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일까 아닐까.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비가 아직까지 논란이다.

2010년 12월,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포함시키겠다며 나라 전체가 들썩였던 적이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화 투표를 하며 투표 독려 퍼포먼스를 벌였고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를 동원해 실적 쌓기 경쟁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제주도에서만 관공서 전화요금이 200억원 넘게 나왔다. 뉴세븐원더스라는 실체 불명의 이벤트 업체가 폭리를 취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국제 사기극에 온 나라가 휘둘렸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전화번호는 001-1588-7715, 전화 한 통에 음성은 144원, 문자 메시지는 100원씩 받다가 나중에 음성은 180원, 문자 메시지는 150원으로 뛰어올랐다. 문제는 이 번호가 국제전화 번호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통화사실 확인내역서에는 착신국가가 영국으로 찍혔지만 실제로는 실제로 투표 결과를 자체적으로 집계해 뉴세븐원더스에는 최종 결과만 통보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서버를 두고 001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게 해 국제전화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사업용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국내 전화나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다.

한겨레는 2일 “감사원도 7대 경관 투표, ‘KT 국제전화 아니었다’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감사원이 참여연대에 보낸 보고서 내용을 종합하면 7대 자연경관 선정용 전화투표는 국외에 실제 착신번호가 없었음에도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을 사용해 세칙을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나 감사원 보고서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감사원 보고서에는 ‘국제전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지 않다. 감사원은 국내전화가 국제전화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실제 착신번호가 없었다”는 두루뭉실한 표현을 쓰고 있을 뿐이다.

한겨레가 인용한 감사원 보고서는 감사원이 지난달 참여연대에 보낸 감사청구 회신이다. 이 회신에는 “KT가 제공한 단축번호가 국제 전화번호를 실착신 번호 없이 그대로 사용해 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을 위반한 것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통보했으며,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주의요구를 했다”고만 돼 있다. 

KT는 이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고 “이는 해당 서비스가 단축번호를 실착신으로 하는 국제 전화투표 서비스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감사원의 처분 요구에 해당 투표서비스가 국내전화라는 내용은 없다”고 반박했다. “KT는 이미 시작단계부터 일체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어떠한 부당이득도 거둔 바 없다”고 덧붙였다.

   
2011년 9월 제주공항 도착대합실에서 제주도와 도관광협회,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들이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투표를 해 달라며 관광객들에게 삼다수와 함께 홍보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보고서나 KT의 해명은 여러 가지로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다. 감사원은 001-1588-7715이라는 번호에 연결되는 실제 전화번호가 없었다고 지적했지만 이 전화가 사실상 국내전화였다는 사실을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KT는 “사업용 전용회선은 원래 착신 전환이 안 된다”고만 해명하고 있다. 감사원도 국내전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방통위 관계자도 “감사원 보고서에는 국제전화가 아니었다는 말은 없다”는 논리를 되풀이 하고 있다. 한겨레는 감사원 보고서를 “국제전화가 아니었다”고 해석하면서도 KT를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추느라 감사원이 두루뭉실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KT는 2010년 12월29일부터 2011년 4월1일까지는 이 번호를 실제로 영국으로 연결했는데 뉴세븐원더스에서 서버에 부담이 간다는 이유로 국가별로 자체 서버를 구축한 뒤 결과만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일본에 서버를 구축해 투표 결과를 집계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11월12일까지 국제전화가 아닌 데도 국제전화인 것처럼 국민들을 속였다는 데 있다.

KT 관계자는 “001로 시작되는 번호로 국제전화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 중간에 갑자기 번호를 바꾸면 혼동이 생길까봐 처음 번호를 그대로 유지했던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어 답답하지만 폭리를 취할 정도로 금액이 크지 않다”고 해명했다. KT는 이날 해명자료에서 “KT는 이미 시작단계부터 일체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어떠한 부당이득도 거둔 바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문제의 전화가 사실상 국내 전화였다는 사실을 처음 폭로한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무단 결근 등을 이유로 해고된 상태다.

이 위원장은 KT의 해명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일본에 서버를 뒀다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 서버를 잇는 사업용 전용회선은 인터넷 망이라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버만 일본에 있을 뿐 사실상 국내전화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이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KT는 한 통화에 최대 110원씩을 더 챙긴 셈이다.

이 위원장은 “다른 나라들은 논란이 되자 뉴세븐원더스와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했는데 무슨 엄청난 기밀이라고 공개를 못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엄청난 국제 이벤트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최인숙 간사는 “이르면 다음주 초 기자회견을 열어 방통위를 규탄하고, 대국민 사죄와 부당이득 반환, 관련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강구 등을 요구할 계획”이라면서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부분과 공정위가 별도로 표시광고위반 부분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시급히 제대로 조사해서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