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6-09-19   700

<안국동窓> 분양원가 공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까

내실 있는 공개와 검증체제 도입 필요하다

날개 단 ‘고무줄 분양가’

경기도 파주의 H사의 분양가 논란이 뜨겁다. 불과 2주 새 2번의 행정지도로 평당 분양가가 160만 원 낮춰졌다. 낮춰진 분양가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변 다른 아파트의 분양가보다 300만 원 가량 더 높다. 분양가를 낮추라는 행정지도에 대비해 미리 더 높은 분양가를 내걸었다가 행정지도에 맞춰 분양가를 낮추는 모양새를 취한 인상이 짙다.

작년에는 송파구에서 P사가 평당 3000만 원의 분양가를 내걸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분양가를 평당 500만 원 낮추었다. 평당 500만 원이면 웬만한 서민 아파트 분양가다. 판교 분양 때는 성남시장의 행정지도로 평당 100여만 원 분양가가 낮춰졌다.

최근 대전지방법원 행정부는 이같은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은 건설사에 대해 일반분양자 모집 승인을 보류한 천안 시의 행정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나온 후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가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 양 파주, 용인 등에서 잇따라 예상보다 높은 분양가를 내걸고 있다.

한술 더 떠서 공공기관인 서울특별시 도시개발공사도 고분양가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 고분양가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은평 뉴타운’은 “서민의 내 집 마련” 등 공익적 명분을 앞세워 서민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 조성된 공공택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택지개발촉진법 등에 의한 택지가 아니라는 교묘한 해석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60~70%가 높은 분양가를 내걸고 있다.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서울시가 분양원가를 공개했지만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같은 고무줄 분양가는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목적으로 조성된 공공택지에 건설된 주택에 서민은 발도 못 붙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주변 주택의 시세를 끌어올려 부동산거품을 양산하는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

분양가 공개의 핵심은 건설회사 이윤의 적정성 검증

정부는 공공택지에 건설되는 주택에 대해 주택법 제38조의 2 제2항에 의하여 분양가를 택지비와 직접 공사비 등 7개의 세부내역으로 나누어 공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아직도 건설사와 한국토지공사 등의 분양가, 택지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문제는 공개의 방식에 있다.

다수 국민은 분양가에는 분양원가와 비교하여 많은 건설사 등의 과다한 이윤이 숨겨져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사실도 그렇다. 7개 세부내역으로 나누어 분양가를 공개한다고 하나, 전문가 아닌 국민이 그 세부 내역의 진실성이나 타당성을 분석할 수 없다. 또 그 세부 내역에서 도대체 얼마나 이익이 발생했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정부나 건설사가 건축비, 택지비 세부 내역을 50~70개로 나누어 공개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여전히 분양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믿을 것이며, 부동산 정책의 혼선이 드러날 때마다 정부가 건설회사들의 과다한 이익 챙기기와 숨기기를 방조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사실, 현재의 분양가는 분양원가를 기준으로 적정이윤을 반영하여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아파트 시세에 맞추거나 주변 시세보다 높게 산정된다. 얼마 전까지 투기적 수요의 가세로 분양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유로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인건비, 자재비 등 건축비 원가의 상승요인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이 아파트 분양에서 7~10%밖에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국민들이 요구하는 분양가 공개란 건설회사가 아파트 분양을 통해 얻은 이익이 과다한지 적절한지를 알 수 있도록 건축비, 택지비, 사업이익 등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는 원가공개 그 자체보다는 과다이익 여부나 건축비, 택지비, 사업이익 등의 적정성을 검증하고 분석하는 것에 성패가 달려 있다.

분양가 검증·공개를 위한 입법적 보완 필요

앞서 언급한 대전지방법원의 판결 취지는 천안시장의 분양가 인하 권고와 이를 따르지 않는 건설회사에 대해 취한 일반분양자 모집 승인 조치가 우리 사회 법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 분양자 모집 보류와 같은 행정처분을 하려면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주택법이 행정관청에 그러한 행정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입법적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방에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는데도 건설회사들은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정부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며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분양가가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히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너무도 무망한 기대일 뿐이다. 분양가 공개와 관련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개되는 분양가에 대한 전문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 시·도에 각 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된 분양가 검증위원회를 두고 그 검증에 따라 자치단체장이 분양가에 대한 시정권고를 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일반분양자 모집 승인을 보류시키는 등의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분양가 공개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공개해야 하는지는 정부도 알고 건설회사도 잘 알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벌써 몇 해를 거듭하면서도 분양가 공개의 해법은 찾아지지 않고 도시개발공사라는 공기업까지 고분양가 행진에 나서고 있다.

참여연대는 얼마 전 분양가 검증시스템에 관한 입법적 보완의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국회의원들 중 적극적 관심을 보이는 의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분양가’는 점차 주택시장의 성역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시장원리에 맡겨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와 국회는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라”고 종용할 것이 아니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김남근 (변호사,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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