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5-10-04   548

<안국동窓>공기업이라는 악

공기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최근에 구직자들을 상대로 벌인 한 조사에서 공기업은 무려 ‘삼성’을 제치고 인기 1위를 차지했다. 공기업의 인기가 ‘삼성’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나 공기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기만 하다. 공기업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매년 가을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나는 공기업의 문제는 문제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한심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존재이유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공익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기업은 태생적으로 공익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다. ‘건교부 산하 4대 공기업’으로 꼽히는 주택공사, 토지공사, 수자원공사, 도로공사가 그 좋은 예이다. 이 공사들은 모두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위해 만들어진 개발공사들이다. 이제 엄청난 개발이 이루어졌으니 이 공사들은 모두 발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5년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몇몇 현황을 보도록 하자. 먼저 주택공사, 토지공사, 수자원공사, 도로공사의 임직원 성과급이 2002년 564억원, 2003년 692억원에서 2004년 1032억원으로 늘어났다. 공직원의 임직원이 갑자기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었을 테고, 결국 임직원의 성과급이 크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성과급이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692억원에서 1032억원으로 늘어난 것은 너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이 개발공사들이 주민들과 벌이고 있는 각종 마찰이며 갈등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많은 주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한 댓가로 막대한 성과급을 받은 것이었을까?

공기업의 임금 증가율 1위는 수자원공사가 차지했다. 수자원공사의 2004년 임금 총액 증가율은 20%로서 정부 지침 인상분을 무려 5배나 초과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직원들이 승진을 위해 대리시험을 보거나 성적표를 위․변조하는 방식으로 토익 성적을 올리려고 했다. 이 사건은 해고로 마무리되었다. 더 황당한 문제도 있다. 이른바 ‘직장세습’의 문제다. 수자원공사의 인사규정은 20년 이상 재직한 직원의 자녀에게는 신규채용시 1차 시험 만점의 10%에 해당하는 점수를 더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을 최고의 직장으로 꼽는 구직자들은 아마 생각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직장세습이 공기업의 은밀한 관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택공사는 1987년 1월부터 1996년 3월까지 퇴직자의 자녀 1명을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퇴직직원 자녀 특별채용 제도’라는 것을 시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3년부터 퇴직직원 자녀에게 입사시험시 만점의 10%를 더 주는 ‘채용가산점부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주택공사는 ‘취업예정증서’라는 보증서를 퇴직직원에게 발급해 주었으며, 이 증서에는 ‘귀하의 직계자녀 1명이 우리 공사의 취업예정 대상자임을 증명합니다’라는 문구와 주택공사 사장의 직인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주택공사인가?

도로공사를 보자. 2004년의 국정감사에서 최인기 의원은 “2004년 기준 도공 임원의 평균연봉이 1억3천200만원에 달하는 등 도공이 최고의 부채, 최고의 급여, 최고의 명퇴금, 최고의 노후보장이라는 ‘4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원들의 이익 챙기기는 분노할 지경이다. 도로공사는 2004년에 새로 지은 고속도로 휴게소 11개소와 9개 주유소 운영권을 전․현직 임원들이 회원으로 있는 특정회사에 수의계약으로 넘겼다. 이 문제는 2001년 국정감사 때부터 해마다 지적되고 있으나 5년이 지나도록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저 ‘시정하겠습니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장이 일년에 한번 국회에 가서 ‘시정하겠습니다’며 머리를 조아리기만 하면 임원들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도로공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임원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기업을 최대한 사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공기업의 임원이 되면 노후는 물론이고 자녀의 인생까지도 상당 정도로 보장될 수 있을 것 같다. 공기업의 인기가 삼성보다 더 높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부패와 비리가 공기업의 인기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기업이 개혁되지 않는 나라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도로공사는 최근 4년 동안 무려 1,144회나 고속도로의 설계를 변경했으며, 이에 따른 공사비 증액은 무려 1조 5,041억원에 이르렀다. 최저입찰제로 싸게 시작해서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늘리는 방식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잘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부패와 부실의 문제가 생겨났겠는가? 처음에 도로건설비를 싸게 책정해서 경제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건설허가를 받고, 일단 공사가 시작된 뒤에 설계변경을 해서 건설비를 계속 높여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허가자와 건설업자 사이에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이 작동하고, 결국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참으로 한심한 도로공사가 아닐 수 없다.

재경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현재 13개 정부투자기관과 16개 정부출자기관의 부채를 합친 총 부채가 무려 200조 806억원에 이르렀다. 2003년에는 187조 261억원이었다. 2004년 집계에는 주택금융공사와 부산항만공사가 새로 편입되었으나 제일은행, 한국투신, 대한투신 등이 제외되었다. 출자기관 수는 줄었으나 부채규모는 늘어난 것이다. 공기업의 경영방식은 ‘방만경영’과 ‘제몫 챙기기경영’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말이 좋아 경영이지 이런 것을 어떻게 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많은 공기업에 경영이 없다.

토지공사는 어떤가? 2004년에 토지공사는 주택공사와 함께 용인과 남양주에서 땅장사를 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토지공사의 존재이유를 되묻게 한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토지공사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급기야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더 황당한 지적을 받았다. 토지공사가 택지개발지역에 PF(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성원가의 3.5배로 토지를 PF회사에 매각해서 불과 3년만에 5,83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2004년에 ‘땅장사 공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토지공사는 2005년에도 또 다시 ‘땅장사 공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땅값, 집값 폭등의 한복판에 토지공사가 있다는 말은 이제 그저 당연한 말로 들릴 뿐이다.

사실 공기업에는 경영이 없어도 된다. 공기업은 사기업과 달리 이윤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기업의 경영은 사기업의 경영과는 달라야 한다. 사기업조차 공익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공기업의 목표처럼 여겨지는 것은 큰 잘못이다. 공기업은 어디까지나 공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공익은 누가 정하는가?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못대로 개발목표를 정하고 강행하는 것은 저 개발독재시대의 불행한 유산이다. 이제 이런 불행한 유산은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공기업은 그 자체로 결코 악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공기업은 어떤가? 임직원의 사익에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정치권의 사익에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공기업관리기본법>의 제정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시민사회의 참여와 감시를 통해 공기업의 모든 활동이 철저히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혁하기 바란다. 개발의 시대를 끝내고 관리와 보존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혁하기 바란다. 이대로 둔다면, 머지 않아 공기업은 그 자체로 악이 되고 말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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