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시민권리 2001-06-13   2175

밀리오레,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고통

상가 운영위, 점포임대권 뺏고 웃돈 갈취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회장 김재만씨의 죽음

지난 5월 18일 동대문 밀리오레 상인 모임인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김재만(63)씨가 상가 입구에서 경비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날 경비들이 지난 4월부터 상가 운영위원회의 홍보비 횡령 등을 문제제기하며 홍보비 납부 거부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점포 상인들의 상품 반입을 저지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이 소식을 듣고 후문으로 물건을 반입하려는 상인들을 도와 경비들과 몸싸움을 했다. 20여분간 실갱이를 벌이다 김씨는 물건들을 그 자리에 놓아둔 채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몇 발자국 걸어가다 그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 따르면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던 경비들은 쓰러진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그냥 두라며 윽박질렀다고 한다. 잠시 후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 사망했다.

“병원이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데…”

“병원이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데…”

유족 한인주(41. 사위)씨는 “설사 지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라도 자신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눈 앞에서 쓰러진 노인을 10여분 넘게 방치하고 응급조치도 못하게 막은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말했다. 한씨는 “게다가 경비들은 이 사건을 목격한 상인들과 점원들에게 ‘입만 뻥긋하면 알아서 하라’며 협박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시신은 지난 5월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가 참관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부검됐다. 아직 공식적인 부검결과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부검에 참관한 인의협 의사는 “심장의 혈관이 2-3개 끊어져 있고 멍자국이 있는 등 자연사라고 보기 힘들다”는 소견을 밝혔다.

각종 비리, 공갈협박, 폭력…대형상가 관리단은 조폭?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모임 이윤호 회장은 “이 사건은 상가 운영위원회의 횡포가 전적으로 드러난 일”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상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가운영위원회의 횡포는 점포임대과정에서 보증금 이외에 웃돈(속칭 핏값)을 챙기고 운영비, 홍보비 등을 멋대로 거두며 이에 반발하는 상인에게는 공갈협박,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등 거의 조직폭력배 수준이었다.

상인들은 “밀리오레 운영위원회는 관리회사 성창 F&D 유종환 대표의 사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운영위원회는 지난 98년 밀리오레 오픈 당시 점포를 분양받은 점포주들한테 ‘관리회사 지정 동의서’와 ‘임대위임각서’를 일률적으로 받아내 점포 관리· 임대권을 장악했다. 상가 임대권을 빼앗은 운영위원회는 별도의 임대차 계약서를 만들어 이 계약서를 통한 임대차 계약만을 인정했다. 다음 조항들을 살펴보면 임대차 계약이 운영위원회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불평등한 계약임이 드러난다.

제 6조(기타 사항) : 임(전)차인은 본 상가에서 영업을 하는 동안 아래 사항은 물론 밀리오레 운영이사회 정관 및 징계 시행 규칙을 준수하여아 하며 불이행시는 운영이사회로부터 각 규정에 의거 퇴점 및 기타 제재 조치에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제 7조 : 본 계약은 본 상가 운영이사회의 소정양식과 승인하에 계약해야만 효력이 있으며 외부 부동산 중개소의 계약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운영위원회는 자신들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겠다는 내용의 정관동의서, 관리본부를 관리회사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동의서, 위임장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만 입점을 허락했다.

실질적으로 임대권을 장악한 운영위원회는 점포임대 과정에서 임대료 외에 웃돈(속칭 핏값)을 500만-5천만원씩 받아챙겼다. 운영위원회는 또한 홍보비, 운영비, 지각비, 입점비, 활성화비 등 각종 납부금을 받고 있지만 그 사용 내역에 대해서는 지난 4월 단 한 차례 공개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납부금을 내지 않으면 경비들이 폭력을 행사하며 영업을 방해하거나 아예 영업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동대문 밀리오레 상인들은 “현 운영위원회는 2천여 상인들의 총회를 통해 적법한 인준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들이 상가 운영권 행사, 각종 납부금 강제 징수와 이를 납부하지 않았을 때 행하는 강제집행 행위는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98년 상인들이 운영위원회에 위임장을 써주었지만 그 기한은 올해 2월로 만료됐다”며 “수석이사 이아무개씨가 불구속되고 검찰 수사를 통해 불법세력으로 판명된 현 운영위원회는 당장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깃털’에 그친 검찰수사, 계속되는 운영위 횡포

그 동안 밀리오레 등 대형상가에서 관리회사의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았지만 상인들은 퇴출당하는 것이 두려워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고 표현했다. 김변호사는 “동대문 밀리오레는 2천여명의 구분소유자들이 법적 소유자이지만 운영위원회에서 불법적으로 강탈한 임대권을 명도소송을 통해 되찾으려면 최종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운영위원회는 이러한 법을 이용해 불법으로 영업을 방해하고 당장 장사 못하면 실질적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상인들은 운영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김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달 22일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상인 서아무개씨가 경비 8명에게 집단폭행 당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한 일은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대형상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재만씨의 사망 이후 운영위원회 측은 홍보비 납부 거부 점포에 경고장을 붙이는 등 다시 상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대항하는 상인 서씨가 경비들에게 폭행 당했다.

대형상가 관리회사의 불법행위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달 8일 대형상가 운영위원회 간부 13명을 구속하고 2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관련자 51명을 사법처리했다. 검찰은 이들이 핏값, 운영회비, 상가홍보비 등 명목으로 400억원대의 돈을 부당하게 챙겼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밀리오레 상인들은 이러한 검찰수사가 “깃털치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현재 수십건의 민형사 소송에 휘말려 있고 상인들이 문제의 핵심인물로 유종환 대표를 지적하는데도 그는 이번 수사에서 제외됐다”며 “김재만씨의 사망 사건을 비롯해 전면적인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대형상가 운영위원회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철저한 검찰 수사뿐 아니라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이선근 집행위원장은 “대형상가관리업체의 불법행위와 상인착취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집합건물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중 ‘관리단 설립 및 관리인의 선임절차’ 조항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며 “불법 ·탈법적 관리단 설립 및 관리인 선임이 근절되기 위해 과징금 및 처벌조항이 엄격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임차상인연합회 등 38개 단체로 구성된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는 지난 13일 오후 동대문 밀리오레 앞에서 대형상가 관리업체에 대한 검찰의 전면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에는 고 김재만씨의 유족 등 상인 50여명이 참석했으며 동대문 우노꼬레 상인들이 다른 대형상가의 피해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고 김재만씨가 안치됐던 국립의료원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참여연대는 오는 14일 밀리오레 등 대형상가의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수사촉구서를 해당검찰청, 경찰서에 전달할 예정이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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