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불법정치자금 과세 않는 조세정의가 가능합니까?”

불법정치자금 과세촉구 연속공개서한 ⑤ : 대통령 앞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지난 해 4월부터 상속증여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 정치자금법 등에 근거하여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를 촉구해왔으며,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3일 오늘 납세자의날까지 ‘불법정치자금 과세촉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참여연대는 재경부장관과 국세청장 등 관계부서장들 앞으로 과세촉구 연속공개서한을 보내고 있으며, 그 마지막으로 구재이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실행위원(세무사)이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을 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2002년 대선 당시에 사용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와 그 수사결과는 또 한번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깨끗했다던 2002년의 대선에서조차 정치인과 기업이 국민 몰래 수십 억, 수백 억 원의 정치자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지난해 4월부터 이미 국세청에 탈세제보를 하는 방법으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과세촉구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범죄행위가 있을 때 검찰에 범죄사실을 고발해 수사를 의뢰하듯, 국세청이 스스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조사와 과세를 하지 않기에 탈세제보서를 접수해서라도 행정상으로 조사 및 과세를 강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법은 분명하게 정치자금법에 의한 합법적인 정치자금에만 비과세하도록 하고 있을 뿐, 그 외의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다른 재산이나 소득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증여세 등 세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에 만들어진 법도 아닙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할 수 있는 세법적 장치가 오래 전부터 갖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자금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과세한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의 정치자금 수수사건 관련 검찰수사에서 증여세포탈사실이 확인되자 뒤늦게 증여세를 과세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수없이 밝혀진 정치자금의 수수사실에 대해 과세당국 스스로가 과세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국세청은 참여연대의 탈세제보에 대해 형식적인 조사조차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간 몇 차례의 답변을 통해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

최근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지자 개인이 받은 대가성 없는 돈에 대해서는 과세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당이 받은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과세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법 왜곡입니다. 때문에 국세청의 입장을 전해들은 조세법학자와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법률 및 조세전문가 252인은 지난 2월 25일 재경부와 국세청에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즉각적인 과세를 촉구하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이들 전문가들이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하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국민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정치인들에게도 어떠한 명목으로 돈을 받았든지간에 특혜 없이 세금을 매기라는 것입니다. 당사자들이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라고 하더라도 수백 억 원에 달하는 돈을 수수한 사실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매기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정부의 태도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인과 재벌기업주 사이의 부정한 거래가 만들어내는 문제로 국민들이 엄청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 못지 않게 정부가 엄정하게 과세권을 행사해야만 불법정치자금을 사이에 둔 검은거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검찰이 나쁜 버릇에 길들여진 정치권과 기업에 엄정한 수사권을 발동해 불법사실을 샅샅이 밝혀내듯이, 국세청 또한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엄정히 과세해야만 불법정치자금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만약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를 이대로 계속 모른 척 한다면 이는 우리 국민들에게 불법정치자금과 정경유착이라는 망령을 다시 겪게 하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정부도 더 이상 성실납세를 입에 담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도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탈세를 통한 기업의 비자금 조성 역시 끊이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기업 경쟁력 확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대통령님.

오늘은 3월 3일 납세자의 날입니다. 오늘은 많은 모범납세자들에게 표창을 주어 성실한 납세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날입니다. 성실한 납세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정부가 표창을 주고 사회적으로 대우해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표창을 받은 그들이 ‘바보’소리를 듣지 않도록 불법을 동원해 탈세를 저지른 범법자들에게 빈틈없는 과세로 이 땅에 탈세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대통령께 편지를 쓰는 것은 참여정부만큼은 어떤 경우이든 법과 원칙에 따라 과세해, 땀흘려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 내는 대부분의 선량한 국민들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말씀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세금이란 정부가 과세하고 싶으면 하고 껄끄러우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유능한 조세전문 변호사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법을 옹호하는 나라에서 조세정의가 설 땅이 없다는 것은 대통령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납세자의날인 오늘, 진정으로 조세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 3월 3일 납세자의 날에, 구재이 드림.

구재이 / 조세개혁센터 실행위원,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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