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세계화에 따른 조세쇼핑 방지 시급

자본주의는 조세가 있어 공평하다. 그 조세제도는 지난 100년간 숱한 경제공황과 전쟁 그리고 냉전을 거치면서 인류의 합리적인 사고로 이루어낸 사회적 합의이다. 그 합의는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쓴다는 것이다. 그러한 합의를 통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공고히 하고 구매력과 건전한 시장을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금 자본과 기득권은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였던 세금이라는 비용을 아깝게 여기기 시작하는 징조가 여러 분야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그것은 세계화라는 과제를 인류 전체의 발전보다는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에게만 유리하도록 불평등하게 끌고 가려는 검은 마음이 생겨나자 다국적기업에게 조세쇼핑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국적기업은 각국 정부에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강요하면서 조세감면은 기본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부가 실질적으로 억압해 줄 것을 강요하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일자리를 다른 나라에 빼기지 않기 위하여 기업에 눈치 보며 협력하는 것 정도이다. 이러한 일이 계속 확장될 경우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 하여 인류전체가 다시 불행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류의 최대 지혜인 조세의 기능을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세계화로 빈곤이 오히려 확대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첫 번째 우려는 세계화로 빈곤이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로 특징지어지는 WTO(세계무역기구)체제는 우리나라도 1994년 12월에 국회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본격적으로 그 영향력 하에 들어간 바 있다. 세계화란 보다 자유로운 무역을 촉진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은 비교우위에 기초한(이것이 무역의 기본 이론이다) 무역의 확대를 통하여 당사자 모두에게 효용을 증대시켜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함이다. WTO설립협정은 그 서문에서 “국제경제질서를 통일된 규범체계로서 관할하며, 관세와 비관세 분야의 장벽을 제거하고 무역거래의 확대를 통하여 생활수준의 향상, 완전고용과 높은 수준의 실질적 소득의 증대 등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WTO체제는 공정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선진국이 비교우위에 있던 지적재산권이나 금융, 교육 등 서비스 산업에 있어 자유화는 속도를 내어 추진된 반면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있던 섬유와 농산물의 자유무역 그리고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지지부진하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자유화는 아예 의제로 조차 채택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의 위험이 가신 지금 어쩌면 선진국들은 빈곤한 나라의 외침에 더 이상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굳이 총칼이 아니더라도 막강한 경제력으로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세계화는 당초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빈곤감소에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개발도상국의 금융위기를 일상화시켜 개발도상국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에게만 교역조건을 악화시키는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되어 세계적인 규모의 데모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화가 거센 반대에 부딪히자 쌍무협정인 FTA(자유무역협정)를 우선적으로 밀어 붙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FTA는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의 무역 자유화를 근본적으로 추구할 수 없을뿐더러 경제블록을 조장하여 지역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세의 역할마저 축소되어 빈부격차를 시정할 사회적 기능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두 번째 우려는 빈곤이 확대되는데도 불구하고 조세의 역할마저 축소되거나 형식화되어 빈부격차를 완화할 사회적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는 조세기반을 현저히 무너뜨리고 있어 앞으로 자본주의체제에서 ‘형평’이라는 말은 영영 사라질 지도 모른다.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자본과 상품뿐만 아니라 기술까지도 국경을 넘어 이동시킨다. 다국적 기업은 기업하기 좋은 곳을 골라 생산기지를 선택하고 생산요소를 마음먹은 대로 이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생산된 제품 역시 세계 어디든지 실어 낼 수 있는 무역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이제 정부는 기업의 비위를 맞추고 바지가랑이를 붙잡아 기업이 떠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세감면은 물론이고 공장부지의 무상제공 그리고 심지어는 보조금을 현금으로 주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여지던 비용이 기업이나 자본가에게 퍼부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된 경제환경에서 현재의 조세제도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가는 예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미국에 기업을 설립하고 그 공장을 중국에 두며 생산된 제품을 전량 한국에 수출한다고 가정하여 보자. 미국기업이 기술력이 있다면 중국에서 싼 값에 생산하여 한국에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 현지법인에 엄청난 이익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중국에 투자할 때 조세감면혜택을 톡톡히 받았을 것이므로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 반면 한국은 해당 미국제품을 모두 팔아 주지만 미국회사가 한국에 사업장을 설치하지 않았으므로 세금 한 푼 거둘 수 없게 된다. 미국 역시 중국 현지 법인이 미국으로 배당하기 전까지는 과세할 수 없다. 그 어느 나라도 과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재무제표는 연결되어 엄청난 실적을 올린 것으로 보고된다. 미국의 주주들은 회사를 상장하여 엄청난 자본이득을 챙기게 된다. 이 회사는 결국 중국의 이득을 배당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절약된 자금으로 제3국에 똑같은 투자를 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려 갈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쇼핑은 확대 일로

파이낸셜타임스(FT)가 씨티그룹 등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기업 68개사를 분석한 결과 순익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평균 실효세율은 30.6%로 전년의 33%보다 2.4% 감소해 81억 달러를 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FT는 “다국적기업들은 법인세가 미국에 비해 낮은 나라에 후선업무를 아웃소싱하거나 공장을 세워 세금부담을 전반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금부담이 낮은 국가를 찾아가거나 세금을 낮추어 줄 것을 요구하는 조세쇼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작년에 가장 많은 액수의 세금을 절약한 다국적기업은 씨티그룹으로 그 절약액은 7억 78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세율측면에서는 제네럴 일렉트릭과 비교되지 않는데 제네럭 일렉트릭의 금융부문 세율은 1999년 27%였지만, 작년 16%까지 떨어졌다. 유럽연합도 세금 때문에 삐거덕거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동유럽의 세금이 독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유럽’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슈뢰더 총리는 주간 포쿠스지와의 회견에서 “새 회원국들은 임금과 세율이 낮아 투자유치에 유리한 반면 뒤떨어진 인프라시설은 EU가 재정지원을 통해 개선해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독일에서는 최근 독일기업이 낮은 세율로 유혹하는 동유럽으로 옮겨가자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공개적 비난이 급등하였고, 일자리 유출과 관련해 기업과 정치인 사이에 애국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기업들도 조세쇼핑에 점점 감염되는 징후

국제적 조세덤핑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감염되기 시작하였다. 조세덤핑에 관한한 앞을 구분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외국에 투자하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노동자들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데 국내에 투자하게 되면 많은 세금에, 깐깐한 노동조합까지 부딪히게 된다고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우리나라에 투자할 경우에도 외국에 투자하는 경우에 주어지는 경제적 혜택을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기업도시에서는 경제자유구역에 준하는 조세감면혜택을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를 들어 준다면 5년에서 10년 가까이 모든 종류의 세금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더욱더 우려되는 점은 이 혜택은 결국 모든 국내기업에게 확대 적용할 수 밖에 없는 도미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다른 경제정책이나 재정지출정책을 별개로 하고 최근 7년간 경기부양을 위하여 특소세 등을 인하하여 소비진작에 노력하였고 그래도 경기부양이 되지 않자 투자를 유인하는 투자세액공제나 법인세율의 인하를 단행한 바 있으며, 마지막에는 거의 필사의 노력으로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산업육성을 위한 다양한 세제상의 유인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재계의 건의안은 조세혜택을 늘려달라는 요구 일색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면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순박한 믿음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애지중지한 우리나라 기업은 섭섭하게도 우리의 품안에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한 시골에서 홀어머니가 아이들을 다섯을 키우며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첫째가 성실하고 공부를 잘해서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려운 살림에 다섯을 다 보란 듯이 공부시킬 수는 없어 맏이를 공부시키고 나머지는 어린나이에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게 하였다. 맏이가 검사가 된다면 홀어머니와 동생들의 고생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순도순 살았다. 맏이는 책임감을 느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결국 검사가 되었다. 시골 동네에는 축하 현수막이 붙고 잔치가 벌어졌다. 검사생활을 시작한 맏이는 처음에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고 어머니와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그러나 같은 검사들끼리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점점 자신의 능력으로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다가는 장기적으로 생존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맏이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더 이상 자신에게 기대지 말 것을 선언하게 되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런 상황이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그런데 맏이가 욕심을 내어 검사장이 될 때까지 자신을 더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다면 맏이는 지나친 욕심으로 비난 받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는 전통적인 조세부과 방식마저 작동하기 어렵게 만든다

세계화의 마지막 우려는 전통적인 조세부과 방식마저도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더 발달하고 아웃소싱이 더욱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면 사업을 미국에서 하는 것인지 중국에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어느 나라 정부에 과세권이 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 몇 십 개 나라에 생산기지를 가지고 또한 몇 십 개 나라에 아웃소싱을 하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 이전가격의 계산이 불분명해 진다. 이전가격의 계산이 불분명해지면 소득세과세의 기준이 되는 이윤의 계산도 불분명해진다. 더 나아가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자국에서 과세할 수 있는 거주자를 구분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게 된다. 쉽게 이해하도록 예를 들어 보자. 한 기업이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경영은 미국과 일본에서, 주문접수는 세계거점에 있는 인터넷으로, 관리업무는 홍콩에서, 창고와 물건보관은 중국에서, 연구개발은 한국에서 그리고 콜센타와 A/S는 인도에서 수행한다면 이 기업이 실현한 이익 1억원에 대한 각국 정부의 세금부과 문제는 매우 난해하게 된다. 복잡하고 난해한 이익계산을 포기하고 소비세를 강화하는 쪽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주류이지만 소비세는 물가의 상승을 초래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일정수준 이상의 소비세는 산업에 미치는 역효과 때문에 탄력적인 세금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따라서, 세계화에 따른 조세쇼핑을 방지하는 협약은 무엇보다도 중요

영리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기업에게 개인들의 평생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 채우지 못한 자리는 조세의 몫이다. 따라서 세계화가 서서히 조세의 역할을 박탈해 가는 지금의 현상에 하루빨리 분명한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적정한 수준의 조세부과, 특히 소득에 대한 조세부과, 는 인류평등을 위한 원초적인 사항이라는 점을 다자간의 합의로서 국가간에 강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의 수용은 세계화된 경제 환경에서 조세쇼핑이 가능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위한 조세지출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화된 기업에 있어 기업행위를 구분하여 특정국가에 어떤 소득의 원천이 있으며 그에 따른 사업이윤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므로 전 세계 이윤과 기업행위별 내재가치를 기초로 특정 기업행위에 대한 이윤을 계산하는 회계이론의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사업 소득의 원천을 주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소비행위에 대하여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역간의 불균형을 시정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상의 제안은 시험적인 것이므로 더욱 다듬어 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화가 무역을 통한 다자간의 경제발전을 추구하지 못하고 힘센 자본이 합법적으로 경제적 착취를 허용하는 것으로 변질된다면 다시 한번 전 세계 노동자 농민이 뭉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이러한 징조는 세계화반대시위로 대별되는 극렬한 시위에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화가 시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세계화에 걸 맞는 조세체계의 정비도 마찬가지로 시대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영태(회계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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