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12-07-19   1319

[언론기획]’빈곤팔이 소녀’ 장학금, 120만원이 사라졌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등록금을 공약했습니다. 계속된 공약이행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던 정부가 올해부터 ‘국가장학금’을 시행했습니다. 정부는 “등록금 관련 예산이 대폭 늘었다”, “등록금 부담 완화 효과가 약 23%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국가장학금을 받는 학생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요? 국가장학금을 받는 대학생들이 실제 느끼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반값등록금국민본부는 <국가장학금 분노기> 공모를 시작했고, 받은 글들을 오마이뉴스에 연재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국가장학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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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팔이 소녀’ 장학금, 120만원이 사라졌다
[국가장학금 분노기②] 250만 원 받던 돈 반토막으로 줄어… 실효성 낮아

나의 대학 입학은 드라마틱했다. 1학기 수시 불합격, 2학기 1차 수시 불합격, 2학기 2차 수시 불합격. 불합격 행진은 정시에도 계속됐다. 가군 불합격, 나군 불합격, 다군 불합격. 그나마 예비순위를 준 대학은 나군에 접수한 대학뿐이었다. 어영부영 성적 맞춰 대학가긴 싫었지만, 모두 떨어지고 보니 불안해졌다.
 

지역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은 나를 상경시켜 재수공부 시킬 만큼의 여력은 없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면 되겠지만, 연년생 동생이 있어 내년에 한꺼번에 대학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에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수를 하든, 대학을 가든 부모님한테만 의지할 수 없는 게 내 형편이었다. 대학 합격 발표가 나기 전부터 하고 있던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에,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추가했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또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17시간을 일했다.

그러던 와중에 2차 추가합격으로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합격통지를 받고도 입학까진 쉽지 않았다. 합격 통지 다음날 오후 4시까지 등록금을 입금해야 입학이 확정되기 때문이었다. 수업료와 입학금을 합친 등록금은 450만 원. 하루 17시간 일해 번 돈은 고작 100만 원 안팎이었다. 어디서라도 빚을 내야 했다.

다행히 학자금 대출 제도를 알고 있었지만, 대출도 만만치 않았다. 합격 통지 받은 대학의 등록금 수납 은행이 내가 사는 지역에 없었다. 부랴부랴 은행이 있는 지역을 찾고,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서 대출을 받고, 다시 인터넷 뱅킹을 통해 등록금을 입금했다. 마감시간 10분 전 아슬아슬하게.

어렵게 들어온 대학… ‘빈곤팔이’의 시작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들어온 대학이건만, 나는 매 학기 등록금 납부 시즌이 되면 이 아슬아슬한 전쟁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첫 학기 등록금 450만 원에 대한 이자는 매월 2만 5천원. 2009년 최저임금인 시급 4000원을 기준으로 약 6시간 넘게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8학기를 다녀야 졸업할 수 있는데 매 학기 돈을 빌릴 때마다 이자는 늘어날 것이었다. 입학금을 뺀 350만 원을 대출해 이자가 2만 원으로 줄어든다 해도, 이자 부담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입학 첫 학기 내 용돈은 겨울 방학 내내 번 100만 원이 전부였다. 한 달에 20만 원씩 쪼개  써도 아껴써야 할 판이었다. ‘더 이상 이자를 낼 순 없다!’ 그때부터 내 아슬아슬한 ‘빈곤 팔이’가 시작됐다.

등록금 부담을 없애기 위해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장학금을 받으려면 열심히 공부하며 빈곤을 팔든지, 적당히 공부하며 빈곤을 팔든지, 아르바이트 하며 빈곤을 팔면 된다. 어쨌든 결론은 ‘가난을 PR’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료지출내역서를 떼고, 파산신고서를 떼고, 가족관계증명서로 다자녀 가구임을 인증 받는다.

학교에서 주는 면학장학금에도, 교외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에도 이런 서류들이 꼭 필요하다. 1년에 많을 땐 10번도 서류를 뗐던 것 같다. 서류를 제출한다고 모두 장학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장학금을 줄지 모르니 조건만 맞으면 다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장학금을 받으면 다행이고, 받지 못하면 빚이 쌓인다.

장학금도 선순환이다. 한 번 받으면 경제적 부담이 적어지니 아르바이트를 줄일 수 있고, 그럼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 성적이 좋아지고, 다음에 장학금 받기 쉬워진다. 결국 장학금을 한 번이라도 못 받으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늘려야 하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 성적이 안 좋아지고, 다음에 또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벗어나 대학을 다닌다는 건, 대학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주거비, 생활비, 등록금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이다. 곧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250만 원 받던 장학금 ‘반토막’

이런 상황에서 2011년 한국장학재단에서 새로 만들었졌던 ‘저소득층 우수드림 장학금’은 나와 동생에게 희망이었다. 수혜 첫 학기에는 성적 4.0/4.5이상, 두번째 학기에는 3.66/4.5 이상 되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1학기에 장학금 250만 원이 지원됐다. 수혜 대상 학생 중 예산이 지원하는 범위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학업지원비까지 지급됐다.

장학금 지원액도 컸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할 수 있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었다. 동생은 첫 시행에, 나는 두번째 시행에 이 장학금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장학금이 부족해 매학기 100만 원씩 대출을 받았던 것을 그 학기에는 받지 않아도 됐다. 우리 집엔 바로 이 장학금제도가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대책이었다.
학업지원비를 받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등록금 부담을 줄이겠다며 저소득층 우수드림 장학금을 없애 버렸다. 등록금 부담 경감 대책으로 국가장학금을 시행하면서 우수드림 장학금의 재원을 모두 국가장학금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덕분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도리어 줄었다. 나는 지난학기 국가장학금으로 130만 원을 받았다. 소득분위 2분위에 해당해 국가장학금 1유형으로 60만 원을 2유형으로 70만 원을 받은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도 오히려 장학금이 줄어든 셈이다. 결국, 등록금 부담이 120만 원 증가한  것이다. 만약 내가 국가장학금 2유형 예산을 지급받지 못한 학생이라면? 똑같은 국가 재단에서 비슷한 성적과, 비슷한 가정형편을 가지고 장학금을 지급 받겠지만, 국가장학금 시행으로 오히려 등록금 부담이 약 190만 원 증가하는 셈이다.

190만 원을 벌기 위해선 최저임금 4580원을 받으며 415시간 일해야 한다. 하루 8시간씩 52일 일해야 하는 것이다. 곧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국가장학금으로 증가한 등록금 부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소득층 우수드림 장학금에 학업지원비를 지급받았던 학생이 똑같은 성적을 받았다면 어떨까?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이중으로 뛰어도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정된 재원을 소득분위 3분위 이내의 저소득층에게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한정된 재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꼭 효과 좋고, 반응 좋은 우수드림 장학금을 없애고 국가장학금을 만들어야 할까? 왜 소득별, 학교별 차등 지원해서 등록금 인하 효과를 극소수만 누려야 할까?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면 두 장학금이 공존할 수도 있고, 모든 대학생이 등록금 인하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여전히 등록금은 비싸고, 대학주변엔 싸게 잘만한 곳이 없고, 밥값도 엄청나고, 책값도 학원비도 어느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 빚지고 대학을 졸업해도 대학 졸업생 10명중 5명은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해도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우리가 대학에 온 게 우리의 뜻이기만 했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중학교에선 인문계 고등학교를, 고등학교에선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는 길만 제시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며 모범적으로 성실히 살았지만, 그 결과 ‘빈곤팔이 소녀’가 되었다. 그리고 ‘빈곤을 팔아도’ 등록금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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