 그는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신념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소수자들이 지닌 ‘차이’가 ‘차별’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견을 밝히고 있는 유호근 씨

오늘 날짜로 입영통지서를 받은 유씨는 기자회견 시작 전 적잖이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침착한 어조로 자신의 소견을 차분히 발표했다. 기자회견장 뒤편에 앉아 아들을 지켜본 유호근 씨의 아버지는 두 눈을 슴벅거렸다. “부모마음이 다 똑같지 않겠나. 걱정이 되어 함께 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자리에는 오태양 씨도 참석, 유호근 씨를 격려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변호인단의 박서진 변호사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 함께 양심의 자유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이유라고 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며 “현 병역법상 법 위반으로 기소 및 재판은 불가피하지만 일차적으로 불구속 재판을 목표로 변호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의 목소리가 나온 만큼 이제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논의를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되었다”며 “종교인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임을 지적했다.

▲ 유호근 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유호근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병무청을 찾아 병역거부의사를 밝혔다. 징집 1과에 병역거부 진술서를 제출한 유호근 씨에게 한 관계자는 비종교적 이유인데 대해 “병역기피”라며 흥분한 반응을 보였다고 연대회의 측은 전했다.

국제민주연대, 민변,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3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지난 4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기존 병역법 내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를 소화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특히 제도의 악용우려에 대해서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가능성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대회의 측은 대만의 공청회에 참석했던 대만의 치엔 시치에 의원의 말을 빌어 “결코 대체복무가 군대생활을 하는 것보다 쉬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대체 복무 신청자가 부족해 복무기간을 현역 군인과 같게 하는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 중이다”고 전했다. 대만의 경우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인정해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600명에 달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오태양 씨에 이은 유호근 씨의 오늘 선언으로 인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오태양 씨는 “이제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라고 본다. 신념을 지닌 젊은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진정서 제출한 후 함께 자리한 유호근 씨와 오태양 씨(사진 왼편)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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