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5-09-20   799

<안국동窓>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위기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위태로워 보였던 6자회담이 타결된 것이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핵프로그램의 포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복귀를 약속했다. 이와 함께 북·미, 북·일 관계의 정상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역사적 협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외교에서 이루어진 최고의 성과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커다란 성과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남북관계의 안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고도 필연적인 일이다. 6자회담의 타결은 남북평화체제의 확립과 동북아평화구상의 진척으로 이어질 것이다. 친일독재수구세력의 저항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남북관계가 안정된다고 해서 이 사회가 곧바로 나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삼성공화국’의 문제를 보자. 남북평화체제가 확립되고 동북아평화구상이 진척된다고 해서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이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의 안정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고, 당연히 삼성의 힘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안정은 사실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한 기본 조건일 뿐이다.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한 과제는 많다. ‘삼성공화국’의 문제, 사회양극화의 문제, 자연파괴의 문제 등 거대한 문제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문제들에 못지 않게 커다란 문제이면서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이다. 개인정보란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뜻한다. 그것은 문서로 된 자료에서 개인의 위치나 신체에 이르까지 온갖 형태의 정보를 포함한다. 우리 자신에 관한 온갖 정보가 기록되고 수집되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말 그대로 반인간적 사회일 수 밖에 없다. 개인정보는 갈수록 개인의 인격 그 자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가 갈수록 개인의 인격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이른바 정보사회의 본질적 특징이다. 정보사회는 무엇보다 정보기술을 널리 사용하는 사회를 뜻한다. 정보기술은 정보를 처리하고 소통하는 전자기술을 뜻한다.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정보를 빛으로 속도로 처리하고 소통하게 된다. 개인정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아니, 개인정보는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수집되어 거래된다. 심지어 은밀한 신체와 사생활조차 수집되어 인터넷을 통해 지구적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정보사회는 본질적으로 정보위험사회이며, 이른바 유비쿼터스 기술이 발달할수도록 이런 본질은 더욱 더 강화된다.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정보사회는 인격침해사회를 넘어서 인격말살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 미국의 앨빈 토플러와 피터 드러커는 정보사회를 일종의 유토피아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자들과 정보기술을 관리하는 자들의 유토피아일 뿐이다. 그들은 정보기술의 능력을 과장하는 차원을 넘어서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현실 정보사회’는 국가와 기업의 권력을 무한대로 강화하면서 개별 시민을 무한한 위험 속으로 떠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정보위험사회에서 살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이 법은 정보위험사회에서 시민의 인격을 지키기 위한 기본장치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2004년의 정기국회에서 이 법이 제정되리라는 소식에 시민사회는 기뻐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당시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은 큰 문제를 안고 있기도 했다. 2005년의 임시국회에서 개정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이 제정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 소식도 결국 잘못된 소식으로 끝났다.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다시 정기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떡값’은 잘 챙기면서 시민의 권리에는 둔감한 것 같다. 자신들도 정보위험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부서의 책임도 대단히 크다. 관련 부서인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제정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정보통신부는 ‘민간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관장하고자 한다. 개인정보를 이렇게 양분해서 관리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사람을 공공기관용, 민간기관용으로 나눌 수 있는가? 부서이기주의 때문에 시민의 권리가 양분되고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제정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은 다름아닌 기업이다. 왜 그런가? 한국의 기업은 개인정보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판매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가 그 자체로 인격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개인정보의 판매는 사실상 ‘인신매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은 이처럼 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결코 고치려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권 후진국’으로, 극심한 정보위험사회로 알려지게 되었다. 개인정보의 판매로 돈을 버는 시대는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 개인정보는 판매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 개인정보판매산업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산업’이 정보산업을 이끌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초고속통신망을 갖추고 있으나 세계 최악의 개인정보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악의 정보위험사회일 수밖에 없다. 정보위험사회에서 정보안전사회로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야 한다. 독자적 감독권을 가지는 개인정보보호기구를 설치하고,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관련 활동을 통합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이미 모든 국민이 극심한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를 입고 있다. 재산의 피해는 물론이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은 정보안전사회의 초석이다. 토플러의 과장과 왜곡이나 떠벌리고, 유비쿼터스니 뭐니 하는 기업의 주장이나 되뇌이는 것은 현실 정보사회의 실상에 눈을 감고 시민을 정보위험의 급류 속으로 던져넣는 것과 같다. 시민은 당연히 그런 무지하고 무도한 국회의원과 정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정보사회의 명백한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가장 긴요한 과제이다. 그것은 ‘삼성공화국’이나, ‘남북관계’나, ‘사회양극화’나, ‘자연파괴’의 문제에 대처하는 것만큼이나 큰 과제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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