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주거 2021-04-04   741

서울은 세입자의 도시다 ⑤ 주거 안정 위협받는 홈리스

세입자를 위한 주거정책은 어디 있나요?

정부보다 “센” 집주인에게 주거 안정 위협받는 홈리스 

 

이번에 발표된 용산구 동자동 지역은 민간 개발을 위해 서울시가 규제 완화를 대폭 완화해 주었지만, 민간 개발에 진척이 없던 곳입니다. 서울시가 2015년 5월, 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기존 5층 20m로 건축할 수 있던 것을 평균 12층, 최고 18층 이하로 건축하도록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건으로 제시되었던 2020년 5월을 기한으로 한 세부 정비계획을 조합 측은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따라 작년에 다시 원래의 지구단위계획으로 환원되었지요.

 

정권 바뀌면 동자동 공공개발 무산될 거라는 건물주들

 

소유주들이 얼마나 더 큰 규제 완화를 바랐는지는 모르나, 그들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와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공공주택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던 쪽방의 건물주들이 대형 현수막과 함께 나타나 건물마다 영역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건물 속에 살고 있는 쪽방 주민들의 의견인 양 착각을 부르고, ‘쪽방 주민’들이 공공주택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쪽방 주민들은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원하고 있습니다. 건물주들은 ‘무덤’ 운운하는 현수막을 붙이고 그들의 ‘스위트홈’으로 떠나면 그만이지만, 날마다 그 현수막과 마주해야 하는 주민들은 형용하기 어려운 불안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주민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저런 큰 현수막은 못 붙이지만 천으로 작은 깃발을 만들어 주민 각자의 요구를 적어 건물 밖에 매달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만장일치로 거절당했습니다. 한편은 ‘저들과 똑같은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의 차이, 또 한편은 ‘쪽방 대부분에 창문이 없는데 어떻게 밖에 걸 것이냐’는 실무적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대신 현 상황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하며, 쪽방 공공주택사업에 대해 자세히 알리는 일부터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 쪽방 주민은 건물주로부터 ‘조금 있으면 정권이 바뀔 테니 두고 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 건물주는 새로 선출될 시장이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에 제동을 걸고, 개발이익이 충만한 계획으로 바꿀 것이라 전망하나 봅니다.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은 아직 계획에 불과합니다. 동자동은 물론이고 작년에 발표된 영등포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쪽방 재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쪽방 주민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재정착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누가 시장이 되든 이 흐름을 거스를 권한은 없습니다.

 

방 장사를 하는 갑들의 홈리스 갑질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서울시는 ‘임시주거지원’이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 노숙인 및 노숙위기계층”을 대상으로 최장 6개월(평균 2개월)간 월세를 지원해서 노숙을 벗어나거나 주거를 유지하도록 돕는 사업입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장기 월세 연체로 퇴거위기에 있는 노숙위기계층” 등 지원대상이 광범위함에도 연간 900명으로 사업 규모가 빈약합니다. 임시주거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거지원 기간에는 거리 노숙을 하지 않겠습니다”, “위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임시주거지원을 중단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굴욕적인 서약마저 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 정책이 빈곤 비즈니스를 부양하는 반면 지원이 필요한 여러 홈리스들을 사각에 버려둔다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임시주거지원 시 임대인과 홈리스 당사자의 지위는 마치 갑을 관계와 같습니다. 임시주거지원은 월세를 27만원까지 지원합니다(2021년 기준). 올해 서울지역 1인 가구 주거급여가 31만원임을 볼 때 지원 단가가 낮은 편인데, 그렇다보니 쪽방이나 허름한 고시원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선택지가 크지 않다보니, 방 장사를 하는 이들은 마치 품평을 하듯, 입실을 원하는 당사자를 세워놓고 위아래를 훑으며 입실 가부를 가르곤 합니다. 취업 면접 때도 묻지 않을 생활 이력을 멋대로 질문합니다. 술, 담배 어쩌고 하는 생활규칙으로 빼곡한 입실원서에 날인을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홈리스 당사자는 주거권의 담지자는커녕 소비자로서의 대우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월세는 당해 연도 임시주거지원 상한액에 맞춰 올라갑니다.

 

여성이 갈 곳은 더욱 찾기 힘듭니다. 여성의 경우 조금 더 높은 월세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질적 차이를 볼 만큼의 수준은 못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남녀 성별 분리가 되지 않은 쪽방이나 고시원을 구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여자가 들어오면 싸움 난다’, ‘나중에 남자 데리고 오는 거 아니냐?’ 등 넋을 잃게 하는 소리를 듣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더더욱 방을 구하기 힘듭니다. 임시주거지원 예산에 맞춰 엘리베이터가 있고, 문턱이 없고, 휠체어가 다니고 회전할 만큼 넓은 복도가 있는 쪽방이나 고시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성 홈리스, 장애인 홈리스…홈리스 약자들

 

심한 당뇨병으로 다리 절단 장애를 입은 A님은 휠체어를 탄 채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해 왔습니다. 7년 동안 요양시설과 병원에서 지냈지만 입소인들의 상습적인 폭행과 갇혀 지내는 삶이 지겨워 거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임시주거지원을 신청해 쪽방, 고시원을 뒤져봤지만 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방을 계약했지만 들어가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방을 구한 것은 주소지를 기반으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고, 쪽방·고시원 주민 등에게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설명하기에 긴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LH공사보다 대기가 적은 SH공사 공급분을 신청했고, 작년 6월 SH공사로부터 입주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임대주택에도 엘리베이터는 없었습니다. A님의 사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SH공사와 LH공사 모두 주거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은 전부 엘리베이터가 없었습니다. A님의 건강은 서서히 악화하였고, 입원해 있던 지방의 한 병원에서 입주 통지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임시주거지의 직접 제공 없이 민간의 방 장사에 의존한 임시주거지원, 장애 특성조차 고려하지 않은 매입임대주택 정책(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은 속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서울시장 후보님들, 서울 홈리스가 몇 명인지 아시나요

 

‘홈리스’(homeless person)는 누구일까요. ‘홈리스’는 다양한 주거불안상태에 처한 이들을 일컫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합일된 정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매해 ‘거리 노숙’, ‘사회복지시설 거주’, ‘비적정 주거 거주’, ‘더부살이’ 등 주거불안상태에 대한 6개의 범주(기타 포함 7개)를 만들어 홈리스 인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별 홈리스의 규모는 홈리스의 정의와 범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 북·서유럽 국가들이 홈리스를 폭넓게 정의하는데, 홈리스의 정의가 6개의 범주를 모두 포함하는 독일이 0.41%(33만7000명), 스웨덴이 0.33%(3만3250명)에 이릅니다. 반면, ‘거리 노숙’ 상태에 있는 이들만을 포함하는 일본은 0.00%(4555명)에 불과합니다(2020.3.3. 기준 OECD 집계).

 

아쉽게도 한국은 집계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법적 용어로 ‘노숙인 등’이란 개념을 쓰는데 거리와 노숙인시설, 정부가 인정한 쪽방 주민의 수만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고시원, 찜질방 등에 사는 이들은 모두 누락됩니다. ‘노숙인 등’에 대한 전국 최초이자 현재로써 최근 조사인 2016년 조사로 확인된 규모는 1만7532명인데, 전체 인구 대비 0.03%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성적이 스웨덴이나 독일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동일한 기준의 비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숫자는 무의미합니다. 당장 독일에서는 고시원이나 찜질방 등 비적정 주거 거주인구까지 포함한 것이니까요.

 

홈리스에게 적정 주거를 제공하는 공약

 

몇 명인가 세기 전에 누구를 셀지 먼저 잘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反) 빈곤 운동 단체들은 ‘홈리스’라는 용어를 고집합니다. ‘홈리스’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양한 형태로 극한의 주거불안을 겪는 이들을 대표하는 정책 용어를 정하는 일, 이를 통해 파악한 실태에 기반해 정책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기존의 조사결과로도 서울의 ‘노숙인 등’의 규모는 0.07%(7148명)로 전국 실태와 비교해 2배 정도 많습니다. OECD의 6개 홈리스 범주를 사용한다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선출될 서울시장은 어느 지역의 단체장보다 홈리스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들을 위한 주거정책 마련에 힘써야 합니다.

 

코로나19 시기를 보내며, 서울역 노숙인시설 발 집단 감염사태를 겪으며 집합 생활을 강제하는 ‘시설’이 왜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온 입소 생활시설 중심의 홈리스 정책은 ‘시설 부적응자’가 아니라, 시설 그 자체가 문제란 것을 코로나19가 일러 주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시장이 되고자 하는 이는 홈리스 대책의 최우선 목표를 ‘적정 주거’의 제공에 둬야 합니다.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서울시를 꿈꾼다면 말입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오는 4월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집값과 전월세 문제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들끓는 민심에,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앞다투어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실상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부동산 선거’입니다. 하지만 자가 소유 주택에서 거주하는 자가점유율이 42.7%로 전국 최하위에 그치고, 세입자 가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에는 ‘부동산 선거’ 이상의 선거가 필요합니다.

 

지난 3월 3일, 서울지역 세입자들과 주거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집걱정없는서울넷’)가 출범했습니다. “서울은 세입자들의 도시”라는 선언과 함께, 각 후보들의 주거·부동산 공약을 평가하고, 부동산을 넘어, 주거권이 보장된 서울을 위한 시민들의 요구를 함께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한겨레>와 ‘집걱정없는서울넷’은 ‘부동산 선거’에 소외된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한겨레 원문보기 

 

서울은 세입자의 도시다

① 임대인 꼼수에 쫓겨나는 월곡동 쌍둥이 아빠

② 공공임대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취약계층 

③ 방이 아니라 집에 살고 싶은 청년 세입자

④ 전셋집으로 사기 당해 본 깡통전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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