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3-11-07   1969

<두건족의 프라이버시이야기> 아…. 주민등록증. 그리고 지독한 응징

화장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사진기에 담고자, 독일까지의 11시간 비행기 여행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나의 평소 생활습관을 아는 사람들은 독일 맥주를 먹기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만, 내 여행경비를 대준 독일 측 기관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면 큰일 나니 삼가해주기 바란다. 공식적으로 밝히자면, 나의 독일방문 목적은 서구라파의 프라이버시보호를 위한 선진제도를 배우고자 함이었다. 1세기 구라파의 선진문물을 배우고자 비장한 마음을 먹고 배에 올랐던 우리 선조와는 달리, 독일 맥주에 대한 한껏 부푼 마음으로 공항라운지에서부터 맥주 잔을 기울이며 낄낄거렸던 가벼움이 무안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두건족은 독일방문에 앞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말았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단지 돈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기 위해서는 우선 여권이 있어야 한다. 당연하다고?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여권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여권이 없는 사람은 여권 신청부터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등록증 사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난 여권 없어”

독일방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투철한 두건족 투사인 윤지반씨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번 기회에 여권 하나 만들어요”

“안돼, 나는 못 만들어.”

“왜요?”

“알잖아, 난 주민등록증도 없는 걸”

아뿔싸.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언젠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 두건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된 계기가 된 사건.

전자주민카드반대운동과 그 후에 벌어진 지문날인거부투쟁 말이다. 모든 국민들의 지문을 디지털화해서 통합·관리하려는 큰형님적 계획에 반대해서, 몇 천명의 두건족들이 지문날인거부를 하면서 ‘비(非)주민’의 피곤하고 어려운 길을 자청한 적이 있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새로운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 않았다. 유지반씨도 그 중에 한명이었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큰형님적 보복은 이들을 신분증명 불가능자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통장도 개설할 수 없고, 투표권도 부정되고…

그런데 윤지반씨는 더 극단적인 경우다. 사실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운전면허증도 있고, 여권도 가능한데, 글쎄 그것이 말이다. 반씨는 여권이 없어서 주민등록증이 필요하고,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운전면허증도 없으니. 이거 원, 답답할 노릇이다. 윤씨는 두건대학 법학과 박사과정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법적 수단을 통해서 주민등록증 없이 여권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중인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고 있는데, 그 ‘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국민이 아니고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없다.

▲ 독일 신분증 : 사람에게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는 없다. 다만 신분증에 부여된 일련번호만 있을 뿐이다. 지문은 찍지 않는다. 키와 눈동자 색깔만 기록되어 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여권을 만들 수 없었던 두건족 투사 윤씨를 한국에 남겨두고, 부끄러운 여권을 손에 쥔채 나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행은 독일에서 연방정보보호담당관청, 3개주의 정보보호담관청,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NGO들의 책임자 및 실무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70년대부터 발전되어 온 개인정보보호 법제도와 이를 충실히 지키며 엄격히 감독하는 기관들의 활동은 분명 부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전쟁에 아직 투입되지 않은 훈련병 같다는 생각도 한편에서 들었다. 한국과 같이 급속도록 발전하는 정보화사회에서 치루어내야만 하는 ‘개인정보 지키기 전쟁’말이다. 예컨대 세계에서 유래가 없다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제도는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사업에서 매우 매력적인 모델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아일랜드는 그와 유사한 제도의 도입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의 정보보호담당자들은 우리의 주민등록증에 대해서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본받아야 할 모델이기보다는,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제도로서 말이다.

“이 주민등록제도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인데, 모든 한국사람들에게는 태어나서부터 고유한 번호가 부여되며…..”

같이 독일에 방문한 일행이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설명하고 이를 독일말로 옮기는 동안, 나는 망상에 사로 잡혔다.

여기는 한국주민등록주식회사의 독일 시장 개척을 위한 설명회.

빔프로젝트의 파란 빛을 배경으로, 반두건 시스템개발팀장이 발표한다.

“이 주민등록시스템은 우리 한국주민등록주식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으로써 지난 40여년간 운영하면서 충분히 그 품질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여러분들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아드로메드 인간에게 생산과 동시에 고유한 일련번호를 부여하여, 오작동이나 결함 발생 시에 신속·정확한 수리를 가능하게 해주며 아드로메드의 적정한 배치 등의 효율적 관리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미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전자정부를 추진하는 각국 정부가 이 시스템 도입을 위해 본 회사와 상담을 진행 하고 있으며…….”

설명회 한 켠에서 박독재 사장은 회한에 젖어 중얼거린다.

“국민통제니 뭐니 하는 것은 다들 헛소리야. 60년대에 무식하게 개발하여 도입을 밀어붙인 주민등록시스템이 이제 효자 수출상품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이제 모두 네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꺼야”

갑자기 테이블 건너편의 거구의 독일인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어 다가오는 바람에 망상에서 깨어났다. 안경을 들추어 가며 뭔가를 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에 보여준 주민등록증 뒷면의 오른쪽 엄지의 지문이었다. 그리고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보다면서 엄지 지문을 내보였다.

“지문은 범죄자가 찍는 것이 아닌가요?”

“……”

“한국 정부는 국민들을 모두 예비범죄자로 보는 것인가요?”

“……”

우씨, 한국 주민등록증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국가에 불쌍한 사람들로 비추어지니 난감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근데, 어쩌랴 그게 사실인 것을. 그것을 믿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두건족의 처지가 얼마나 처량하던지.

하루 일정을 마치고, 들어선 식당에서 통역 가이드를 맡고 계신 현지 분의 신분증을 보자고 졸랐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독일인은 이사 간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일종의 동사무소_에 가서 신분증을 발급 받는데, 그 신분증에 부여되는 일련 번호가 있을 뿐이다.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보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진은 우리와 같이 있고, 지문 대신에 키와 눈동자 색깔이 기록되어 있다. 지문과 같이 한 사람에게만 고유한 정보는 수집하지 않는 것이다. (위 사진 참조). 어쨌거나 독일은 아직까지 두건족이 숨쉴 만 한 곳인 것 같다.

“이번에 독일에 갔을 때 말이지…”

한국에 돌아와 독일여행 자랑을 잔뜩 늘어놓은 중에, 주민등록증에 날인된 지문 때문에 경험한 독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던 중, 난데없이 날아드는 질문.

“그런데, 넌 여권이 있었어? 언제 만들었는데?”

“99년 쯤인가? ……”

대답을 하는 와중에, 내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다 다를까.

“어, 너도 그때 지문날인 거부해서 주민등록증이 없었을 때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날카로운 질문. 이 친구는 봐주는 것이 없다.

“그게 있잖아, 그 때 출장을 가야 됐는데…..”

이것 참, 두건족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 두건족의 지독한 응징

그런데 옆자리 친구가 슬그머니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서 지갑에서 뭔가를 꺼낸다.

아니, 주민등록증. 아니 이 녀석도? 반갑다 친구야.

이어서 옆자리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주민등록증 뒷면을 뒤집었다.

헉. 이럴 수가.

주민등록증 뒷면에 스티커가 척하니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인쇄된 지문이 가려지도록 말이다.그리고 스티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문 날인 하지마!”

두건족은 엄하다. 그 친구도 피할 수 없었던 어떤 이유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지만, 곧바로 이렇게 ‘응징(?)’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응징이란 것이 참으로 두건족다운 것인데, 그 주민등록증을 이용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예컨데, 은행창구 직원)에게 건널 때마다 횡당하다는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때마다, 끊임없이 각인하게 되는 지문날인에 대한 자책감. 참으로 지독한 응징이다.

나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저 스티커 하나 구해서 붙여야겠다.

친구야, 그것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뱀발 :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글을 마치면서 덧붙인다.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는 사람들이 5만여명에 달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두건족인지는 모르겠지만, 큰형님적 행정관료가 이들을 모두 따로 분류하여 관리한다면 그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명백한 차별행위가 될 것이다. 몇몇 두건족이 ‘전향(?)’하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는 했지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은 두건족의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두건족을 색출·분류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양심의 자유,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금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 그리고 한가지 밝혀둘 이야기. 연재되었거나 연재될 두건족의 프라이버시 이야기가 모두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라는 점. 있을 법한 이야기로 읽어주길 바란다

두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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