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3-09-22   586

<두건족의 프라이버시이야기> 나는 두건족이다

두건족이 뭐냐고 물을 것이다. 왜 있지 않은가? 수건이나 스키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 말이다. 사파티스타 반란군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스키 마스크를 쓴 얼굴 사진을 생각해보라. 아하, 내가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같은 세계적인 인물과 같은 족속이라고?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히 인사동 한복판에서 스키 마스크를 쓰고 다닐 생각도 있다.

▲ 내가 이사람과 같은 족속이라고?

하지만 나의 족속인 두건족은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같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몇다리를 건너야 연결될 친족일 뿐이다. 다만, ‘얼굴’을 드러내놓는 것을 꺼려한다는 공통점에서 흐미한 친족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 두건족은 겨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도 내가 두건족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최근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를 두고 “두건을 쓰고 다녀야 할 놈”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도 이제 내가 두건족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대체 두건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거리에 있던 그 많던 두건족은 어디에?

생각해보니 예전에 나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 만큼은 아니었지만, 비장한 각오로 나선 거리 투쟁에서 ‘동의없이’ 찍어댄 경찰의 사진과 비디오 촬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것 같다. 멋있어 보이기도 했구. 그때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두건족이었던 것 같다. 부정의한 정권에 맞서 거리에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질 지 모를 법적 보복을 피해고자 얼굴을 가렸던 것이다.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서 국가가 감시하고 처벌하려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예나제나 국가는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을 감시하고 처벌해야만 자신의 생명을 거의 유지할 수 있었던 그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두건족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1997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두건족들

그러나 많은 두건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채 깨닫기 전에 두건을 벗어던졌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더라도 될 만큰 사회가 민주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잊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사회에 다시 두건족이 자신이 모습을 드러난 것은 1997년 쯤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는 그들이 나와 같은 족속인 두건족이었는지는 몰랐지만. 정부가 기존의 종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해서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를 하자, 두건족 몇몇이 망각한 자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고유번호를 부여한 것도 모잘라서, 이제는 개인의 방대한 정보를 통합하여 연결하고 한 장의 스마트 카드에 담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국민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불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대! 결국 정부의 전자주민카드 사업은 두건족의 뒷다리 걸기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잊고 있던 두건족들은 자신을 되찾고 서로를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잊고 있던 내 족속들이여, 반갑다.

잠깐 이야기 – ‘발신자표시’와 두건족의 고단한 삶

두건족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두건족의 불편을 감수한 고단한 삶에 대해서 잠깐.

두건족의 정체성을 깨닫기 전부터, 나는 우리 족속 특유의 우려와 경계 의식이 발동했던 것 같다. 핸드폰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발신자표시 서비스가 불안했던 것이다. 전화를 건 내 전화번호가 자동적으로 남겨진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렇게 남겨지고 기록된 나의 전화번호가 어떻게 이용될 지.

나는 뜬금없이 걸려오는 각종 광고전화에 신경질이 나있던 차였다. “안녕하세요. 결혼정보회사인데요. OO대 나오신 ×××씨죠”. 헉. 게다가 발신자표시제도 도입의 이유가 스토커에 시달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서, 이를 반대하면 내가 스토커로 내몰리게 된 판이니.

발신자표시제도는 실시된 후, 쓰던 핸드폰을 쓸 수가 없어 새로 장만하고자 찾아간 핸드폰 가게. 엄청나게 비싼 기계를 어렵게 고르고 나니, 점원이 이것저것 부가서비스를 권유했다.

그러다가 “발신자표시 서비스도 신청하실거죠?”

“아니요”.

“예? 요즘 그 서비스 안하는 사람 없는데요?”

그 서비스 이용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점원의 의아한 표정. 필요없다, 괜챦다는 말을 몇번이나 하고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저, 제 번호가 표시되지 않도록 해주실 수 있죠?”

내 정보를 필요없이 알려주고 싶지 않으니, 나도 발신자표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공평한 일. 그 상식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점원에게 한참이나 시름을 해야 했고, 결국 대단히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상대방이 나인줄은 아는 것이다. “두건이지?” 이럴 수가. 내가 어떻게 이루어낸 발신자표시 거부 투쟁이었던데. 얼마 후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발신자표시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발신자표시가 찍히지 않는 사람은 나라고 알아버리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엉뚱한 전화도 받는다.

“너, ○시에 나한테 전화했지?”

“아니”

“그럼 누구지? 발신자번호가 안 찍혀서 넌 줄 알았는데?”

“뭐야……”

신경질을 부리는 척해도, 나는 속으로 씨익 웃는다. 어딘가 우리 족속, 두건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니까.

한편 발신자표시가 되지 않으면 아예 전화연결이 안되도록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회사들도 꽤심하지만,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화가 난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나와 친분이 있거나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일 경우에, 그 실망감과 좌절감이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다는 이 애뜻한 노력을 정상적인 생활을 가로막는 차별의 기준으로 삼다니. 슬픈 일이다. 이번 기회에 말하자. 나를 아는 사람 중에서 발신자표시가 되지 않으면 수신거부되도록 서비스 신청한 사람들, 좋은 말 할 때 그것 풀어라. 나 니들하고 통화하고 싶다.

두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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