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개혁센터 칼럼(ta) 2006-06-02   1797

<경제프리즘> 왜 정당하고 당당한 부를 꿈꾸지 못하는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상속세 폐지 또는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다. 기업들이 상속세를 법대로 다 내면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상속세는 과연 필요성이 없어진 잘못된 세금인가.

세금 제도는 그 나라가 처한 사회, 경제적 현실,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상속세의 존치나 세율의 크기 여부도 우리가 직면한 사회, 경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검토될 수는 없다. 그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상속세 폐지를 논의해도 좋을 상태인가.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토지소유 통계를 보자. 총인구의 상위 1%가 면적기준으로 전체 사유지의 51.5%를, 상위 5%가 전체 사유지의 82.7%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전국의 주민등록세대 1,673만세대의 49.73%인 841만 세대가 자신의 집을 갖고 있지 못한 반면 7%에 불과한 118만 세대는 3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자산은 어떤가. 전체 인구의 1.4%가 국내 은행예치금 총액의 19.6%에 해당하는 114조원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한겨레, 2005. 10. 10.).

이러한 부의 편중은 교육기회의 차이를 가져온다. 제7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사대상 1,500가구 중 2004년 기준으로 하위 20%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0만원 안팎인데 반해 상위 20%는 83만 7천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사교육비 지출의 격차는 대학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05년 서울대 입학현황에 의하면 1000명당 입학생의 수가 서울 강남구는 25.4명인데 반해 전라남도는 겨우 2.1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소득 또는 부의 격차가 교육기회의 격차로, 교육기회의 격차는 다시 소득과 부의 격차 확대로 악순환 되고 있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부모의 재산을 아무런 세금없이 불로소득하게 된다면 그 상속인의 세대에서 부의 편중이 더 심화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성공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느냐라는 이유가 자신이 처한 계층과 지위를 결정짓도록 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인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혹시 신분제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상속세 폐지나 인하 주장은 부의 편중현상이 심각한 우리의 현실을 외면한 그들만의 주장이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못한 견해이다. 상속세는 사람이 죽으면, 상속인이 망인의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받는 것에 대하여 매기는 세금이다. 아무리 부모가 힘들여 모은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소득이 아니다. 상속재산은 명백한 불로소득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열심히 땀 흘려 얻은 소득에 대해 최고 35%의 세율을 매기고 있다. 노력하여 얻은 소득도 이 정도의 세금을 내는데, 하물며 불로소득으로 얻은 재산이나 소득에 대해 아무런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야한다고 하는 것이 정의로운 주장인가.

상속세가 경영권 승계를 어렵게 한다는 것도 현행 기업제도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재산은 법이 정한 세금을 내면 얼마든지 자식에게 상속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권은 주주들로부터 위임받는 ‘권한’이지, 최고경영자라 하여 자식에게 상속시킬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국회의원, 장관의 지위가 세습되거나 상속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의 자식이라 하여 국회의원 출마가 제한되지 않는 것처럼, 자식이라 하여 최고경영자의 지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영능력을 보여 주주들의 동의를 얻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의사만으로 마음대로 세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라. 그러나 그 재산은 당신이 열심히 일하여 번 소득이 아니므로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라. 그래야 우리는 당신이 취득한 재산을 정당한 부로 인정해 줄 수 있다. 부모가 경영해 온 기업에 대해 최고경영자의 지위에 오르고 싶거든, 자신의 경영능력을 주주들에게 보여주고 주주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라. 그렇게 한다면 어느 누가 당신의 부와 지위에 대하여 토를 달 것인가. 왜 당신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경영능력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부와 지위를 모두 달라고 하는가.

* 이 칼럼은 <시민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박용대(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부소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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