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통신 2001-11-05   932

이동전화요금 인하 이렇게 끝나나

우리 스스로의 희망을 꿈꾸고 싶습니다

(편집자주)정보통신부는 5일, 재경부와의 협의를 마지막으로 정통부의 인가를 받아야하는 SK텔레콤의 표준요금을 8.3% 인하하는 이동전화요금조정안(기본료 천원, 10초당 통화료 1원 인하, 무료통화 7분 제공)을 최종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신고제 요금 사업자인 KTF와 LG텔레콤도 12월 중순께 요금인하 폭과 시기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것이 지난 3월부터 벌어졌던 ‘이동전화 요금인하 100만인 물결운동’의 성적표다. 처음부터 ‘요금인하 불가’입장을 밝혀왔던 이동전화 사업자와 정보통신부를 80만 서명으로 대표되는 국민의 힘으로 변화시켜 결국 내리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애초 운동목표였던 기본료 30%인하에는 절반도 못 미치는 결과여서 아쉬움 또한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운동의 실무를 담당했던 간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민원전화를 받다 말고,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그만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11월 1일 이동전화 요금인하 건에 대한 민주당 당정협의 결과가 발표되는 날의 일입니다. 100만 서명청원이라는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편에 서주기를 기대했던 민주당은 끝내 민심을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는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공채로 참여연대에 들어왔고, 들어와서 처음으로 맡게 된 일이 ‘이동전화요금인하 100만인 물결운동’입니다.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운동과 함께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 제게는 무척이나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00만인 물결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매주 나가는 거리 캠페인은 밀려드는 서명자로 북새통을 이뤘고, 사이버 상에 마련된 캠페인 사이트(http://myhandphone.net)는 서명자 폭주를 서버가 감당 못해서 여러 차례 다운될 정도였습니다.

‘이동전화요금인하운동’은 이렇게 확고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전 국민적 운동으로 성장했습니다. 덕분에 운동 시작 8개월만에 100만 서명이라는 기록적인 지지를 받아냈고, ‘요금인하’여론에 힘입어 ‘요금을 인하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다’

캠페인을 하느라, 주말과 연휴를 거리에서 보내면서 저는 늘 이 생각을 했습니다. 줄을 서서 서명을 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모아주시는 민의와 성의가 헛되지 않게 해야지’하는 각오를 했고, 정통부나 이통사와 충돌할 때마다 ‘민심과 함께 있다’는 것이 제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민심을 모아 서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게 하고, 또 서민들에게 그들의 몫을 돌려주는 것. 이런 것이 시민운동이라고 믿었기에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고된 일정을 힘들다는 생각 없이 일해왔습니다.

그러나 ‘요금인하운동’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운동의 담당 간사로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비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이 민심을 모으는 단계에서 민심을 정책에 반영시키는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열심히 민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조직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홍보계획을 세웠고, 장사에 방해된다며 집회를 못하게 하는 주변 상인들과 ‘이 땅이 니 땅이냐’며 부딪히기도 여러 번, 어떤 땐 집회기물을 부순 적도 있었습니다. 또 통행이 많은 점심시간에 1인 시위 시간을 잡다보니, 50여 일의 시위 기간 동안 점심을 제시간에 맞춰 먹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끌어온 운동인데, 정작 정책의 결정단계에 와서 우리는 운동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그리고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과 분노, 그리고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민심이라는 것을 차마 면전에서 외면할 수 없었는지, ‘고려하겠다’, ‘공청회를 열어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등등의 말로 시간을 끌더니 정책결정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시민단체가 여론을 모아 이동전화 요금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세계 유례가 없는 이상한 일’이라며, 정책결정의 키를 쥐고 있는 정통부는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니들이 아무리 그래봐야 별 수 없어’라는 듯 참여연대가 배제된 요금조정회의를 갑자기 열어 바로 이틀 후 민주당 당정협의 때 요금조정안이 결정되도록 계획을 짜놓고 우리의 뒤통수까지 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동통신사업은 국가 기반사업입니다. 국가기반사업이란 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국기기반사업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업에 나라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국가우선주의 속에서 국가가 제시하는 부국강병과 세계일류국가달성에 우리는 희망을 강요당했고 서민의 삶은 외면당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강요당한 희망과 희생당한 삶을 살아온 서민들에게 국가가 돌려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IMF 한파와 정리해고, 주가폭락, 뛰는 물가, 엄청난 사채폭리, 그리고 정쟁국회 … 이것이 이 나라의 현주소가 아닙니까?

이제 더 이상 강요당하는 희망은 싫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희망을 꿈꾸고, 그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동전화요금인하 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 운동이 삶에 지쳐 가는 서민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그리고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과는 별개로 11월 1일 당정협의에서는 정통부의 8.3% 생색내기용 요금인하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습니다. 그 소식을 듣던 날 희망의 주체가 되고 싶었던 한 운동가가 북받치는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네가 운동이 처음이라 그래, 운동은 원래 지는 거야. 참여연대가 7년 간 목숨 걸었던 부패방지법도 어떤 모양새로 통과됐어? 그렇게 운동은 져왔어. 그리고 우린 완전히 진 건 아니잖아. 절반은 성공한 거야. 이 정도라도 내린 건 우리의 성과야.”

운동의 선배가 운동은 원래 지는 거라며, 여태까지 운동은 이렇게 져왔다며, 너무 서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미련이 남습니다. 우리는 정녕 희망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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