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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희망본부    서민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민생대안을 제시합니다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4부-①
민생뉴딜 서민경제살리기 긴급제안

참여연대와 <한겨레>는 여러 민간 연구소 및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생에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의 ‘민생 뉴딜’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실업·고용 대책, 교육, 의료, 공공요금, 소상공인, 서민금융 분야 등에서 서민들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심층진단하고, 현 시점에서 당장 절실한 대책이 무엇인지 집중탐구 합니다.(자문기관 참여사회연구소, 사회공공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희망제작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에듀머니)
2008. 12.



"가게 보증금 2천만원 대출 받으면 재기 희망"

[민생뉴딜] ④금융소외자에도 '금융'을
잘되던 세탁소 IMF 뒤 문닫고
식당열며 사채 쓰다 '파산' 멍에


» 황선진씨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금융소외자 720만명.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3명에 이르는 수치다. 가난에 허덕이지만 은행에서 단 한 푼의 돈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상당수는 고금리 사채의 늪에 빠져 있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 사태로 ‘경제적 사망 선고’를 받은 이들은 아직도 그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다.
‘신용’이 곧 자산인 사회에서, 불황의 ‘칼끝’은 가장 먼저 이들을 파고든다. 신용회복위원회에는 요즘 하루 상담 전화가 1200통 이상 걸려온다. 벼랑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이들을 도와 다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갖고 있는 유효한 위기 대처법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어느 파산 부부의 '패자부활전'

#2008년 12월 : 미친듯 일해도 불안

서울 논현동에서 ㅅ세탁소를 운영하는 황선진(45)씨 부부는 파산면책자다. 파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부부는 날마다 ‘소처럼’ 일한다. 남편은 세탁소에서 먹고 잔다. 부인 이아무개(41)씨는 아침 일찍 나와 밤 10시에 퇴근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12)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6)을 보살필 시간이 없다. 초등학생 오빠가 동생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고 온다. 황씨는 “마음이 아파도,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장이란 각오로 참는다”고 했다.

큰 실패를 경험한 황씨 부부는 다가오는 2009년이 두렵다. 불황의 여파가 자신 같은 사람에게 어떤 속도로 달려드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강남 쪽은 아직 버틸 만하다”고 말했지만, 초조한 낯빛마저 감추진 못했다.

황씨는 “열심히 벌면 임대료 113만원을 내고도 먹고사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를 불안하게 하는 건 가게 임대보증금이다. 임대보증금은 이 세탁소를 운영하다 포기하고 황씨에게 가게를 넘긴 이의 소유다. 계약도 그의 이름으로 돼 있다. 그가 임대보증금과 시설비로 투자한 3500만원 가운데 일부를 갚고 2500만원이 남았다. 서류상 황씨는 가게에 대해 권리가 없다. 파산으로 목돈이 없는 황씨는 임대보증금의 이자로 매달 40만원을 그에게 건네지만, 마음 한편엔 ‘열심히 일해 자리잡은 가게를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게를 맡긴 사람이 놀러왔다가 ‘장사 잘되네’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철렁해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저쪽에서 다시 가게를 맡겠다고 하면 나는 또 무너지는 거니까….” 지난해 4월 가게를 맡은 뒤 돈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찍힌 ‘낙인’은 그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모든 통로를 틀어막았다. “임대보증금을 빨리 갚고 내 가게를 하면 미친 듯 일할 수 있다”고 호소했지만, 아무도 돈을 빌려주는 이가 없었다. “내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가 우리한테 너무나 차갑더라고요….”

#1996년 12월 : 예고없는 불황의 늪

1996년 12월 결혼할 당시만 해도 황씨는 ‘자수성가’한 세탁소 사장이었다. 13살 때 신문배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년 동안 식당, 공사장 등을 뛰어다니며 죽어라 일했다. 결혼 전 인천시 부평에 집도 샀고, 몇 해 전 서울 잠실에 차린 세탁소도 잘됐다. 하지만 황씨는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쳤다”고 했다. 결혼 1년 만에 외환위기가 터져 세탁소 매출이 주저앉았다. 그는 세탁소를 아내에게 맡기고 실내포장마차를 냈다. 장사가 신통치 않자 거리에서 어묵도 팔아봤다. 이 역시 빈번한 단속을 버텨내지 못했고, 결국 1년여 만에 3천만원을 까먹었다.

‘재앙’은 계속됐다. 2002년께부터 세탁소 앞 잠실 아파트단지의 재건축이 결정됐다. 사람들은 떠나고, 세탁소는 도리 없이 문을 닫았다. 배운 게 장사라, 빚을 얻어 그해 말 송파구 삼전동에 삼겹살집을 냈다. 황씨는 “그게 38년 인생을 한순간에 말아먹는 선택일 줄 정말 몰랐다”고 했다.

#2002년 12월 : 외줄타기의 끝, 파산

2002년 말 식당을 처음 냈을 땐 제법 장사가 됐다. 이듬해 신용카드 거품이 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손님이 확 줄었고 황씨 부부는 카드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버티면 나아지겠지”라며 운영자금을 끌어썼다. 하지만 금리가 살인적으로 뛰었다. 카드 돌려막기마저 어려워지자 사금융 업체의 돈도 썼다. 황씨는 “카드빚과 일수빚과 사채가 한몸처럼 동시에 불어났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3일 정도 카드빚이 연체됐던 어느 날, 카드 거래가 정지됐다. 황씨 부부의 위태롭던 외줄타기도 그렇게 끝났다.

담보로 잡혔던 부평 집이 날아가고, 석 달만 더 내면 10년을 보장받는 보험도 압류당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반지하 빌라에 험상궂은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건달들이 집을 뒤집어놓고 가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었고, 쌀이 떨어져 아내의 손을 잡고 또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둘 다 파산했다.

#2006년 12월 : ‘막장’서 다시 새벽거리로

남편은 2006년 12월에 돈을 벌러 일본으로 떠났다. 남은 아내는 월급 80만원을 주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들어갔다. 넉 달 뒤 여권 문제로 황씨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서울 논현동에서 세탁소를 하던 사람이 “장사가 안되는데, 맡아서 한번 해보겠냐”고 제안해 왔다.

‘장사는 이제 끔찍하다’는 아내를 설득해 ‘패자부활전’을 시작했다. 골목을 샅샅이 누비며 ‘세탁’을 외치고 명함을 돌렸다. 일요일도 없이 밤 12시고 새벽 5시고 가리지 않고, 주문만 들어오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한강 다리를 건너 금호동의 세탁물까지 수거했다. “주변 세탁소에서 몰려와 그렇게 장사하지 말라고 항의하기에 ‘난 막장’이라고 대들며 싸웠죠.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노숙자가 되면 아이들도 나처럼 될까봐 꾹 참았어요.”

다행히 오랜 세탁소 경험과 일본에서 배운 세탁물 포장기술 탓에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성실함에 단골도 늘었다. 가게를 맡은 뒤 1년3개월 만인 지난 7월, 아내도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가게로 출근했다.

#2009년 1월 : 파산자에게 찾아온 기회

황씨 부부는 2009년 1월이 삶에 ‘전환점’이 되기를 손 모아 희망한다. 가게 임대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매일 밤 불안에 시달리던 황씨가 ‘탈출구’를 찾아낸 까닭이다. 우연히 신문을 보고 알게 된 한 민간단체의 ‘마이크로크레디트’에 2천만원의 대출을 신청했다.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대출을 받으면 임대보증금을 갚고 자신의 가게를 낼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도 저축을 아이들 이름으로 해요. 파산을 해서 그런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모두 뺏길 것 같아 불안했거든요. 열심히 일해 수입이 더 늘면, 그땐 부부 이름으로 떳떳하게 적금을 부을 생각입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아파트 담보대출 못갚는 중산층도 불안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아파트를 내놓은 지 3주가 다 돼가는데, 집을 본다는 사람도 없고 전화조차 한 통 없어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나아무개(38)씨는 “가격을 얼마나 더 내려야 하는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 인천 쪽 공단에 부품을 대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나씨는 지난 10월 회사로부터 월급 30%를 깎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270만원 하던 월급이 190만원이 됐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되지만, 2년 전 산 아파트가 문제다. 은행과 친형에게 빌린 1억2천만원을 합쳐 1억9천만원에 산 아파트 때문에 달마다 70만원 정도의 이자를 내야 한다. 나씨는 “수입의 35%가 넘는 이자비용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특히 카드빚이 늘고 있다는 점도 나씨의 결정에 한몫을 했다. 한때 2억7천만원까지 오른 집이지만, 나씨는 부동산에 2억3천만원에 팔 수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래도 나씨는 양호한 편이다. 목돈 없이 무리하게 ‘갈아타기’를 시도한 이들은 지금 심리적 공황 상태다. 2006년 파주새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아 ‘갈아타기’를 시도한 최아무개(44·서울 봉천동)씨의 은행 빚은 지금 4억5천만원이다. 시세가 3억원 정도 하는 봉천동 아파트의 담보대출이 1억5천만원이고, 분양값 5억2천만원짜리 파주 아파트를 담보로 중도금 대출을 각각 2억원과 1억원씩 두 차례 받았다. 아직 남은 중도금과 잔금도 1억6천만원이나 된다.

3억원에 봉천동 집을 팔고 대출을 2억원 정도 안고 살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1년여 만에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봉천동 집은 2억5천만원에도 거래가 없고, 내년 9월 입주 때 한꺼번에 돌아오는 이자비용은 300만원이 넘어간다. 결국 최씨는 지난주 큰 손해를 감수하고 전매가 금지된 파주 아파트를 편법 전매로 내놓았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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