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5-06-09   1140

<안국동窓> 판교 로또와 이명박 시장

판교는 성남, 분당과 함께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아직까지 이곳은 들판이다. 농사를 짓는 농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 교외 농촌인 것이다. 머지 않아 이 농촌이 아파트가 가득 들어찬 도시로 바뀌게 된다. 이 거창한 계획과 함께 ‘판교 로또’라는 희한한 말이 만들어져 나돌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부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육군사관학교 옆 봉화산 부근을 ‘먹골’이라고 부르는 데, 배로 유명한 이 동네가 졸지에 아파트 단지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몇 해 뒤에는 중부고속도로 진입로도 만들어졌다. 매년 4월이면 하얀 배꽃으로 뒤덮이던 곳이 이제는 아파트로 뒤덮여 매일같이 수많은 통과차량의 매연에 시달려야 한다. 안타까운 파괴적 개발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파괴적 개발이 전국 어디서나 끊임없이 자행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판교 로또’만큼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농촌은 땅값이 싸다. 그런데 농촌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땅값이 급등하게 된다. 판교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은 헐값에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야 하지만, 토지공사, 주택공사, 건설업체, 투기꾼들은 평당 천만원을 넘는 엄청난 분양가를 통해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기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판교 로또’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로또복권처럼 당첨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당첨만 되면,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지는 것이다. 오뉴월 뒷간에 구더기 꼬이듯이 투기꾼들이 판교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판교가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자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판교를 기준으로 주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용인과 분당의 아파트 가격이 갑자기 두배, 세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분당에 사는 어떤 교수가 내게 아파트 값이 얼마나 올랐는가를 말해주다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나 황당하게 올랐다는 것이다. 불과 두어달 사이에 5억원이었던 아파트가 10억원을 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부의 아파트 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교 로또’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막겠다는 대통령의 공언은 애초부터 허언이었다. 그런 말을 해 보았자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정부의 아파트 정책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아무리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고 외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가장 잘못된 것은 아파트 공급을 늘려서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정책이다. 주택보급율과 주택점유율의 차이가 잘 보여주듯이 공급자 위주의 아파트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런 점에서 임대아파트 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동안 임대아파트 정책은 그저 악세사리였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임대아파트 정책도 이미 큰 실패를 경험한 상태이다. 지방의 임대아파트는 거의 모두 ‘부도 아파트’로서 입주자들은 보증금을 떼이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한다. 이런 상황은 그 동안 정부의 아파트 정책이 사실상 중산층 투기꾼을 위한 정책, 박정희가 시작한 ‘부동산 중산층’을 양산하는 정책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를 빼앗아 중산층 투기꾼을 양산할 것인가?

이명박 서울시장이 정부의 잘못된 아파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군청 수준’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대안은 무엇인가 했더니 서울의 강북을 대대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아가는 ‘난민사회’의 무시무시한 실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명박 시장의 행태가 꼭 그렇다. 그의 주장인즉슨 판교에 돈을 쓰지 말고 서울의 강북에 돈을 쓰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식 ‘새마을사업’인 ‘뉴타운사업’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이 정부의 잘못된 아파트 정책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판교 로또’를 ‘강북 로또’로 바꿀 수만 있다면, 대통령을 향해 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최측근인 부시장이 청계천개발과 관련된 비리로 구속된 마당에 청계천개발보다 훨씬 규모가 큰 ‘뉴타운사업’이 더 큰 비리의 온상은 아닌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옳지 않을까?

10여 년 전에 서울의 먹골이 아파트 단지로 바뀔 때,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은 결사항전을 벌였다. 같은 일이 오산의 세교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서울의 먹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산의 세교에서도 경찰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이번에는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야 할 곳은 불쌍한 세입자들의 농성장이 아니라 이런 불쌍한 세입자들을 대량양산하는 건설교통부, 토지공사, 주택공사, 건설업체, 그리고 투기꾼들과 정치꾼들의 밀실이다. ‘선진 한국’을 위해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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