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영세상인들의 슬픈 어버이날 행사,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은 언제?

“5월은 가정의 달인데 내 몸과 마음은 너무나 병들어 있습니다. 지병이 있어 늘 고생하시던 아버님께서는 아들이 돈 한푼 못 받고 쫓겨날 신세가 된 것을 안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습니다. ‘잘 해결될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정을 뻔히 아시는 지라 마음고생까지 더하여 병세는 악화되어 갔습니다. 병마와 싸우시는 아버님에 대한 당연한 자식의 도리로 자주 찾아가 뵙고 위로를 해드려야 함에도 생존권 박탈의 위기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 뛰어야 했습니다. 자주 찾아가 뵐 수 없는 저의 절박한 사정은 아버님을 더욱 힘들고 불안하게 해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고 급기야 올 2월 중순에는 중환자실로, 2월 27일에는 이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서울 양재동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다 지난 12월 건물주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고로 투자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한 양승진(37)씨. 노환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병세가 악화돼 지난 2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양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여의도 우체국 앞에서 숨진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임차상인연합회가 상가임대차 관련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고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양씨에게 지난 겨울 용역 깡패까지 동원한 건물주에 대항해 싸움을 벌였던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피해 상인의 자녀가 카네이션 꽃을 달아줬다.

건물주의 횡포로 딸의 수술비 마저 날려

양승진씨의 가슴아픈 사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선천성 심장병인 심실중격결손을 앓고 있는 딸의 수술비를 구할 길마저 막막해졌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만성디스크와 중풍으로 투병중이다. 양승진씨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지난 4월 3일부터 매일 사실상 건물주가 근무하는 동사무소에 상복을 입고 찾아가 ‘1인 상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씨는 지난 97년 5월 피자집을 시작하면서 권리금 4,700만원, 내부시설비 5천만원, 주방기물구입비 4,500만원 등 모두 1억 4,000만원을 투자했다. 직장생활 5년간 어렵게 모은 돈 외에도 그는 현재 살고 있는 13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7,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IMF체제가 되면서 한 달에 400-500만원정도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전 재산과 은행 빚까지 얻어 시작한 가게를 쉽게 정리할 수 없어 그는 하루종일 다른 피자집을 돌아다니면서 맛과 서비스를 비교하는 등 가게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작년 12월은 양씨의 가게가 겨우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었다. 지난 4년간 그가 가게에 투자한 돈은 모두 1억 8,000만원. 권리금을 제하고 그가 짊어질 부채는 약 1억원이다. 그는 “건물주에게 다른 곳에서 조그마한 피자배달점이라도 마련할 정도의 돈이라도 보상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한푼도 못 주겠다 한다”며 “오죽 답답했으면 상복시위를 시작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임차상인은 약 400만명. 지난 3월말까지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1만건이 훨씬 넘는다. 민주노동당 이선근 집행위원장은 “5월 임시국회가 열렸으나 의원들은 정쟁을 일삼고 대거 외유를 떠나는 등 민생현안에는 관심조차 없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그는 “피해상인들을 위해 하루빨리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재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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