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7-05-02   1187

<안국동窓> 사채시장 없으면 경제 올스톱?

IMF 외환위기 이후 내수경기 진작을 위하여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철폐하고 길거리 발급 제한 등 회원 모집방법 제한을 폐지하는 등 정부는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면서 신용카드 복권제 시행,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제도 등을 도입하여 신용카드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였고, 신용카드사들은 이에 편승하여 공격적인 영업 확대를 꾀함으로써 소비신용이 급격히 증대하였다. 또한 2002년 이후 계속된 부동산 폭등기에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우리사회는 2005년을 기점을 가계대출 규모가 기업대출을 능가해 본격적인 소비신용사회에 진입하였다. 급격한 소비신용 증대는 정부정책의 잘못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 발전에 따라 우리사회가 소비신용의 증대 없이는 경제개발을 도모하기 어려운 사회로 진입하였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신용의 증가는 기업 측면에서는 대량생산·소비체제 유지를 위하여 장려하였고,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수익성 제고의 차원에서 영업전략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또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속적인 광고에의 노출과 소비수준의 향상, 고정지출의 증가에 따라 소비신용을 사용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소비신용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신용사회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소비신용이 외형적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음에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금융기관 등 신용공여자의 입장에서 소비신용을 단순한 사적 채권·채무 관계로만 규율하려는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용소비자들은 거래 현실에서 오직 채무자로만 취급되어 소비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정보접근권, 부당한 채권추심에 대한 거절권, 사적 비밀과 평온의 자유 등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고, 채권자들의 형사고소와 유체동산·임금 압류 등의 압박 아래 몇몇 개별법에서 인정되고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산상태에 처한 개인들에게 새 출발을 위하여 법률적으로 허용된 파산신청이나 개인회생신청을 이유로도 법률적인 근거 없이 각종 불이익이 주고,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사기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용카드사나 채권추심기관이 대량고소를 남발하여 사법기관을 채권추심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파산·면책을 받은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구하거나 금융계좌의 개설을 거부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환위기 당시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이후 사채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저신용 서민들의 피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2002년 사채시장의 양성화와 서민 보호를 명목으로 대부업법을 제정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대부업시장의 평균금리는 연 200%에 이르고, 대부업 이용자의 85%가 2년 이내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불법고리사채가 더욱 횡행한다. 전국적으로 대부업체 수는 무등록대부업체를 포함하여 4만5000개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에 대한 감독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은 20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고, 대부업법 소관부처인 재경경제부나 금융기관 감독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감독위원회는 대부업체에 대한 감독 권한도 없는 상태여서 체계적인 감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채권자가 우연적인 지위의 산물인 채권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업으로서 신용을 공여하는 금융사업자의 형태로 나타나듯이 채무자 또한 단순히 채무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생활을 위하여 신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신용소비자 또는 금융소비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신용거래를 단순히 채권·채무의 관계로만 규율하는 경우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국가는 신용소비자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신용소비자로서의 국민들이 헌법상 기본권을 충실히 누릴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신용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법률은 개별법의 입법 목적에 따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제한적 방식으로 주로 관련 업종에 대한 규제 형식을 빌려 신용소비자 보호에 관하여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신용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종합적·체계적인 보호를 염두에 둔 법률은 찾을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우리사회의 미국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은 금융의 경쟁력뿐 아니라 신용소비자 보호 분야에서도 가장 앞선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신용소비자들은 채무자 우호적인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제도, 불법채권추심을 철저히 차단하는 공정채권추심법, 신용소비자를 체계적·종합적으로 보호하는 소비자신용보호법으로 보호받으며,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공격수단인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가지고 있다.

법치주의는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다. 최근의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은 주로 시장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펼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시장경제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잘 보여준다. 시장경제 질서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법의 지배가 확립되어야 한다. 금융시장의 성숙을 위해서도 신용소비자보호법제를 완비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프라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금융환경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무한경쟁체제로 내몰리고 있고, 앞으로 제정될 자본시장통합법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금융시장의 자유, 더 정확하게는 금융기관의 영업의 자유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처럼 금융기관의 영업의 자유가 확대될수록 그 상대방인 신용소비자들을 종합적·체계적으로 보호하려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금융시장 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신용소비자들도 미국 신용소비자들과 같은 정도의 법적·제도적 보호장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국가가 그러한 보호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 이 칼럼은 뉴스메이커 722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헌욱 (변호사, 민생희망본부 정책사업단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