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08-02-01   856

대학생 이제는 희망을 꿈꾸고 싶습니다.

등록금 기자회견 후기


참여연대 인턴 김인희


1월 31일, 통인동 참여연대 건물은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오후 1시에 있을 인수위 앞 등록금 인하 촉구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단 한번도 거리에 나서 구호를 외쳐보지 않고, 피켓을 만들고 기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북적북적 시끌시끌, 서투른 손으로 참여연대 인턴들은 난생 처음 해 보는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 ▲ 서투른 솜씨지만 열심히 피켓을 만들고 있는 참여연대 대학생 인턴들 ⓒ참여연대
▲ ▲ 서투른 솜씨지만 열심히 피켓을 만들고 있는 참여연대 대학생 인턴들 ⓒ참여연대






▲ ▲ 수 차례의 시행착오, 드디어 완성ⓒ참여연대
▲ ▲ 수 차례의 시행착오, 드디어 완성ⓒ참여연대

17명의 인턴 중에 이전까지 소위 ‘운동권’이었던 학생은 얼마나 있을까. 이들은 어찌 보면 정말 착실하게 학교만 다니던 ‘범생이’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짱돌 비슷한 것도 들어보지 못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꿈꾸며 살아왔을 그저 평범한 대학생들. 그런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다는 것. 그리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인턴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은 이런 의미에서 상당한 진일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영정사진을 들 것입니다.”

인수위 앞에서 이루어질 퍼포먼스는 영정사진을 들고 관에 전공 서적을 버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회의 과정에서 과격한 표현은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학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전달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대학생들이 학교의 착취 대상처럼 전락해버린 불합리한 현실에서 결국은 대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 ▲ 완성된 6명의 영정사진들. 웃는 얼굴에 검은 띠가 드리워져 있다.ⓒ참여연대
▲ ▲ 완성된 6명의 영정사진들. 웃는 얼굴에 검은 띠가 드리워져 있다.ⓒ참여연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나니 무슨 대형참사 현장에 만들어진 분향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퍼포먼스를 하러 가기 전 활기차게 점심을 먹던 인턴들은 사진들을 보고 상당히 침울해 했다. 자신의 얼굴을 영정사진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에 대한 우울함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우울함이었다.

“우리가 정녕 죽어야 내리겠습니까?”

검은 천 위에 강렬한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들어섰다. 검은 학사복, 검은 학사모, 그리고 검은 띠를 두른 영정 사진을 든 6명의 학생들이 일렬로 들어서자 인수위 앞에는 잠시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발을 멈추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중년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관심 있는 표정으로 대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끝난 후, 자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선 학생들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스스로의 영정사진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인지 아마도 모를 것입니다. 저희는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해 등록금만 1000만원에 육박하고 있고,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의 5배, 많게는 10배 이상을 웃돌고 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2~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 휴학을 합니다. 저희 대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 ▲ 등록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참여연대
▲ ▲ 등록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참여연대
“대학 배 불리기 위해 학생들이 있는 건 아닙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8개월 동안 일하고 한 푼도 안 써야 겨우 한 학기 등록금이 나옵니다.”

“대학은 학생들보다 건물이 더 좋은가 봅니다. 학생을 착취해 건물만 세우면 다입니까?”

“학비가 없어서 꿈도 잃어버렸습니다.”

“졸업하는 순간 수천만 원의 빚을 진 채로 사회에 나와야만 하는 겁니까.”

“돈을 벌기 위해 휴학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들은 현재 한국 대학생들이 처해 있는 절박한 상황에 대해 성토했다. 국립대학들이 최고 등록금 인상률을 20~27%까지 고지하고, 주요 사립대에서 7~15% 가량의 인상률을 발표한 이 시점에서, 등록금 인상은 ‘폭등’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여명의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등록금 인상을 반대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재학생들로, 누구보다도 비싼 등록금의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이들이었다. 구호를 처음 외쳐보는지 어색하고 잘 맞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 간절하게 느껴졌다.






▲ ▲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는 참가 학생. ⓒ참여연대
▲ ▲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는 참가 학생. ⓒ참여연대
학생들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절실한 발언을 마치고, 준비해 온 검은 관에 하나씩 전공 책들을 집어 던졌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학생들을 채무자로 만들고 등록금을 올려 자기 배를 불리는 기업과 다름 없다는 뜻에서였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는 상황, 학생들은 전공 서적을 관 속에 넣으며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등록금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합니다!”

퍼포먼스를 마친 학생들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삶이 너무 힘들다. 이제는 공부만 하고 싶다.” “학자금대출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힐지 모르는 미래가 두렵다.”라고 말하며, “집권여당이 될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대학 등록금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하고, 도리어 등록금 폭등을 용인하고 있다.”며 약속 이행을 간절히 호소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구체적인 대안 제시로”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가 학생들은 수 많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언론의 큰 관심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등록금 문제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 이슈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 ▲ 학생들을 둘러싼 많은 취재진들의 열띤 취재가 이루어졌다. ⓒ참여연대
▲ ▲ 학생들을 둘러싼 많은 취재진들의 열띤 취재가 이루어졌다. ⓒ참여연대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모두 끝난 후,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오늘의 이벤트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현실은 한 번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에서였다. 무엇보다 등록금 문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모두의 문제인 만큼,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대학생들 스스로 만들어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참가자들은 이번 기자회견 역시,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큰 물결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 기자회견이 끝나고 취재진들의 인터뷰 요청에 답하고 있는 참가자들. ⓒ참여연대
▲ ▲ 기자회견이 끝나고 취재진들의 인터뷰 요청에 답하고 있는 참가자들. ⓒ참여연대

“대학생, 이제는 희망을 꿈꾸고 싶습니다.”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대학생들의 가장 큰 이슈는 “너희 학교는 얼마나 올려?”일 것이다. 다음 학기는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는 몇 개를 해야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보다, 이제는 대학생이 대학생다운 포부와 꿈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모두가 움직여야 할 시기이다.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거나, 혹은 다닌다 하더라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남들보다 훨씬 늦게 사회에 진출하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업에 매진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히 기형적이다.






▲ ▲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학생들의 명랑한 모습. ⓒ참여연대
▲ ▲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학생들의 명랑한 모습. ⓒ참여연대

학생들이 더는 “우리는 죽어버렸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도록, 한 번도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해본 적 없는 학생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전공 책을 버리는 일을 하지 않도록,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학생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적극 동참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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