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5-02-17   560

<안국동窓> 개인정보 보호와 ‘선진 한국’

시민단체의 오랜 노력 끝에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로소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통과될 전망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에서 추진하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은 시민단체에서 거의 4년의 시간을 두고 토론하고 공부하여 마련한 법안에 비해 여러모로 후퇴한 것이라서 시민단체는 여전히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은 ‘선진 한국’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법이다. 우리의 개인정보 침해실태는 너무나 놀라워서 선진국의 전문가들은 그저 ‘거참, 희한하네’를 연발할 정도이다. 모든 국민에게 태어나자마자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사망한 뒤까지도 그 번호로 철저히 관리하는 세계 유일의 주민등록제도에 관해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개인정보를 우습게 여기고 프라이버시 침해를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와 관행은 식민지 통치와 독재권력의 역사적 산물이다. 지금 우리를 옥죄고 있는 주민등록제도는 1968년에 1월에 있었던 이른바 ‘1․21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가 만든 것이다. 1968년이 서구에서는 새로운 ‘해방’의 전환기였는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독재의 강화기였다. 박정희를 암살하려고 내려온 북한 특수부대원의 공격을 받고 놀란 박정희는 모든 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현재의 주민등록제도가 만들어졌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적’으로 상정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퍅한 독재자가 만들어낸 반인권의 기형적 국민감시제도가 바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민등록제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제정은 반독재 민주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에 일어난 몇가지 일들을 보면 독재의 유산을 씻어내고 개인정보의 보호를 정상화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먼저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할 검찰의 경우를 보자. 검찰은 엊그제 희대의 개인정보 침해사건인 ‘삼성SDI 유령핸드폰 위치추적사건’에 대해 수사종결을 발표했다. 그 결과 이 사건은 말 그대로 ‘유령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검찰이 정보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 ‘극도로 무능력한 검찰’이거나, 삼성이라는 거대재벌의 위세에 눌려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극도로 무의지한 검찰’이라는 비난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증거로 남을 것이다.

이런 검찰이 같은 시기에 ‘사이버감시망’의 강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300여 사이트를 대상으로 요주의 인물을 설정하고 24시간 자동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침해문제에 대해 검찰은 이 시스템이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24시간 자동감시하는 것이 어떻게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듯 무리한 검찰의 법리해석은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에 관한 검찰의 저열한 인식수준의 소산일 뿐이다.

이처럼 며칠 사이에 대한민국 검찰은 이중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였다. 먼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이 악랄한 개인정보 침해사건인 ‘삼성SDI 유령핸드폰 위치추적사건’을 ‘완전범죄’로 만들어서 모든 국민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품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검찰 자체가 사실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24시간 자동감시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검찰은 개인정보의 보호는 도외시하고 오히려 그 침해를 사실상 보호하는 한편 스스로 강력한 감시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에 대해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는 것은 검찰만이 아니다. 개정 저작권법의 시행에 따라 저작권 관련 기관에서도 네티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저작권과 개인정보 보호가 정면으로 충돌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저작권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정보의 보호라는 중대한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모든 네티즌이, 따라서 사실상 모든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박정희가 인터넷에서 강력하게 부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침해는 강력히 규제해야 하지만 기업의 경우는 경제를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논리이다. 네이스의 경우에서 잘 드러났듯이 개인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가장 커다란 개인정보 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은 분명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국민이 핸드폰과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기업도 여느 공공기관에 못지 않은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보유한 개인정보를 멋대로 가공하고 전용하여 돈벌이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개인정보 침해가 크게 줄어든 반면에 기업의 개인정보 침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게다가 기업의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이다.

한국의 기업이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두 사건이 있다. 두 사건 모두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삼성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세계제일’을 자부하는 삼성SDI에서 일어난 ‘삼성SDI 유령핸드폰 위치추적사건’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세계제일’의 개인정보 침해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죽은 이의 이름을 도용하여 핸드폰을 만들고 그것으로 SDI 노동자의 핸드폰과 친구사이를 맺어서 그가 어디를 가는지 정밀하게 추적했다. 다른 하나는 역시 삼성의 계열사인 제일기획에서 작성하도록 한 이른바 ‘연예인 X파일사건’이다. 이 파일은 연예인을 인격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나 개처럼 다루고 있다. 삼성은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유일의 재벌이며, 세계 유일의 재벌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후진적 기업이 바로 삼성인 것이다. 삼성에서 가장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기업을 이 나라의 ‘대표기업’으로 추앙하고 본받고자 한다는 것은 정말로 한심하고 무서운 일이다.

삼성이 재벌을 비롯한 기존 기업들의 인식수준을 대변한다면, 재벌을 대체할 새로운 기업주체로 각광받기도 했던 벤처기업의 인식수준은 어떤가? 엊그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 전자상거래및통신판매협회 등의 3개 기업협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이용 제한, 민간부문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 비현실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개선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이용을 제한하지 않는 한, 또한 기업에 대한 개인정보영향평가를 하지 않는 한,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수준을 올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사실 이 두 조항은 개인정보 보호수준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그런데 새로운 기업주체라는 벤처기업들이 이런 ‘정상화’를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의 벤처기업들은 비정상적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구태여 저 2000년의 ‘벤처열풍’ 사기극을 떠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벤처기업들에서 ‘개인정보 장사’는 가장 근본적인 돈벌이 방식이었고, 이 방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벌들과 심지어 공사로까지 전파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사실상 이 나라의 모든 기업들이 추구하는 보편적 돈벌이 방식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이 나라는 세계 최악의 개인정보 침해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후진 한국’을 ‘선진 한국’으로 만들자면, 선진국의 모범을 따라 스스로를 부단히 바꿔야 한다. 선진국의 모범은 어떤 것인가?

2003년 가을에 본에서 만난 ‘도이치 텔레콤’의 ‘개인정보보호관’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다. 개인정보 보호수준이 약한 기업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개인정보 보호는 필수적인 투자이다. 반인권적인 ‘개인정보 거래 사업’은 사라지고 인권적인 ‘개인정보 보호 사업’이 번창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선진 한국’이 이루어진다. 누가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가?

홍성태 (정책위원장,상지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