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현대중공업 기술탈취 기소 그 이면에 면죄부 줬다

현대중공업 기술탈취 기소, 그 이면에 면죄부 줬다

 

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 달 1일 대전지방법원에 현대중공업 엔진기계부품품질경영부 직원 3명과 현대중공업 법인을 기술탈취로 인한 하도급법위반죄로 약식기소하였다. 구체적 공소사실은 현대중공업( 및 그 직원들)이 엔진 피스톤을 공급하던 공주 소재 중소기업에 대해 기술자료를 부당 요구하였고 넘겨받은 기술자료를 다른 하도급업체에 주어 사용하게 함으로써 유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의하면 현대중공업은 2014년 말 경영위기에 직면하자 납품업체를 이원화(소위 ‘부품 이원화’)해 납품단가를 낮추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술자료 요구의 목적을 알린 사실도 없고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 현대중공업 직원들에게 각각 벌금 1천만원, 5백만원, 3백만원, 현대중공업 법인에게 벌금 1억원을 선고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의 이번 기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범정부적으로 추진한 기술탈취 근절 노력의 결실로 긍정적이다. 정부는 작년 2월 기술탈취를 근절하기 위해 중기부·산업부·공정위·특허청·경찰청·대검찰청 등 6개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TF를 구성했고, 그 일환으로 공정위는 기술유용감시팀을, 검찰은 대전지방검찰청에 특허범죄조사부를 각 운영하며 기술범죄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노력해왔다. 이후 공정위는 작년에 처음으로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탈취한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를 했고, 검찰이 이번에 현대중공업의 기술탈취에 대해 형사처벌 의견을 밝힌 것이다. 특히 이번 기소는 검찰이 먼저 공정위에 전속고발을 요청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술탈취 근절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 의지를 읽을 수 있어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번 기소는 해당 중소기업이 피해를 주장한 다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나아가 법리적으로 불기소 결정에 상당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엔진 피스톤 설계도면을 해당 중소기업과 현대중공업이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한 점이다. 해당 중소기업이 자체 설계한 도면이 맞지만 현대중공의 수정, 지시 내용이 반영되었다고 공동소유를 인정한 검찰의 판단은 현대중공업의 기여가 매우 적고 부차적이며, 별도 약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 현대중공업이 설계도면의 소유권을 갖는다는 이유로 해당 중소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하도급업체에 설계도면을 전달한 데 대해 면죄부를 준 점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현대중공업이 해당 중소기업의 동의 없이도 공동소유에 기반해 자기 스스로 사용(‘자기사용권’)할 수 있고, 경쟁 하도급업체와 비밀유지약정 등을 체결하고 오로지 현대중공업에게 납품하게 했다면 현대중공업이 직접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검찰의 논리는 매우 해괴한 것이고 납득하기 어렵다. 하도급법은 정당하게 취득한 기술자료라 하더라도 부당하게 이를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하여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현대중공업이 제3자인 경쟁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를 제공한 사실은 명백하며, 현대중공업의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부품이원화는 위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또한 전속적 거래를 전제로 하였다 하더라도 제3자에게 제조를 위탁한 이상 현대중공업이 해당 기술자료를 스스로 사용하는 행위로 볼 수도 없다. 결국 검찰의 이번 일부 불기소결정은 향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탈취와 유용행위를 합법적으로 자행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 셈이다. 

 

한편, 이러한 검찰의 해석은 정책적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 산업생태계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그 아래에 해당 대기업에 거의 모든 거래를 의존하는 다단계 하도급업체가 배치되어 있는 전속적 거래구조 양상을 띠며 특히 조선, 자동차 등 거대 제조업 부문은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전속적 거래 하에서 하도급업체는 원청인 대기업의 수정,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 검찰에 따르면 불필요하거나 사소한 수정, 지시가 있는 경우에도 기술자료의 공유를 인정할 여지가 생긴다. 결국 대기업이 수정, 지시를 빌미로 해당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무단히 다른 하도급업체에 제공하거나 사용하게 하더라도 모두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결론에 이른다. 반면 기술을 보유한 하도급업체가 기존 전속거래구조를 벗어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대기업에 납품하며 기술자료를 제공할 경우 이는 기존 대기업 공동소유의 기술자료를 침탈한 불법행위가 되는 웃어넘기기 힘든 결론에 이른다. 

 

급격한 기술발전으로 산업생태계가 변화를 맞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산업생태계는 과거의 전속적 거래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업체의 납품단가를 쥐어짜서 낮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이제는 대중소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거래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기술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교섭하고 협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카드다. 마지막 카드마저 대기업이 손쉽게 빼앗아갈 수 있도록 방치한다면 우리 산업의 미래는 없다. 중소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 스스로 보호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우리 산업생태계와 대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헌법 또한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하고(헌법 제123조 제3항),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제119조 제2항)에 노력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정부와 사법부도 기술탈취 문제가 우리 산업생태계의 근간을 좌우하는 헌법적 문제임을 깨닫고 단호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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