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4-10-26   774

<안국동窓>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경기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자

2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말 현재 개인 신불자수는 366만1,159명으로 전달보다 2만3,519명(0.64%) 줄어들었다. 개인 신불자수는 지난 5월 373만7,319명에서 6월 369만3,643명으로 처음으로 순감했다가 7월 370만336명으로 소폭 증가한 뒤 8월(368만4,678명) 이후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달 26일 배드뱅크와 신용회복위원회, 개별 금융기관의 신용회복지원프로그램 등에 힘입어 올해 모두 약 61만명의 금융거래자가 신용구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외견상으로 인정되는 신용불량자 수의 감소와 배드뱅크 등에서 이루어지는 신용구제 건수를 근거로 재정경제부는 아마도 올해 3. 10. 발표한 신용불량자 대책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이러한 수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의 큰 가닥을 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파산위기에 처한 과중채무자 문제의 해결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재정경제부의 신용불량자 해결 방안은 주로 소규모 연체자나 채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액의 과중채무자들에 대하여는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와 개인파산제도를 언급할 뿐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의 개인파산제도는 올해 약 1만건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고 지난 9. 23.부터 시행된 개인회생제도도 월 수백건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도의 채무조정으로는 심각한 신용위기를 겪고 있는 과중채무자들에게 실효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어제 시정연설에서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는 이른바 ‘뉴딜적 종합 투자계획’ 으로 경기를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금년 하반기 확대키로 결정한 공공지출 등 4조5000억원을 차질없 이 집행하고 내년도 상반기 재정의 조기 집행, 부문별 감세정책, 연기금의 사 회간접자본 투자 등이 뒷받침되면 2005년 하반기와 2006년부터는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소비가 진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3. 10.자 신용불량자 대책을 비롯하여 수차에 걸쳐, 신용불량자 문제의 해결은 경기회복을 통하여 채무자의 채무상환능력을 높여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신용불량자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 우리 경제가 극심한 내수 침체에 시달리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경제 주체의 일익을 담당하는 가계는 과도한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고, 경제활동인구 중 약 17%를 차지하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내수 경기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참여연대는 수 차례 정부에 개인신용위기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은 경기가 회복되어야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개인신용위기 해결없이는 경기회복이나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과연 정부 부처 내에서 개인신용위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나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 조차 의문이다.

지난 1. 29.부터 2. 26.까지 금감원의 의뢰로 실시된 신용불량자 3,919명에 대한 심층 전화 인터뷰에서 신용불량자들 중 약 19%만이 채무재조정 없이 자력 상환이 가능하다고 응답하였고, 63%는 채무재조정을 받아야만 상환이 가능하다고 응답하였으며, 12%는 채무재조정을 받더라도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하였다.

개인신용위기에 처한 과중채무자들에게 ‘경기가 회복되면 수입이 늘어날 것이니 그 때 채무를 갚아라’ 라고 말하는 것은 과중채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처럼 안이하게 생각하다가는 일본처럼 개인신용위기 해결에 10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언제까지 개인신용위기 문제 해결을 재경부에만 맡겨둘 것인가 ? 개인신용위기의 해결은 선진 외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소비자 도산 제도의 정비와 활성화를 기본 축으로 하여 다양한 사적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과중채무자들에게 법률 지원을 포함한 종합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그런데 재경부는 개인신용위기 해결의 기본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자 도산 법제에 대한 입법제안권 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소비자 도산 법제는 법무부 소관이다). 이런 상태에서 재경부가 개인신용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을 내 놓는다고 하여도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하여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어 개인신용위기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정부와 여당이 개인신용위기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재경위, 법사위,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개인파산 및 개인채무자회생제도를 운영하는 법원, 신용불량자들의 의사를 대변해 온 시민단체 관계자를 포괄하는 태스크 포스를 꾸려서 과중채무자에게 진실로 회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종합적인 신용위기 대책을 마련하여 일관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신용카드 위기로 촉발된 개인신용위기 문제는 정부 당국의 정책 실패와 감독 부재, 신용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신용공여, 쓰고 보자는 식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언론, 이에 편승한 개인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하여 만들어 낸 문제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해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으며, 과중채무자들을 사회적 희생자로 보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새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말로만 민생을 말할 것이 아니라 개인신용위기 문제 해결을 위하여 머리에 맞대는 국회의원을 20명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이헌욱 (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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