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11-08-09   3889

[기고-오세훈 투표반대 ①] 오세훈 ‘꼼수투표’, 박정희 유신헌법과 빼닮았다



 

오세훈 ‘꼼수투표’, 박정희 유신헌법과 빼닮았다

 

[주장] 전형적 관제투표…광장에 모여 직접 의사 표출하자

 

 새세상연구소 손우정 상임연구위원 

 

설마설마 하던 주민투표가 현실화되었다. 이번 폭우와 산사태로 수많은 수재민이 생겨나고 전국에서 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벼르고 벼렸던’ 주민투표는 예정된 일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오세훈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 복지포퓰리즘추방운동본부(이하 복추본)는 이미 신문 20만부와 전단지 100만부를 거리유세전에서 배포하며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중이다. 투표 보이콧 운동이 확산되면서 투표 내용보다 투표 참여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역시 투표일을 알리는 안내문을 지하철과 버스, 각종 전광판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번 오세훈 발 주민투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오세훈식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4일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편가르는 나쁜 투표거부 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전면적인 투표거부운동을 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투표 거부가 그동안 일궈온 참여민주주의 운동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단체에서 ‘투표 거부’로 방침을 정한 이유는 단순히 승리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투표를 오세훈 시장이 배후에 있는 전형적이며 노골적인 ‘관제투표’라고 보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주민투표와 아래로부터의 주민투표

 

 

  

 

 

 

▲ 야5당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철회를 촉구했다. 참석자들이 친환경무상급식 실현을 위해 주민투표 거부운동에 나서겠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주민투표는 참여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주민투표가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 헌법학에서는 주민(국민)투표를 크게 ‘위로부터의 주(국)민투표(plebiscite)’와 ‘아래로부터의 주(국)민투표(referendum)’로 구분한다.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가 국민 스스로 투표의 시기와 내용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주도적’인 것이라면, 위로부터의 국민투표는 대통령 등 권력자가 투표의 시기나 내용을 배타적으로 결정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흔히 위로부터의 주민투표(plebiscite)는 ‘신임투표’라고도 불리며, 투표를 제안하는 권력자의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이번 주민투표 역시 주민들의 연서명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위로부터 기획되고 추진되어 왔다. 애초부터 주민투표의 발의과정에 오세훈 시장이 깊숙이 개입한 것은 물론, 6월 16일 복추본의 서명용지 앞에서 보란 듯이 주민투표 기자설명회를 개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청구인 서명과 관련한 모든 질의에 복추본은 어떤 공식 답변도 한 적이 없으며, 대신 모든 답변은 서울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후 주민투표 추진과 관련한 일정과 계획도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대변인을 통해 제공됐으며, 이를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킨 발언을 쏟아낸 것도 오세훈 시장 자신이다.

 

지난 역사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권력자가 국민투표 방식을 활용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초 국회 간선제였던 대통령 선거를 국민 직선제로 처음 바꾼 것도 한국전쟁 와중에 의회의 반대로 재선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 역시 5·16 쿠데타 이후 쿠데타 세력이 국민투표법을 제정하고 개헌을 추진하면서 이루어졌으며, 박정희의 3선 개헌안 통과 때도 국민투표가 동원됐고, 1972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킬 때 이용되었던 것도 국민투표였다. 이런 투표는 투표를 제안한 권력자가 자기 마음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투표 시기를 정하면서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키는,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국민투표’다.

 

우리 헌법재판소 또한 이런 식의 신임투표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탄핵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신임투표’에 대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이는 국민투표에 부정적인 보수적 헌법재판소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지만, 모든 국민투표를 동일한 참여민주주의 기제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주민투표가 과거 독재시절처럼 계엄을 선포하고 사이비 언론은 물론 역술인까지 동원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관제투표의 전형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상급식 의제, 서울시민 의사를 반영하고 있나

 

더구나, 이번 주민투표는 서울 시민들이 진정한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명료한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초 복추본은 청구 대상을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실시’로 명기하고 서울시도 2월 9일 그 내용으로 공고를 냈지만, 6월 17일 서울시의 청구사실 공표에는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로 바뀌었다.

 

게다가 실제 치러지는 투표 내용은 ‘단계적’, ‘전면적’과 거리가 멀다. 투표의 선택지는 ‘소득 하위 50%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안’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 중학교(2012)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 중 선택하게 되어 있다.

 

문항을 잘 살펴본다면, 애초 서울시의회의 조례안 자체가 시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추본에서 제시한 안은 시기별 단계에 방점이 찍혀 있다기보다 무상급식 대상의 범위에 대한 것으로, 정확히 발해 선별적 무상급식 안이다.

 

서울시와 복추본은 주민들이 의제의 쟁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선별적 무상급식’과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구분하지 않고, 혼란을 줄 수 있는 ‘단계적’,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두 안 중 어느 것도 지지하지 않는 주민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소득 하위 90%정도로 확대하자는 주민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선관위에서도 ‘투표불참운동’ 역시 합법적인 투표운동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오세훈의 꼼수, 성공 가능성 있나?

 

  

 

 

 

▲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가 서울시에 청구된 가운데, 지난 6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 대회실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뒤편으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서울 시민 80만1263명으로 받았다는 서명을 받은 서명지가 쌓여있다.
 ⓒ 유성호
 

 

이외에도 이번 주민투표는 각종 절차상의 이유 때문에 법령에 위반되는 사항이 적지 않다. 특히 각종 소송에 얽혀 있어 재판 중이라는 점, 무상급식은 서울시가 아니라 교육청 사무라는 점,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애초 주민투표법에서 금지한 주민투표 불가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8월 중순으로 선고가 예고되어 있는 ‘주민투표 청구 수리처분 집행정지 신청’ 결과에 따라 주민투표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강남, 송파, 서초구에서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미지수다. 소위 강남 3구라 불리는 이 지역은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당시 공정택 후보의 당선을 견인한 핵심 동력이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오세훈 후보의 득표율(47.43%)을 훨씬 상회하는 지지표를 던졌다(강남 59.94%, 서초 59.07%, 송파 51.28%).

 

그러나 이번 투표는 강남3구 부유층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불일치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정치적으로는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녀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안에 투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서울지역 집중폭우로 강남일대가 큰 피해를 입어 관할 구청과 서울시를 대상으로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코 오세훈 시장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따라서 과거 선거에서처럼 강남3구의 전폭적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나라당 서울시당에서도 투표운동 개시와 동시에 당협 사무국장 회의를 열어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세가 약한 광진, 성동, 강북, 도봉, 강서, 구로, 금천, 관악 등 8개 지역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강남3구를 믿기보다는 이들 지역에서 투표율을 끌어 올리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복추본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이 이번 투표의 내용을 홍보하기보다, 참여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투표독려에 열중하고 있는 이유다.

 

투표 대신 직접행동 필요

 

이처럼 오세훈 발 주민투표는 전형적인 관제투표라는 비아냥 속에 법정 유효 투표율인 33.3%를 넘어서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오세훈 시장 쪽에서 8월 중순의 재판 결과를 출구전략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여전히 시민사회에 남아 있는 참여민주주의의 딜레마다. 어쨌든 주민발의 형식을 빌려 주민투표가 제안된 만큼, 참여를 거부하는 방식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거부감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직접 민주주의 형식만을 악용한 잘못된 투표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갉아 먹기도 한다.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하는 투표는 전체 민의를 대변하지도 않았고, 민주주의 대신 독재만 강화시켰다.

 

참여민주주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 더 큰 민주주의와 직접 행동으로 대응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투표 거부가 참여 무관심층과 뒤얽혀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해석되기 어렵다면, 직접적인 의사표현으로 서울시민의 의사를 표출하자는 것이다.

 

복추본에서는 ‘8월 24일, 전면 무상급식 심판의 날’이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지금의 투표가 관에서 주도하는 전형적 관제투표이기 때문에 참여하기 싫다면, 투표 당일 저녁에 시청광장으로 직접 모여 ‘보편적 복지 확대와 오세훈 시장 규탄’을 슬로건으로 한 시민의사를 과시해 보자. 8월 24일을 허구적 주민투표로 참여민주주의가 왜곡된 날이 아니라, 지난 2002년, 2008년 촛불시위처럼 자발적인 시민들의 직접 행동의 장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일보 전진의 날로 대체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의 전면 확대를 요구하는 학부모와 아이들, 최소한 반값 등록금이라도 우선 실현해 보자고 주장하는 대학생들, 기초생활수급자선정 기준 변경으로 순식간에 복지사각지대로 내쳐진 수많은 저소득층, 차별받는 장애인 등이 모여 투표용지의 선택지에 제공되지 않는 보편적 복지 확대 권리를 직접적인 목소리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에서 참여연대와 함께 활동 중이신 새세상연구소 손우정 상임연구위원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7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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