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9-08-19   943

[기고] ‘등록금 상환제’ 넘어 ‘상한제’를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지난 7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도입을 밝혔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동안 ‘등록금넷’이 요구해왔던 ‘등록금 후불제’와 유사한 제도를 내놓은 것은 다행이다. 이로써 ‘정부 보증’ 방식으로 학자금 대출제도가 변경된 뒤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신용불량자도, 돈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일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에도 대학생들의 반응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급하게 발표된 탓에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 1000만원에 달한 등록금’과 ‘매년 물가상승률의 2∼3배씩 오르는 등록금’에 제동을 거는 장치는 전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거대한 ‘빚’만 짊어지고 교정을 나서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정확한 지적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서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한 나라라고 밝힌 영국·뉴질랜드도 ‘등록금 상한제’와 함께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의 고액 등록금과 해마다 폭증하는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지 않으면, 등록금으로 인한 고통이 미래로 유예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행된다면 많은 청년들은 청년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등록금’에 저당 잡혀서 보내게 될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 도입은 정부한테도 필요하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정부가 출연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국장학재단이 채권을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한다. 따라서 적정 금액으로 등록금이 책정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만 축날 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학의 배불리기를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교과부는 대학들의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을 위해서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를 공시하도록 하고, 등록금 인상률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강제력도 없는 공시와 조금의 인센티브를 위해서, 고액 등록금을 통해 8조원에 가까운 적립금을 쌓아두고 재단 배불리기를 하고 있는 사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포기할지 의문이다.

‘등록금 상한제’ 도입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국회에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각기 ‘등록금 상한제’를 발의해놓은 상황이다. 적정 금액을 등록금으로 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입법 과정에서 이 법안들도 함께 논의해서 통과시키면 될 것이다.

이번 대출제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 행보’를 위해 급하게 제출된 탓인지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취업 후 상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주던 지원을 줄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부는 이야기하지만, 현재의 경제 구조 속에서는 오히려 사회 양극화를 조장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환이 시작되는 기준 소득을 지나치게 낮게 잡거나, 현재의 높은 대출이자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결혼 및 주택 마련 등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9월 말까지 세부 실행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정말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잡으려면, 지금이라도 등록금 대책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학생, 학부모,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논의하고 모색하길 바란다. 그리고 ‘등록금 상한제’를 비롯해서 상환이 시작되는 기준 소득의 문제, 고율의 대출이자 문제, 저소득층 지원 후퇴 문제 등에 관한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할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