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09-03-30   1572

참여연대-한국일보 [등록금 빚더미 시대] <1> 학자금 신용불량자 1만명

참여연대-한국일보 공동기획 [등록금 빚더미 시대]



<1> 학자금 신용불량자 1만명



공부는 무슨… 밤낮 알바해도 학비 허덕이는 ‘캠퍼스 빚쟁이들’

3달간 300만원 벌었는데 등록금은 더 올라

대출이자·생활비 벌려고 ‘생계형 휴학’ 급증

악순환 못끊어… 성매매 유혹에 빠지기도



김이삭 기자 hiro@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대학은 한때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렸다. 귀한 소를 팔아야 자식 대학 공부 시키던 시절로부터 멀리 왔건만, 그 별칭이 사라지기는커녕 사람(부모)의 등골을 빼는 ‘인골탑'(人骨塔)이니 모골탑'(母骨塔)이니 하는 더 섬뜩한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등록금 연 1,000만원 시대, 대학 4년 동안 학비만 4,000만원이 든다. 학비 부담에 부모들 허리가 휘고, 대출에 기댄 학생은 자칫하면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 ‘신용불량’ 낙인이 찍힌다. 탈출구 없는 등록금 공포로 멀쩡한 젊은이들의 삶이 뒤틀리고 있다.





#1. 제적-재입학-휴학-다음은?



서울 유명 사립대 06학번 이윤아(25ㆍ여ㆍ가명)씨는 이제 겨우 4학기째다. 등록금은 대학 문턱을 넘기 전부터 그를 괴롭혔다. 이씨는 수시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4개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습지 전단, 사무보조, 패스트푸드점, 고시학원 총무….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석 달간 강행군을 한 끝에 가까스로 300여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월 수입 80만원 남짓한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순 없었다. 학업은 뒷전이고 돈벌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씨는 이듬해 3학기 연속 학사경고를 받고 제적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서울 성북구의 한 바(bar)에서 밤 늦도록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지난해 가을 재입학 허가도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새 등록금은 재입학에 필요한 입학금까지 합쳐 440여만원으로 불어났다. 이씨는 다음 학기 다시 휴학을 고려 중이다. “대학에선 공부만 하고 싶었는데 그게 참 안되네요. 빚쟁이가 되기 싫어 대출은 가급적 안 받을 생각이지만 이러다 졸업이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2. 뿌리치기 힘든 성매매의 유혹



대학 3학년까지 마치고 휴학 중인 장은영(23ㆍ여ㆍ가명)씨는 지난해 12월 빚 1,000여만원을 모두 갚았다. 다음 학기 등록금도 마련해두었고 생활비는 물론 대학 2학년인 남동생 학비의 절반을 댈 만큼 ‘여유’가 생겼다.



휴학 전 장씨도 3번이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어릴 때 이혼한 부모한테 손 내밀 처지도 아니어서 1년 전 휴학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첫 달은 법무사무소에서 일했다. 그러나 70만원이 채 안되는 돈으론 등록금은커녕 이자와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벅찼다. 결국 강남의 한 유사성행위 업소를 찾았다. 손님 1명 당 2만~3만원, 하루 4명만 받으면 10만원은 거뜬했다. 숙식까지 해결하는 이른바 ‘먹자조’에 들어가고서는 월 400만원 넘는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일해 대출 원금까지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장씨는 복학 전까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겁도 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마음 편히 취업 준비를 하려면 별 수 없어요.”





#3. 졸지에 야간 대학생으로 전락



서울 D대 최재웅(23ㆍ가명)씨의 수업 시간표는 모두 오후 6시 이후에 맞춰져 있다. 오후 1시부터 5시30분까지 을지로와 여의도를 오가며 각종 서류를 배달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이 끝나면 곧장 학교로 달려가 2시간 남짓 수업을 듣는다. 끼니도 거른 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오후 10시를 넘겨버리기 일쑤다. 1년 가까이 반복돼 온 고된 일상이다.



3학년인 최씨는 네 학기 등록금(1,080만원)을 학자금 대출로 충당했다. 2번 장학금을 받았지만 등록금의 30%에 불과해 큰 도움이 안됐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이자만 14만원.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 3년 뒤를 떠올리면 끔찍하기만 하다.



한때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 2006년 1월 군에 입대하면서 통장 관리를 하지 못해 몇 달 이자를 연체한 탓이다. 제대 후 대출을 거부 당해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해야 했다.”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80만원을 벌지만 이자 갚고 밥값, 교통비 등 이러저러한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저축은 30만원도 못해요.” 최씨가 휴학과 대출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처럼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교를 쉬는 휴학생 비율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0년 34만1,000여명이던 휴학자 수는 지난해 44만3,000명으로 8년 새 10만명 이상 증가했다. 군 휴학을 제외(29만4,000여명) 하더라도 전체 재적생 대비 비율은 15.13%에 달했다. 박거용(상명대 교수) 한국대학연구소 소장은 “통상 군 입대나 어학연수 등을 이유로 휴학하는 비율이 일정한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휴학생 급증은 치솟는 등록금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부모들 “학자금 공포에 밤잠 설쳐요”





타지방 유학생들은 방세 등 추가 생활비 부담에 ‘2중고’



“휴일도 없이 죽어라 일해도 등록금 앞에서 무능력한 부모처럼 비쳐지는 현실이 답답할 뿐입니다.”



충남 천안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임모(53)씨. 2006년 둘째 딸이 서울 명문대 예술학부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뿌듯하기만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600만원이 넘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는 순간 눈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임씨가 주말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 버는 돈은 월 250만~300만원.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버는 둘째에게 하숙비와 재료비 등으로 100만원 가량 부쳐주고 나면, 식구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다. 작가를 꿈꾸며 스스로 벌어 문예창작과에 다니던 큰 딸은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한다. 임씨는 “지금까지 둘째 학자금 대출만 2,000만원, 식당 낼 때 빌린 돈까지 합하면 월 이자가 20만원을 넘는다”면서 “아내와 팔순 노모까지 식당 일에 매달리지만 돈 모아 등록금 내는 건 꿈도 못 꾼다”며 씁쓸해 했다.



강원 삼척에 사는 권모(47ㆍ여)씨는 등록금 얘기를 꺼내자 대뜸 “공포스럽다”고 했다. 9년 전 이혼한 그는 혼자서 대학생 두 자녀를 뒷바라지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초등학생 대상 공부방을 운영해 버는 수입은 월 200만원 남짓. 첫째 딸이 2학년 될 때까진 모아둔 돈으로 버텼지만, 지난해 아들이 대학에 간 뒤 한 학기에 1,000만원 가까이 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는 “대출금 3,000만원 갚을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혹은 타 지역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은 등록금 외에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생활비 탓에 2중, 3중의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대부분 방세 등 생활비라도 스스로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리지만, 최근 경기불황 여파로 일자리 얻기도 쉽지 않다.



3월 수입 0원, 지출 107만원. 경희대 앞 반지하 방에서 자취하는 이모(24ㆍ한의학과)씨는 요즘 가계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과외 아르바이트가 하나 둘 끊기더니 올 1월부터 ‘백수’신세가 됐다. 학자금 대출(3,000여만원) 외에, 셋방 보증금 때문에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에서 벌써 700만원을 끌어다 썼다. 그는 “원금 상환 걱정보다는 당장 이자 부담이 무섭다”면서 “생활비 마련하느라 공부를 미뤄 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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