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5-09-30   568

<안국동窓> 흡혈귀를 퇴치하자

요즘 종종 한국개발연구원(KDI)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자료를 보곤 한다. 지난 6월 발표된 “소비구조 변화와 향후 정책대응방향”이라는 한국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소비구조변화요인으로 고령화 준비로 인한 소비 위축, 외국 상품,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대, 소득양극화,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문제를 들고 있다.이처럼 여전히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문제가 현안인데도 재정경제부는 신용불량자가 30만명 감소했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가계부채 문제가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인 양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나 소득양극화, 가계부채, 신용불량자문제는 모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중산층 가정에서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소득 증가의 속도가 고정지출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들 소비 규모를 줄이라고 하지만, 소비 규모를 줄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중산층이 모두 다 소비규모를 줄이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부유층는 충분히 소비하고 있어서 더 쓸 것이 없고 또한 외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므로 중산층의 소비가 증대되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산층이 소비를 확 줄이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아이에게 잘 해 주지 못할 바에야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당당한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소비규모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자손번성의 욕구를 억제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신이다. 그분의 이름이 지름신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생각한 소박한 해답은 중산층의 여윳돈을 늘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고정 지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를 과감하게 수술하여 축소시켜야 한다.

1. 주거비, 2. 사교육비, 3. 가계금융비용, 4. 의료비, 이 4가지 뱀파이어가 우리 중산층의 고혈을 빨아먹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자산 및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며 출산율도 급격히 저하되는 것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2005년 2/4분기에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최고로 악화되었고, 국세통계연감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03년 사이에 연소득 5억원 초과의 최고소득자가 90% 증가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연소득 1,000만원 이하의 최하소득자 또한 65% 증가하였다고 한다.

주거비, 사교육비, 가계금융비용, 의료비 이 4가지는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므로 상당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손을 봐야 한다.

우선 주거비에 관하여는 아파트 문제가 핵심이다. 한국주택공사와 토지공사 같은 곳을 내세워서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는 모두 공영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임대아파트 100만호 공급계획을 조기에 달성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파트 건설단가가 싼 나라이므로 공영개발로 거의 원가에 아파트를 공급한다면 수도권의 경우 현재 분양가의 절반에 공급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비에 관하여는 과외를 엄격히 단속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학원에 대해서 적절한 지원을 하고 학원비를 일정 수준 이하로 규제하여야 한다. 가계금융비용과 관련하여서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종합적인 입법을 추진하고,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활성화하여 신용불량자들이 새 출발할 수 있도록 하며 보증, 어음제도를 폐지하고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켜야 한다.

의료비에 관하여는 경증 질환에 대하여 본인 부담금을 높이고 중증 질환에 대한 본인 부담금을 최소화함으로써 중증질환으로 가계가 파산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이러한 대안 중 어떤 것은 다소 과격하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우리사회 중산층이 급격히 몰락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거시경제지표 타령만 하고 있는 것 보다는 실질적 대안의 실천이 훨씬 더 민생지향적인 문제해결 방법일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진정으로 4대 뱀파이어를 퇴치하는 일에 천착하여 줄 것을 당부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헌욱(변호사,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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