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개혁센터 칼럼(ta) 2003-11-20   1537

<안국동 窓> 불법정치자금, 조세시스템으로 막자

세풍사건, 나라종금사건, 굿모닝시티사건에 이어 얼마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까지 촉발한 SK비자금사건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는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인사들의 불법자금 수수사건은 사회지도층인사에 대해 유달리 관대한 우리 사회 풍토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낳고 있는 지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그토록 깨끗했다던 작년 대선에서도 정치인과 기업이 국민 몰래 수십 억, 수백 억 원의 정치자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상심을 넘어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하려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돈을 준 기업인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돈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니냐며 강변한다. 낱낱이 국민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당사자들 스스로가 사면을 주장하는가 하면, 국민적 저항을 모면하기 위해 재빨리 정치개혁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된 투명한 정치자금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를 또 다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불법정치자금의 실체를 철저하게 규명해낼 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이를 확실하게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알게 모르게 정치인과 정치자금이 누려왔던 ‘특권’과 ‘성역’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을 유리지갑같이 투명하게 하고, 철저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이제껏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만큼은 과세권을 포기한 채 성역으로 남겨두었던 관행을 깨고, 과세당국이 모든 국민에게 그래왔듯이 과세대상인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하고 과세?추징하는 등 조세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불법자금을 위법소득으로 확정하는 것은 물론, 형사절차를 통해 받은 돈이 환수되는 경우에도 빠짐없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조세법과 정치자금법은 합법적인 정치자금이 아니라면 증여세 등을 예외 없이 부과하도록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증여세 등 조세를 부담하는 것은 세법이 정한 국민의 당연한 납세의무인 것이다.

이는 형사절차상의 추징금과는 별개의 것으로 이중과세가 아니다. 또 불법자금의 수수에 대해 증여세 등 탈루된 세금을 추징함은 물론, 돈세탁을 하거나 차명계좌를 사용하는 등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한 경우라면 조세포탈범으로 처벌까지 하도록 하고 있는 현 법체계도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몇 해전 과세당국과 법원이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함은 물론 조세포탈범으로 형사처벌까지 했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사례는 위법소득에 대한 과세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후 또다시 과세당국은 서민과 봉급생활자에게는 철저하게 세법을 적용해 빠짐없이 세금을 매기면서도,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불법정치자금 사건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탈세사실에는 눈을 감아왔다. 불법자금 유통을 최일선에서 단속해야 할 국가기관이 불법정치자금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불법자금 수수행위에 대해 “청탁도 대가여서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과세권행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불법정치자금 수수당사자인 정치인 및 고위관료와 기업주 등의 공생관계가 끊어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불법자금을 받은 쪽에만 처벌과 책임을 묻고 있는 현 처벌관행 탓도 크다. 불법자금에 관한 한 받은 쪽 못지 않게 준 쪽도 똑같은 무게로 처벌해야 한다.

불법정치자금을 준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속해 있는 전경련에서는 불법정치자금의 책임을 정치인에게만 돌리고있는 데, 불법정치자금 문제는 이를 요구하는 쪽도 문제지만, 공식적인 채널이 있음에도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쪽도 그 책임이 적지 않다. 불법자금 제공 자체가 무엇인가 반대급부를 바라고 하는 행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주는 쪽이 비록 불법자금을 손비처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불법자금을 준 기업주와 관련기업에 대한 자금출처와 흐름을 확인하기 위한 엄정한 세무조사는 당연히 실시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부외커미션수수 및 기업자금 변칙유출 등 불법자금의 형성과정을 끝까지 추적하는 조세시스템을 예외 없이 가동해야 기업주도 불법자금 제공의 유혹을 접을 수 있다.

이처럼 정치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고 불법자금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과 함께 철저한 조사는 물론, 과세라는 조세시스템을 충실히 가동하는 것이 불법정치자금을 근절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불법정치자금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감시와 과세당국의 서릿발같은 법집행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과세당국도 이제껏 정치적 이슈에 대해 과세해 본 적이 없다든지, ‘청탁도 대가’라는 황당한 이유로 불법정치자금이 증여세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우기는 대신, 불법자금거래와 그 자금의 원천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과세에 나섬으로써 국민이 맡긴 책무를 다해야 한다.

검찰과 국세청은 이번마저도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과세 없이 또다시 관용을 전제로 한 형식적 처리와 조치에 그친다면, 불법정치자금이 발생시킨 사회적 비용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엄청난 탈세액을 우리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가 3류 정치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구재이(세무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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