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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보다는 사람을 쫓아야 하는 CCTV의 슬픈 운명



두건족 중에는 신문물을 쓰는 것에 신중한 사람들이 많다. 웬만하면 쓰던 것 쓰지, 뭔가 새로운 기능이 들어있다는 것을 쓰는 것을 주저한다. 특히 전자제품이 그러한데, 사용설명서나 기기에 빼꼼히 써 있는 여러 표식들을 보아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원 참. 버튼 하나씩 눌러가며 기계에 나타나는 변화를 보면서 경험으로 그 인과관계를 이해한다. '아 이 버튼을 누르니까, 화면이 밝아지는군'. 오호, 마치 이럴 때면 고릴라 학습과정을 보여주는 비디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스스로 전자제품을 사러 다니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대형 전자제품 할인매장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전자제품매장에 가는 것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상품을 전시한 복도를 걷다보면, 헉.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커다란 화면에 멍하니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뿐이 아니다. 전시된 거의 모든 TV 모니터에 그 멍청한 표정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로 내 얼굴인 것이다. 그것도 두건도 하지 않는 내 맨 얼굴이.

기기 성능을 광고하느라, 각종 모니터에 연결하여 복도 방향으로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캠코더가 무심하게 얼굴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반(反)두건적인 일이 있나.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 자리를 피했지만, 전자제품매장 곳곳은 그런 '함정'으로 가득하다. 조심해야 한다. 반듯한 외모를 가진 이들은 카메라 테스트라도 받는 양, 자랑스럽게 카메라 앞에 서더구만.... 저 족속들은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카메라에 비추어지는 것을 질색하는 것은, 혹시 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일까? 아니면 내 몸속에 흐르는 두건족의 피때문일까?

다시 한번 카메라랑 만난 것은, 없는 돈에 공부하느라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를 다닐 때였다. 이번에는 감시카메라인 CCTV였다. 반듯한 건물에 들어선 중고등학생 보습학원의 원장실에 본 충격적 광경. 학원 규모에 어울릴 것 같은 널찍한 원장실의 한 쪽 벽면에 그 '놈'들이 도열에 있었다. 감시용 모니터들. 십여개가 넘는 강의실 내부 모두를 비추고 있는 화면들이 격자로 짜여진 선반위에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강사들을 훔쳐보았을 원장의 모습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 이럴 수가.

내 강의실로 돌아와서 힐끈 천장 구석을 쳐다본다. 없다.

반대 쪽인가? 저기 있군.

제법 큰데, 왜 저놈을 이제껏 보지 못했을까. 끙.

나는 한동안 그놈이 신경쓰여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뒷통수가 땡겨, 항상 반듯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 놈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예전의 불량 강사의 태도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책상위에 엉덩일 걸치고, 아이들이랑 히히덕거리고. 어느새 그 놈에게 너무 익숙해졌나? 아직 두건족으로써 내 정체성을 깨닫지 못했던 때의 일이었다.


▲ 독일 **대학 화장실 안의 감시 카메라
감시카메라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이었다. 한 멜로영화였던 것이다. 사실 나 두건이는 멜로영화를 좋아한다. 멜로영화를 좋아하는 '하변'이라는 불리는 선배와 한밤 중 포장마차에서 두손 꼭 마주잡고, <국화꽃 향기>를 같이 보러가자고 '도원결의'를 할 정도다. 그 엽기스런 모습이란.

아무튼 내가 본 멜로영화 중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기억이 난다. 낙엽이 구르는 갈색 거리 위를 두 주인공이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절절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후 실제로 내게도 아내가 생겼다. 흐흐.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문제 장면은 다른 것이다.

무인현금지급기 앞에 선 전도연. 그녀는 그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향해 러브레터를 날린다.

오호라. 감시카메라의 새로운 용도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 영화감독은 상을 받아야 하고, 영화는 재해석되어야 한다.

감시카메라의 혁명적 전취! 감시에서 사랑으로.

그런데 궁금한 것은 그 감시카메라를 모니터하는 사람이 설경구인 것은 맞나?

"저×, 쑈하네!"

설경구가 아닌, 늙스레한 은행 경비원 아저씨. 이렇게 한마디 날리지 않을까?

이쯤 되면, 나는 다들 알만한 은행 무인현금지급기 코너에서 똥싸는 놈 이야기가 덩달아 생각난다. 급하기는 하고 철옹성처럼 닫혀진 화장실을 저주하면서, 무인자동지급기 코너 한구석에서 엉덩이를 까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 이때 느닷없이 들려오는 외침. "야, 똥싸지 마!" 감시카메라 너머의 경비원이 소리친다. 이 농담의 후반부는 더 엽기적이지만, 여기서 줄이고.

어쨌든 감시카메라 뒤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러브레터를 받게 될 설경구가 아니다. 대개 감시카메라를 모니터하는 사람들은 무료한 경비원들이고, 그들의 기억을 보조해주는 비디오 녹화장치들이다. 그리고 언제든 누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되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감시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은 러브레터를 날리는 전도연도 아니다. 그저 통장정리를 하러온 동네 아주머니며, 거리를 걷는 아저씨일 뿐이다. 러브레터 전달보다는 똥싸는 놈에 대한 감시가 감시카메라의 더 현실적인 역할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런저런 절박한 사정의 사람들을 쫓아내는 야박한 일을 떠맡은 감시카메라의 운명은 슬픈 것이다.

1편에서 잠시 언급한 두건족의 선지자인 조지오웰은 정치소설 <1984>에서 감시카메라에 대해서 묘사한 바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 생활 모두를 감시하고자 하는 <1984>년도의 큰 형님은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도구를 이용한다. 1940년대에 감시카메라 시스템을 예견한 것이다. 또 감시카메라 시스템을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다. 이런 면에서는 찰리 채플린도 두건족사(史)은 기록될 또 한 명의 선지자인 셈이다.

이들이 우려했던 감시카메라는 이제 사방팔방 안 설치된 곳이 없다. 은행, 공항, 건물출입구, 슈퍼마켓, 주차장, 학원의 교실, 파출소, 공공기관, 대학 구내, 버스, 동네 골목, 자동차도로, 대형도로변 인도, 심지어는 화장실 세면장소... (참고로 두건이가 최근에 디카를 샀다. 요즘 취미생활로 감시카메라 찍기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좀 아슬아슬하다. 그런데, 스릴 만점. 언제 한번 취미생활의 결과를 한번 공개해볼 요량이다.)


▲ 바로 위 사진의 감시카메라에 대한 안내판.
물론,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곳은 한 곳도 없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 '범죄 예방의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제시되고 있다. 의심 많은 두건족은 이런 명분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고, '뭔가 있을꺼야, 꺼림직해' 하는 심정으로 감시카메라를 바라본다. 두건족의 위대한 인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푸코라는 사람은 그 꺼림직함에 대해서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써서, 어떻게 권력이 대중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1984>나 <모던타임즈>의 텔레스크린 등의 역할에 이에 부합한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작업장, 사무실, 학교 등에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감시카메라를 매달고 있고, 또 그것 때문에 파업을 벌이기도 한다.

두건이는 여기에 경험적인 '썰(說)'을 하나 덧붙여 보겠다. 두건이가 보기에, 그 꺼림직함의 원인 중에 하나는 그 카메라 너머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점이고, 그들의 지루한 호기심이 두렵기 때문이다.

"어머, 저 사람, 손도 안 씻고 나가네"

도서관 화장실 세면공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볼 수 있는 경비실. 몇 명의 경비원이 지루하게 모니터를 보다가 한마디 한다. 그 옆을 지나다 들은 학생. "우씨, 화장실 가기가 겁나". (독일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두건이 지난 주에 잠시 독일 대학 화장실 감시카메라를 사진 찍으러 다녀왔다. 그래도 그 옆에는 표시가 하나 붙어 있긴 했다. "비디오감시". 두건이가 무슨 일로 독일에 갔다왔는지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자)

누군가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협박이 아니다. 실제로 지켜본다. 째지게 하품을 하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을 경비원이든, 아니면 노동자의 인사 평점을 매길 인사담당자이든... 그 사람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는 산타크로스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두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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